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백열등과 한지가 빚어낸 살굿빛 백자"..구본창 개인전 국제갤러리 부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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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12-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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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14일~2019년 2월 17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구본창 개인전

  • -백자·청화백자 연작, 대형 제기 등 총 19점

  • -구본창 작가 "선명하지 않아야 더 존재감이 드러난다"


흐릿한 수평선 사이로 백자 한 점이 놓였다. 한지로 주변을 막고 백열전구 또한 멀리 띄워 새벽녘의 빛을 만들어 냈다.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물레를 돌리듯 백자를 닮은 사진을 빚기 시작한다.

사진이라고 하지만 어디 하나 또렷한 형상을 찾기 힘들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형체가 보인다. 살굿빛이 도는 백자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하고 오히려 대가가 그린 그림처럼 깊이 있는 느낌이 난다.

[구본창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청화백자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점은 내년 2월 17일까지 구본창 작가의 개인전 'Koo Bohnchang'을 개최한다.

지난 2006년과 2011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두 차례의 개인전 이후 7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첫 전시 이후 대표작으로 부상한 '백자' 연작 9점을 비롯해 새롭게 선보이는 '청화백자' 연작 6점, 대형 '제기' 등 총 19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구본창 작가는 사진 매체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국내에서 사진이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힘써왔다.

그는 일상, 풍경, 라이프 스타일, 인물, 사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오다 2004년 백자를 처음 시작하게 됐다.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백자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한국전통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본창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백자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구본창 작가는 지난 14일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스트리아계 영국의 유명한 도예가 루시 리 (Lucie Rie·1902~1995)가 달항아리 앞에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다" 며 "그 도자기를 본 순간 우리나라를 떠난 백자들을 한번 찾아 우리나라에 다시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백자 연작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조선 도자기는 대량으로 생산이 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물량을 생산했기 때문에 같은 시대에 형제자매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며 "외국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일본이나 유럽에 흩어진 것을 내가 사진을 통해서 모으는 것도 의미가 있고,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처럼 모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달항아리가 세월이 흘러서 때가 타고 오래된 느낌과 100년에서 200년 전에 썼던 그 사람들의 숨결을 내 사진에서 다시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그의 백자 연작은 박물관에 있는 실물 백자 또는 박물관에 비치된 카탈로그와는 다른 독특하고 고유한 느낌이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구본창 작가의 개인전에 출품된 백자와 청화백자를 찍은 'OM 17' 작품]


그가 14년간 백자 연작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작품을 알아주는 박물관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박물관에 백자 촬영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작업했는데, 하다 보니까 박물관 또는 개인 소장자가 제 사진을 보고 촬영을 해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그런 기회가 이어지다 보니 계속 작업하게 됐다."

백자 연작을 하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청화백자도 만나게 되고, 결정적으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푸른 빛에 물들다' 전을 계기로 청화백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청화백자 작업이 시작됐다.

백자의 경우에는 특유의 소탈한 형태 또는 검박한 느낌 같은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면, 청화백자는 도자기 표면에 그려진 푸른 그림에 집중했다.

구 작가는 "한국 청화백자는 중국, 일본과 다른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며 "중국이나 일본의 작품은 그릇의 그림 패턴이 꽉 차지만, 한국 작품은 다소곳하고 단정한 느낌이 들어서 작업을 통해 그 느낌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청화백자에 썼던 푸른색 안료가 당시에는 굉장히 고가였기 때문에 한국의 청화백자가 미완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검소하고 간결한 느낌이 나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도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구 작가의 짐작이다.
 

[구본창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백자를 찍은 'EW 08'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구 작가의 작품에는 늘 수평선이 있다. 대상을 가로지르는 희미한 선 하나로 인해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고 대상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조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 작품을 보고 감동을 많이 했다. 모란디의 정물을 보면 수평선이 항상 등장한다. 수평선을 넣음으로써 공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사진의 배경색은 항상 흑색이거나 연한 분홍색이다. 흑백작품에서는 백자의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극대화되고, 분홍색에서는 대상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린다.

"처음 도자기를 찍을 때 한지를 배경에 놓고 찍었다. 한지가 이렇게까지 핑크는 아니었는데 백열등 아래에서 찍었더니 노란빛이 한지에 남아 생각과는 다른 색이 나왔다. 하지만 사진을 본 순간에 백자 시리즈는 이색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배경을 정할 때 대청마루를 찍어서 써보기도 하고, 문 창호지, 장판지 등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지만, 깨끗한 백자의 느낌을 살리는 데는 두꺼운 한지인 사합지가 제일 좋았다고 한다.

조명은 자연스럽고 강하지 않은 빛을 내려고 간접조명을 썼다. 그래서인지 백자의 그림자가 강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난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구본창 작가의 개인전에 출품된 대형 제기를 찍은 'RH 01 BW' 작품]


백자나 청자 연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계선이 흐릿하고 초점을 맞춘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즉 카메라의 아웃포커싱 기능이 극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카메라 사용과 무관하지 않다.

"카메라는 까만 천을 뒤집어쓰고 찍는 독일 린호프사의 대형 카메라를 썼다. 백자를 보면 특별한 부분은 초점을 맞추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초점이 나가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진다. 박물관 카탈로그는 현실감 있게 찍지만 제 사진은 그거와 반대되는 역설적으로 선명하지 않음으로써 유물들이 더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구본창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조명과 배경에 동일한 카메라를 가지고 찍으면 구본창 사진과 비슷한 사진이 나올까?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진은 더 치밀하고 더 치열하다.
박물관에서 사진 찍는 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속도감 있게 찍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는 노하우와 대상에 대한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인터넷에 나온 유물의 사진이나 박물관에 비치된 카탈로그를 찾아보고 그것보다 더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한다. 사진을 찍기 며칠 전에 박물관에 미리 가서 유리장 속에 들어 있지 도자기를 보고 연구를 한다. 어떤 각도에서 찍어야 할지, 어느 부분을 찍어야 할지, 그런 과정을 거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한다. 어떻게 순발력을 발휘해서 빨리 찍는 가도 훈련을 해야 한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구본창 작가의 개인전에 출품된 영상작품 'Vessel'의 한 장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작품 외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 뮤지엄에서 공개했던 4분 11초짜리 영상 작품도 전시했다.
작품에서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백자를 찍은 11개의 사진이 마치 도공이 물레에서 도자기를 빚어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형태를 바꾸고 있다.

"도자기를 찍다 보니까 도공이 들어 일으키는 느낌을 사진에서 표현하고 싶었는데 사진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몇 년 전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 뮤지엄에서 기획해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한국 도예가들 전시와 제 사진전을 같이 하게 됐다. 그때 제작을 하게 됐다. 각각 다른 이미지인데 서서히 다양한 도자기가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 형태를 이어서 영상으로 만들었다."

▶구본창 작가 누구?
구본창 작가는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디플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계원예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2010년부터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여 최근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제2회 이명동상(2000), 강원다큐멘터리 작가상(2008), 제13회 동강사진상(2014)을 받았으며, 2015년에는 한국 사진 예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47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 부문(대통령 표창)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작품은 런던 영국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파리 기메 미술관, 바젤 헤르조그 재단,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이 있는 부산 'F1963'의 정문]


▶국제갤러리 부산이 있는 곳은 '부산 F1963'

지난 8월에 문을 연 국제갤러리 부산이 있는 곳은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부산 F1963'이다.

부산 F1963에는 국제갤러리 부산을 비롯해 중고서점 YES24, 커피전문점 테라로사, 전시와 공연을 같이 할 수 있는 석천홀, 수제 막걸릿집 복순도가, 수제 맥줏집 Praha 993, 원예용품을 팔고 정원만들기 수업을 하는 뜰과숲원예점 등이 입주해 있다. 내년 3월 29일에는 예술 도서관도 문을 연다.

특히 복순도가에서 판매하는 손막걸리는 국내산 쌀과 전통 누룩을 이용한 우리나라 고유의 발효주로 집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만든다. 천연 탄산의 톡 쏘는 맛이 기존 막걸리와는 차별화됐다.

[부산 'F1963'에 입주한 복순도가의 천장 인테리어]


'F1963'은 1963년에 만들어진 공장(Factory)이란 뜻이다. 고려제강은 이곳에서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 로프를 생산했다.
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은 2014년 공장 일부를 부산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대여를 하면서부터다.
이후 2016 부산 비엔날레 때 공장 전체 부지를 전시장으로 활용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공장 부지만 9,000㎡(약 2700평) 정도이고 조병수 건축가와 고려제강이 같이 설계를 했다.

[부산 'F1963' 내에서 내년 3월 29일에는 문을 여는 '예술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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