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미중관계 大분석]⑩-(끝)미·중 패권경쟁 속 한반도 운명 개척하기

주재우 경희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입력 : 2019-01-23 04:00

[사진=바이두]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는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운명 역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스스로 개척하고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몇 가지 전제적인 요소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이들 나라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들 나라에서 추구하려는 목적 달성을 위해 정책과 전략이 있는가. 정책 프레임의 기틀을 잡아주는 원칙은 있는가.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일련의 요소들이 우리 외교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대(對)미국 외교에서 추구하는 정책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의 대미외교 전략에는 무엇이 있는가. 중국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간단한 질문을 외교당국자나 외교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명쾌한 해답을 듣기가 어렵다. 이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식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 외교를 해왔다. 가장 큰 이유는 역대 정부의 외교정책이 대북관계와 통일 중심으로 추진됐기 때문에 북한과 통일 중심의 외교정책 추구는 다른 국가와의 외교를 전유물·부속물로 전락시켰다.

이제는 북한과 통일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자주 독립적인 외교의 시기가 도래했다. 북한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동북아와 한반도의 전략이 급속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정책이 대국(大局)적인 의미에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상황과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시대적 특징과 이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적 사고와 전술 개진 능력을 구비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정책과 원칙, 그리고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제 대한민국도 대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정부의 몫이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논의를 피하겠다. 단지 대승적인 차원에서 국가전략을 짜는 데 필요한 프레임워크를 제안하는 데 집중하겠다. 국가의 외교정책과 전략의 올바른 정립은 국제체제 및 역학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과 위치를 현실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주변 정세와 국제체제의 역학 구도 및 속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의미한다.

그럼 우리가 속한 동북아의 국제체제와 역학 구도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세계 4강에 둘러싸인 것이 사실이다. 경제, 군사, 정치, 외교, 문화 등의 영역에서 이들의 역량은 모두 세계 4위의 규모를 구비하고 있다. 우리도 세계 10위 안에 드는 만만치 않은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치로만 따져보면 이들과 현저한 차이가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자괴감이 들 수 있으면 이들 역시 역내 이익을 놓고 세계 4강과 벌이는 외교전 역시 만만치 않은 과업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어떻게 당면한 난감함과 외교적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 4대의 위치를 수호할 수 있는지 반문할 수 있다. 이들의 외교행태를 빌려 우리 또한 ‘지피지기(知彼知己,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하면서 상대방을 역공하고 역이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한 나라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제압한다)’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 이들 간의 역학구조를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세계가 무질서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정글과 같이 무질서하다는 의미다. 정글에서는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이 먹이사슬은 약육강식의 원칙에 따라 설정되어 있다. 이런 먹이사슬이 동북아에도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모든 국가 관계에서 아킬레스건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국가관계에서 존재하는 약점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의 취약점을 모두 꿰뚫을 수 있는 혜안과 이를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동북아의 먹이사슬은 현재의 국력과 영향력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정글에서도 때로는 상대적으로 약한 동물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맹수들이 있다. 이를 전제로 우리도 이들 국가가 자신의 핸디캡(취약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상대방의 것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전통적으로 일본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단 세 번(1896년, 1945년, 1951년)의 동맹관계를 맺었다. 공교롭게도 동맹국은 모두 러시아였고 대상국은 일본이었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미국이고, 러시아는 중국과 미국을 두려워한다. 미국은 지금 중국을 우려한다.

이런 먹이사슬의 구조와 두려움의 대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북아 강국들이 자신의 취약점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 국제정치학은 가용할 수 있는 전략 옵션으로 밴드왜건, 연대(연합)와 동맹을 제시한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운명적 선택 이전에 자주적으로,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주변 ‘판세’를 잘 읽어내려 한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패’를 우선 적극 활용하려 한다. 그래서 국제정치판을 ‘포커판’으로 비유할 수 있다.

포커게임의 가장 큰 목표는 판돈을 최대한 많이 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참여자들의 패를 읽어내야 하고 이는 판세를 읽는 능력으로 가능하다. 판세만 보면 우리 패가 가장 좋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은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하지만 우리와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좋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이런 좋은 패를 꽃놀이패로 활용하지 못한다.

우리의 진보정권은 미국패를 버리고, 보수정권은 중국패를 버린다. 반면 일본패는 모두가 버리고, 러시아패는 패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패는 종종 미국이나 중국만 있다. 때로는 북한이 반쪽패가 된다. 이렇게 패를 계속 버리면 우리 손에는 패가 남지 않는다. 판돈을 따기 위해 패를 돌릴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을 자초한 결과다. ‘판세(국제체제와 그 속성)’와 남의 ‘패(약점과 먹이사슬 구조)’를 읽을 수 있는 혜안과 우리의 ‘패(역이용과 이이제이)’를 운영할 수 있는 지혜는 유연한 전략적 사고를 전제한다. 그래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결과를 슬기롭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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