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학생 안전과 교육을 포기한 현장실습 개악안 추진을 반대한다!…인천청소년노동인권넷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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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서 기자
입력 2019-01-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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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본격적으로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의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한 해에만 콜센터와 제주 생수 생산 업체에서 두 명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후, 당시 교육부 장관은 ‘조기취업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습과 전혀 무관한 저임금 일자리에 고등학생들이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반발을 핑계로 고작 3개월 뒤인 2018년 2월 교육부는 계획을 후퇴시켰다. 실습 운영 역량과 학생 안전이 검증된 ‘선도기업’에는 3개월까지 조기 취업이 가능해졌다. ‘선도기업’을 3만개 이상 발굴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고스란히 일선 교사들의 업무가 됐을 뿐이었다. 현장실습을 둘러싼 조건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탁상공론으로 제시된 ‘학습중심 현장실습’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현재 선도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조차, 학생들에게 제대로 실습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실제로 우리는 서울, 전북, 충남 등의 지역에서 선도기업 선정 과정, 실태 조사 과정, 실습 운영 과정 전반이 모두 엉망인 것을 확인했다. 선도기업 선정을 신청한 학교의 교장 또는 취업담당교사가 선도기업선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실태 조사자가 불승인 의견을 낸 기업이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실습이 운영 중인 기업을 방문해보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도 수두룩했다.

인천광역시교육청의 현장실습컨설팅단이 선도기업 선정 및 실태 점검 등의 역할을 하는데 10명 모두 단위학교의 선도기업을 신청하는 취업담당 부장교사로만 구성되었으며, 현장실습기업점검지원단의 경우도 현장실습 실태 점검 지원(선도기업 점검 포함)과 학습중심 현장실습 추진관련 의견 수렴 역할을 하는데 59명 모두 특성화고・마이스터고 교감 및 취업담당 부장교사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래가지고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학습중심현장실습 추진과 관련 강조하고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도기업 인정 심사 추진’이라는 취지를 살릴 수가 없다.

인천시교육청 산하 단위학교에 현장실습 참여기업이 제출한 신청서를 살펴보면 현장실습생이 실습직무 중에 회로기판 표면실장, 제품의 페인트도장 및 건조, 절단과 조립, CO2용접, 사출성형 등이 있다. 이는 산업안전에 대한 전문가가 개입하여 근무환경을 확인해야 하는 내용이 아닌가? 그러나 위 업체의 현장실습 직무의 안전성은 어떤 전문성으로 누가 어떤 방법으로 확인하는가?

회로기판 표면실장 작업의 경우 인체에 유해한 유기화합물질을 사용하지 않는지, 사출성형 시 인체 절단, 압박의 위험성은 없는지? 안전장치와 그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품을 도장하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필수로 사용되는 신나 등 인화성 화학물질을 다루지는 않는지, CO2 용접 시 화상에 대해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현장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학교와 교육청은 점검할 수 있는가?

현장실습지원단이 현장실사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가서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확인하고 오는지? 현장실사 진행 시 산업안전에 대한 의사 등 연구자들의 참여 없이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지? 현장실습생의 노동인권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노동조합과 교원단체, 시민사회의 실습현장에 대한 감시 없이 교육당국과 정부만 믿고 가도 괜찮을 것인지?

이와 같은 질문에 교육부와 인천광역시교육청은 명확한 답변을 내어 놓을 수 있는가? 또한, 현장실습생의 안전을 위해서는 해당 업체가 현장실습생만이 아닌 일반 작업자에게 행하는 조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2017년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사고와 인천 식품가공업체 현장실습생 손가락 절단되는 사고도 일반 작업자와 똑 같은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직업계고 학생에게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제공할만한 기업이 턱없이 적은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자체의 목표와 필요성, 현실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현장실습 보완 방안’은 ‘학습중심 현장실습’ 의 불가능성을, 2017년 이전의 조기취업 현장실습으로 회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지난 1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 방안 마련 국회 공청회’에서 교육부는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과 강화된 안전점검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현장실습에 참여를 기피’한다면서, 학교-산업체가 원하는 시기에 현장실습이 가능하도록 절차 간소화, 선정 기준 완화하고, 선도 기업을 현장실습 전에 선정하지 않고 현장실습 운영 중에 심사・인정하겠다고 했다. 또, 취업 기간이 짧은 것도 기업의 참여 기피 사유라며 사실상 6개월 조기 취업이 가능한 실습학기제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한 마디로 사고 날까 부담스러운 기업까지 조기 취업 시키자는 얘기다. 안전사고가 부담되어 산업체 참여가 위축됐다면, 이는 그 동안 위험한 기업에도 억지로 현장실습을 나갔다는 방증이다. 안전점검과 지도· 관리를 두려워하는 기업이 배제된 것은 학교와 교육당국으로서는 반겨야 할 일이다.

취업 기간이 짧아 기업이 참여를 기피한다는 얘기는, 현장실습이 사실상 조기취업에 불과하며 졸업 이후 학생들을 붙잡아 둘 매력이 없는 기업들이 주로 현장실습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이런 기업들까지 참여를 확대하여 실시한다면, 그 현장실습의 목표는 대체 무엇인가?

심지어 1월 25일 사회관계장관 회의 이후에는 “2022년까지 직업계고 취업자 비율 60% 달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취업률 목표까지 내놓았다. 그 동안 취업률 달성을 위해 학생들은 배울 것이 없고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고,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학교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사고와 죽음은 그럴 때 발생했다.

현장실습 ‘보완대책’과 연결해서 보면, 결국 취업률이라는 정치적 성과와 노동력 제공을 위해 현장실습이라는 미명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을 열악한 일자리에 욱여넣을 작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학생의 안전 보장이 아니라 기업의 규제 완화에, 교육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력 확보에만 매달리는 ‘현장실습’ 제도 아래서 사고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이다.

이런 우려에 현장실습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유가족들이 모여, 교육부 장관 면담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조차 없다. 유가족의 목소리도 듣지 않는 ‘현장실습 보완책’은 누구를 위한 보완책인가? 청년 노동자의 죽음으로 사회가 공분하고 있는 지금, 직업계고 학생들의 안전 및 생명권과 학습권을 위협하며 거꾸로 가는 교육부를 강력히 비판하며, 교육부와 인천광역시교육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교육부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현장실습 개악안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2. 교육부 장관은 현장실습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유가족과 먼저 대화하라.
3. 인천광역시교육청은 학습중심 현장실습 참여 학생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하고 그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라.
4. 인천광역시교육청은 교육부의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최우선으로 놓고 대안적인 현장실습프로그램을 마련하라.
5. 결국 기업의 저임금 노동력 확보만이 목표인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라.


2019.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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