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선택은 어느 하나를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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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태 기자
입력 2019-02-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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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사진=본인 제공]


부모도 반대하고, 아내도 반대하고 황무지인 곳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다. 모든 것이 최악이다. 더 이상 비참해질 수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움직였다. 땅도 일구고, 물도 끌어오고, 곡식과 나무도 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간다. 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온다. 그렇다. 최악이라는 것은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배워가며 인생을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창업도 이와 같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창업한 것 같지만 현실은 최악임을 잊지 말아야 하다. 오죽하면 10개 투자 하면 성공한 1개의 투자가 9개의 투자 손실을 만회한다고 농담처럼 얘기하겠는가. 많은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9개 기업 안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반드시 그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 9개 기업 안에 수없이 들어갔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한 끝에 1개 기업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완벽하다는 생각은 부족함의 시작일 것이고, 완벽하다는 것은 약해지기 쉽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못한 것을 탓하기 이전에, 액셀러레이터들은 창업자를 끊임없이 부족함을 채워가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단히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문제, 인간 문제 등 대부분의 것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답이 정해져 있다. 세대 간의 갈등도 해결해야 하고 청년 실업이나 고령화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회사의 현재 자금 흐름을 원활히 해야 경영이 안정된다. 이렇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무엇(What)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How)는 만만치 않다. 

창업은 끊임없이 이러한 What과 How의 반복이다. 시점과 관점 그리고 상황에 따라 What과 How는 위치가 변할 수도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어느샌가 해결책은 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 있는 등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가 실수를 하는 부분은 관점과 시점을 통일시키지 않고 문제와 해결책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 쉬어가자.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상황에 온전히 집중해보자. 삶은 늘 마주 보며 맞추어가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또 존중할 줄 알아야 존중 받을 수 있고, 사랑할 줄 알아야 사랑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가보지 않고 만나보지 않았다면 판단하지 말고 서로의 What과 How를 명확히 정한 뒤, 문제와 해결책을 찾는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숙제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방금 병원에서 솜사탕같이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났다. 세상에 내가 왔음을 알리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울기 시작한다. 건강하다는 신호이다. 고사리 손도 잘 움직이고 오동통한 팔다리도 잘 움직인다. 엄마 품에 안기더니 어느새 세상 편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화답한다.

왜 울었을까? 왜 세상 편한 표정을 지었을까?

우리는 이것을 신체가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본능적인 표현만을 하며 생존에 대한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터득하고 배우는 것이 사랑이고 증오다. 세상이 우리에게 사랑과 증오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을 선택할지 증오를 선택할지 우리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창업시장에서도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선택이라는 것은 어느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착한 척, 고상한 척, 인자한 척하고 싶겠지만 창업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이 더 많은 불안과 시행착오를 가지고 올 것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느 한 사람의 기준으로 결정지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듯 운명을 결정 짓는 것 역시 분명 우연보다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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