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장애인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로테크(Low-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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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입력 2019-01-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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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사진=아주경제 DB]

척수마비 장애아의 엄마인 내게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하는 신기술 관련 뉴스를 많이 보내준다.

가장 많이 전해 들은 기술은 소위 ‘입는 로봇’인 ‘외골격 로봇(exoskeleton)’에 관한 것이었다. 입으면 무거운 물건도 번쩍번쩍 들 수 있어 군용으로 활용 가능하고 하반신마비 장애인도 이 로봇을 착용하면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건 또 얼마나 비쌀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나’란 생각도 든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이런 뉴스를 접할 경우 오류 중 하나는 ‘이런 기술이 있으니 미래에는 굳이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결정권자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가정해보면 허탈해진다. 

사실 장애인들에게는 비싸고 접근하기 어려운 하이테크보다 ‘로테크(Low-tech)’, 즉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일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더 필요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로테크 상품들이 많다. 수동휠체어에 부착해 전동휠체어의 효과를 내는 ‘토도드라이브’가 대표적이다.

아예 로테크를 표방하는 기업도 있다. ‘오버플로우’라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로테크 상품을 만들고 소개하는 소셜벤처는 맞춤형 흰 지팡이, 점자 라벨 출력기, 지팡이에 끼우면 초음파로 앞의 장애물을 알려주는 버즈클립 등을 만든다. 여기서 만든 ‘식스닷’이란 점자라벨출력기는 100만원 정도다.

장애용품은 또 어떤가. 휠체어에 옵션이 되는 가방이나 컵홀더를 사려면 어이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 수입용품이고 생산 수량이 적기 때문에 단가가 높아져 그렇다고 한다.

눈을 돌리면 비장애인용품이 장애인에게 유용한 경우도 많다. 예컨대, 휠체어를 타는 내 지인들은 유모차용 컵홀더, 유모차용 우산걸이, 자전거용 가방을 쓰는 분들이 있다. 손이 자유롭지 않아 컵을 기울여 마시기 어려운 상반신마비 지인은 실리콘빨대가 달린 컵을 쓴다. 

기술은 흔히 사람을 배제하기도 한다. 패스트푸드점의 무인 키오스크는 휠체어 이용자의 키보다 훨씬 높은 눈높이에 있어 불편하다. 터치스크린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비단 장애인뿐인가. 고령의 어르신들이 무인 키오스크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기도 하다. 이베이코리아에는 ‘시각장애인 헬스키퍼’, 즉 마사지사들이 상주한다. 마사지실 옆에 커피머신이 있는데, 터치스크린형 머신에 누군가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뒀다. 마사지사들께 물어봤더니, 커피머신에 버튼이 적으니 굳이 점자표기 대신 손으로 더듬어 눌러 이용할 수 있도록 버튼 옆에 돌기처럼 손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해달라고 요청했고 회사 측이 올록볼록 스티커를 붙여놨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무의’가 만드는 ‘서울시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사실 하이테크는 아니다. 직접 찾아가서 리서치한 결과를 그림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 지도를 처음 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들의 위치를 추적해 내비게이션처럼 지하에서도 갈 수 있는 경로를 표기하는 기술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알아보니 실내에서 위치추적이 가능한 기술을 어느 대기업에서 개발 중인데, 아직 국내에선 미출시 상태다. 그런데 실내에서, 특히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시설인 지하철에서 실내 내비게이션 형태로 위치추적을 허가하기는 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만들어낼 하이테크 기술을 기다리는 동안, 휠체어 이용자들은 단념하고 지하철을 안 다니고 말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경로 표기를 한 그림 지도라도 만드는 게 나은 것일까. 나는 후자를 택했다.

지도를 만드는 2년 동안 실제로, 지도가 없으면 헤맬 정도로 복잡했던 환승경로에 안내표지판 1~2개가 붙어 있어 훨씬 가기 수월해진 경우를 몇몇 지하철역에서 목격했다. 환승경로를 비장애인들과 함께 휠체어로 돌아다니며 휠체어 눈높이의 표지판에 대해 궁리하고 제안한 결과다.

첨단기술 자체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있다면, 사실 그 뒤에 인간의 문제를 깊이 연구한 인간이 있을 것이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지만, 비싸서 돈 있는 사람만 이용 가능한 하이테크보다는 장애인의 삶을 편하게 하는 지금 당장의 ‘로테크’가 더 절실하고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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