미·중 무역협상 막판 의제 '환율' 바라보는 3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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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19-03-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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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의 플라자 합의 탄생하더라도 일본 전철 밟지 않아

  • 中, 반드시 위안화 약세 원하지 않아..."환율조작 없었다"

[사진=바이두]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일본을 상대로 보호주의를 강화했다. 자발적으로 수출을 줄일 것을 강하게 요구하다가 여의치 않자 자동차, 철강 등에 대한 수입을 규제하며 각 분야에 보호무역 조치를 취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서 일본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엔저) 등으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자 환율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결과물이 1986년 도출된 플라자 합의다. 이 조치로 당시 달러 가치는 50% 가까이 급락했고, 합의 직전 달러당 234엔이었던 일본 엔화는 1985년 말 200엔을 거쳐 1986년에는 180엔까지 가치가 급등했다. 이는 이후 경제 대국 일본의 투기거품 붕괴와 경제 침체를 예고하는 서막이 됐다.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환율 제재를 무역협상의 중요한 카드로 꺼내들었다. 미국은 지난해 캐나다,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대폭 개정해 사실상 새로운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타결하면서 환율 개입을 제한하는 조항을 담은 바 있다. 오는 4~5월 일본과 물품무역협정(TAG)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도 엔화 약세 유도 정책이 협상 대상임을 일찌감치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협상 합의안에도 중국 당국의 위안화 환율 개입 금지를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해왔다. 이번 미·중 무역협상에서 새로운 플라자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중국의 대미 무역관계는 플라자합의 직전 일본과 미국의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일본은 당시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을 꺾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공포가 존재한 것 역시 중국과 비슷하다.

특히 최근 미국과 중국이 환율 문제에 있어 의견 조율이 많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플라자 합의 재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협상 타결돼도 '플라자 합의' 재연 안돼"

그러나 시장에서는 무역협상이 미국의 뜻대로 이뤄지더라도 플라자 합의 이후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플라자 합의 때는 미국이 일본을 압박해 엔화 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중국에 대해선 이러한 전략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 중국은 당시 일본과는 다른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군사·안보 분야에서 미국에 크게 의존했다. 이러한 관계 때문에 일본은 미국 측 압박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양보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과거 일본에 비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중국 전체 수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못 미친다. 1980년대 일본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큰손'이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대거 매도하면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도 지난 4일 미·중 무역협상은 절대 플라자 합의가 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모두 '윈윈(win-win)'을 지향하고 있으며, 중국의 대외 개방은 중국 공산당의 정책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에 협상 분위기가 플라자 합의 때와 다르다는 설명이다.

신문은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무역분쟁에 대해 다른 정책을 가지고 있다”며 “일본은 엔화 절상을 통해 수출 규모를 제한하는 쪽을 택했지만 중국은 자발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中, 환율 조작한 적 없어... 美에 동의해선 안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중국의 환율 조작 혐의는 애초부터 없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은 반드시 위안화 약세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위안화 절하 압력의 상당부분이 미국 경제 상황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환율 개입에 불만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특히 지난해 양국 간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위안화 가치가 5% 이상 하락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의 관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난해 위안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건 중국의 환율 조작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성장둔화와 무역전쟁, 달러 가치를 높이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탓이라고 지적한다.

마크 소벨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 회장은 최근 AFP와 한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모두 통화가치 안정화에 주력하는 것이 적합하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은)는 금리인상을 중단했고, 중국의 경기부양 노력은 부진한 경기를 안정시키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가치의 지나친 절하는 급격한 외국 자본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어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도 일부러 위안화 가치를 낮출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미국 재무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이 아닌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재무부는 당시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의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제한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매체 채널뉴스아시아에 따르면 위융딩(餘永定) 중국 사회과학원 선임연구원도 “중국이 환율에 개입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미국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중국 정부는 환율을 조작하는 것이 자국의 최선의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의 재정적 취약성을 감안할 때 위안화 평가절하는 매력적이지 않다”며 "그러나 위안화 안정을 평생 약속하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달러에 대한 환율 안정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위안화 강세 지속 전망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일정부분 받아들여 위안화의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신흥시장지수에서 중국인 투자전용 주식인 A주의 편입비중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닐 킴벌리는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쓴 글에서 "위안화 강세의 근거가 약세의 근거보다 강력하다"며 “중국과 미국은 무역전쟁을 끝낼 수 있는 사안에 합의를 할 것이고, 여기에는 위안화 환율 문제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중국 정부는 일정 정도의 위안화 절상을 수용해야 하고, 중국 경제는 여전히 자본과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킴벌리는 “위안화 절상 가능성은 국외 자본 유입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 MSCI가 올해 A주 편입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결정한 데 따른 영향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MSCI 신흥시장지수의 중국 A주 편입 비중은 오는 11월 말까지 3단계에 걸쳐 대폭 높아진다. 

킴벌리 칼럼니스트는 "MSCI 신흥시장지수의 편입비중 재조정이 위안화 수요의 새로운 촉매가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위안화 약세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며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위안화 강세가 지속된다는 전망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천다페이(陳達飛) 상하이 동방증권 애널리스트도 “중국이 수출이 아닌 수입·수비 중심 국가로 전환된다면 위안화 가치의 안정적인 절상이 절하보다 유리하다”며 위안화 강세를 전망했다.

중국 위안화 환율은 지난해 12월 초 미·중 무역협상 이후 절상 기조를 이어가는 중이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지난해 12월 저점에 비해 4%가량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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