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용산국가공원 근대건축유산의 활용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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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입력 2019-01-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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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지난해 가을날 서울 용산 미군부대를 방문하면서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만초천(넝쿨내)에 서서 아주 천천히 흐르는 물을 한참 쳐다봤다. 도시 속에서 복개되지 않은 개울에 흐르는 물을 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그 자체가 반세기 전의 서울 풍경이었을 것이다.

용산 기지 안을 돌아보면서 가진 느낌은 근대와 현대의 기이한 모자이크 공간이자 전쟁과 평화의 25시적인 조합상, 그리고 식민주의의 아픔이 서려있는 현장이라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허물어진 제단, 조선총독의 관저, 미군막사로 사용하던 원형 양철 건물들, 한미연합사건물, 현대적인 모습의 드래곤 호텔, 엄청나게 큰 평지 골프장과 시장건물, 사병들 숙소로 사용되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여성 구치소 등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꼬여진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용산국가공원 조성은 그러한 굴곡의 역사를 넘어서 '치유의 공간'으로 태어나려는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 바로 역사에서의 치유 그리고 도시생활에서의 치유를 포함할 것이다. 비워진 장소로서 자연이 회복되는 공간, 역사에 대한 명상과 사유를 이끄는 공간이 되는 한편 도시인 개개인들의 휴식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감성 충만의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 앞으로 이 공원 안에 근대유산으로 존치되어야 할 많은 건축물들을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건물들을 짓지 않도록 하는 용산공원 건설원칙을 고려한다면, 이 건축물들은 공원의 필연적 그리고 필수적인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건축공간이 될 전망이다.

이 건축물들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방문을 감동과 의미 있게 만들고 오랜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실행의 화두는 바로 자연과 문화의 조화, 역사성과 현재 삶의 교감 그리고 세대와 집단 간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겨진 근대유산들이 상징하게 될 외세 침략이라는 교훈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화의 상징이 되는 장소로 태어나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겨질 근대유산 속에 문화다원화 사회를 위한 콘텐츠를 담는 것도 미래를 위한 지극히 의미 있는 준비일 것이다.

용산공원의 남쪽 끝에는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 삼각지에는 전쟁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장소들은 바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체험하는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공원지역과 인접한 이태원의 국제문화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공원에 남겨질 여러 큰 건물들에 문화권별로 분산해 참전국을 비롯한 세계 국가들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세계문화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공원을 대단히 의미 있게 만드는 방안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근대건물의 보존은 물론이고, 문화정체성과 문화다양성을 함께 담고 있는 공원으로서 균형 있는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용산공원이 궁극적으로 담아야 할 문화콘텐츠이자 지속가능발전과 사회발전에 공원이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원 안에는 어린이들을 포함하는 가족들의 문화적인 수요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용산기지 안에서 존치될 수 있는 대형건물들을 활용해 복합 어린이 문화공간을 꾸미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다.

수도권 인구규모로 본다면 공원의 활용인구는 한 해에 수천만명이 될 것인데,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처럼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문화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효용성은 낮아질 것이다. 미래가치를 극대화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원의 개발은 시간을 정하고 너무 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건설되기 전이라도 개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공원 남쪽, 즉 국립중앙박물관의 북쪽 지역에 연이어 있는 골프장과 운동장 등을 우선적으로 개방해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계기로 공원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느끼게 만들고, 이미 수립된 원대한 계획을 국민들과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면서 순차적으로 차근히 실행해가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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