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눈]목포는 호구다?… 패러디 원곡 '목포는 항구다' 의 비밀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01-24 10:37

목포의 1935년대 건물 창고에서 기자회견을 연 손혜원 의원.[연합뉴스]




#1 지난 2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손혜원 랜드게이트 진상규명 TF' 소속 의원들과 목포를 방문해, 손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창성장'을 둘러봤다.

#2 이튿날인 23일 이번엔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목포로 찾아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손의원이 재단명의로 산 목포의 옛 창고로 1935년에 지어진 목조건축물에서였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같은 벽을 등진 채 손의원은 기자들에게 물었다. "여기 들어와 보시니까 어떠세요? 이 상황을 보고 뜰 거라고 상상할 수 있으세요?"

#3 이런 즈음, 자유한국당의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도시재생사업에 목포가 중복 선정된 것과 관련해 거대한 힘이 작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목포는 호구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손혜원 일당에게는 그저 목포는 호구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 목포 이난영공원에 있는 노래비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호구다'라는 말은, 물론 유명한 옛노래 '목포는 항구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전남 목포 삼학도의 이난영공원에는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영산강 안개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이별의 부두

유달산 잔디밭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흘러간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
비오는 선창머리 돛대를 잡고
이별턴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이 노래는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으로 이난영(본명 이옥례)이 불렀다. 한반도의 서남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목포는 그저 '항구'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는 아련한 출렁임이 있다. 그것을 포착한 가요였다. 일제 말기에 등장해 압제와 가난에 고통받던 날들을 달래주던 노래다.

◆ '목포는 항구다' 노랫말을 지은 조명암의 통찰

1942년 봄, 시인이자 작사가인 29세 조명암은 '목포 노래'를 하나 지어달라는 OK레코드사 이철사장의 청탁전화를 받는다. 당시 '목포의 눈물'이 최고의 노래로 인기를 끌 때라,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에게 또하나의 야심작을 불러 히트하게 할 심산이었다. 조명암은 유달산으로 내려와 목포를 한번 돌아본 뒤 저녁 부두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수첩에다 노랫말을 적는다.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비오는 선창머리 돛대를 잡고/이별 턴(하던) 내고향 목포는 항구다/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목포에 관해 '항구'라는 말 한 마디보다 더 간절한 것이 있으랴. 조명암의 감수성은 그걸 읽어냈다. 항구이기에 떠나는 사람이 있고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떠나는 사람이 있기에 이별이 있고 돌아오는 사람이 있기에 더욱 뜨거워진 사랑이 있다.

맨처음 그가 건져올린 이 구절은 노래의 3절이 됐다. 조명암의 시를 곡에 얹은 이는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이었다. '낙화유수' '고향설' '아주까리 등불'을 작곡한 빼어난 실력자였다.

◆ 조명암은 친일파 월북시인···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혀

하지만 작사가 조명암(1913~1993)을 부각시키지 못하는데는 사연이 있다.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금강산 견봉사로 출가해 스님이 된다. 1930년 무렵에 50대 스님이던 만해 한용운을 만난다. 만해는 그를 아껴 보성고보에 입학시킨다. 1934년에 '동방의 태양을 쏘라'라는 작품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서울노래'라는 곡을 작사해 작사가로도 데뷔한다. '서울노래'는 일제에 항거하는 내용이 암시되어 있다는 이유로 발매 일주일만에 판매 금지곡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1941년 이후 조명암은 수많은 친일노래를 짓는다. '지원병의 어머니'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등을 지었고, '혈서지원'이란 노래는 조선지원병 실시 기념음반에 수록되었다. 조명암이 '목포는 항구다'를 짓던 1942년은, 그가 침략 일제의 주구로 열심히 노랫말을 쓰던 시절이었다.

해방 뒤 친일청산 재판을 피해, 함께 활동하던 좌익 문인들과 함께 월북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종군작가로 활약하며 '조국 보위의 노래'를 지었다. 북한에서 그는 영향력 있는 문인으로 지속적으로 활약해 1973년 국기훈장 제1급과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수여받는다. 1993년 사망한 뒤에는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친일과 월북으로 남쪽에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게 된 천재 조명암. 그는 삶의 다채로운 곡절을 말해주듯 조영출, 김다인, 김운탄, 김호, 남려성, 부평초, 산호암, 양훈, 이가실, 함경진 등의 이명을 지니고 있다.
 

[2013년에 나온 '조영출(조명암)전집'(소명출판).]


◆ 어느 시인의 감수성에 포착된 '목포는 항구다'

이런 욱씬거리는 사연을 묻은 채 '목포는 항구다'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노래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불리어 왔다. 2004년엔 '목포는 항구다'라는 제목의 영화(김지훈 감독)가 개봉되기도 했고, 동명의 시집(김성호시집)도 등장했다. 시인 김성호는, 조명암이 포착했던 '이별의 토포스(지역성)'를 사적인 내밀한 영역으로 끌어와 '목포적인 것'을 돋운다.

너 떠나고 날은 저물었다
그때 뱃고동이 울었는지
안개 속이었는지는 생각이 없다

너 떠나니 날은 저물었고
돌아서는 길은 어둡고 어두웠다
너의 울타리가 내게는 담장,
벽 앞에서는 밤눈이 캄캄했다
담벼락에 대고 몇 번
구토를 했었던 것 같다
비틀거리며 걷다 몇 번
담벼락에 몸을 기댔던 것도 같다

항구의 뽕짝이 슬퍼졌던 것은
그 무렵의 일
지금도 나는 이 노래를
다는 부르지 못한다

                      김성호의 '목포는 항구다'


◆ 듣는 귀에 따라 달리 들리는, 패러디 '목포는 호구다'

이 노래가 뜻밖에도 한 의원의 '문화재 관련 투기 의혹' 논란과 함께, 패러디의 형식으로 건져올려진 것이다. '목포는 호구다'라는 의미는,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들릴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 투기의 호구다? 야당 의원들이 말하는 '목포는 호구다'라는 말은, 손의원이 '투기'를 감추기 위해 문화재를 포장했다는 의미이며 목포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호구로 이용했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 정치의 호구다? 하지만 대척점에 선 사람들의 귀에는 생판 목포를 찾지 않던 한국당 사람들이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목포로 몰려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목포를 호구로 삼고 있지 않느냐는 비난이다.

# 어수룩한 호구다? 목포 사람들이 화를 내는 까닭은, 우리가 이 땅의 변방에 있어서 그토록 어수룩하게 보이느냐, 우리를 쉽게 호구로 삼을 수 있다는 그 표현이야 말로 지역 모독이 아니냐는 입장에서 나온다.

◆ 아무리 그래봐도 목포는 항구다

목포를 기억하고 예찬하는 노래의 키워드를 '항구'라는 말에서 찾아냈던 조명암의 통찰은, 시대를 넘어 오랫동안 목포인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만들어냈지만, '호구'라는 패러디를 찾아낸 이 정치판의 말장난은 이 고장 사람들에게 불편한 기분을 키우는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른다. 배들은 떠나가지만 남는 것은 항구다. 아무리 그래 봐도 목포는 항구다.  

                                      이상국 논설실장

 

[이난영공원의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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