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뚜껑 열린 '3기 신도시'...물량 최다 남양주 왕숙지구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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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입력 2018-12-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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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대체로 암담해하죠. 몇십 년간 농사 짓고 창고 지어 임대수익 얻어 살아왔는데 갑자기 강제수용해 택지개발을 하겠다니요. 보상액도 공시지가의 1.5배정도라 시세랑 맞지 않아요." (경기도 남양주시 왕숙지구 S공인중개업소 방문객 A씨)

20일 찾은 왕숙지구 분위기는 칼바람만큼 매서웠다. 왕숙지구는 19일 '3기 신도시'로 새로 지정돼 1134만㎡ 부지에 6만60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정부 결정으로 그린벨트를 내줘야 하는 지주들은 몹시 흥분한 상태였고,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공인중개업소 대표들은 피곤하다는 반응이었다. 지주들은 예고도 없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데다 LH의 보상액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으로 책정될 거라 예상해 분노하는 분위기였다.

왕숙지구와 인접해 있는 별내지구, 다산신도시 등 주민들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들 신도시는 아직 미처 해소되지 못한 물량이 많은 데다 공급이 예정된 물량도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별내지구의 경우는 사정이 좀 낫지만 이제 입주를 시작한 다산신도시 주민들은 분양가에 1억~2억원가량 붙었던 웃돈이 단번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땅주인들 "공시지가 3배는 보상해줘야 나갈 것"

왕숙지구 땅값은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농지의 경우 3.3㎡당 100만~150만원, 대지의 경우 300만~400만원정도다. 도로를 끼고 있거나 입지가 괜찮은 곳의 경우 농지는 300만~400만원, 대지는 1000만원까지도 호가한다. 지난 2013년 그린벨트에도 창고를 지을 수 있도록 동식물관련시설 신축 허가가 나면서부터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는 게 일선 공인중개업소 대표들의 설명이다. 그린벨트에 창고를 지어 임대를 줄 수 있게 되면서 매수세가 몰렸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땅값도 올랐다는 것이다. 많았던 거래량은 왕숙지구가 택지지구로 지정된 어제부로 뚝 끊겼다.

지주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왕숙1지구 인근의 T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주들은 공시지가의 1.3~1.5배선에서 보상액이 책정될 거라 예상해 불만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위례신도시도 개발 당시 그린벨트 지주들은 공시지가의 1.5배의 해당하는 금액만 손에 쥘 수 있었다.

위례신도시에서도 보상액을 받고 땅을 내줬다는 T공인중개업소 방문객 이모씨(65)는 "주민 반발이 거세 사업이 정부 계획대로 되진 않을 것 같다"며 "왕숙보다 규모가 작은 위례도 주민 공청회, 지장물 조사에만 3년이 소요됐다"고 전망했다. 주민들은 결국 강제수용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LH와 협의 과정이 길어질 거란 설명이다. 지난 19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3기 신도시 4개 지역은 내년 하반기 지구지정을 완료하고 2021년부터 주택공급을 시작한다. 예상 입주 시기는 2023년이다.

20평가량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S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이곳 지주들은 땅에 온실창고를 지어 월 임대수익을 3.3㎡당 1만8000원정도씩 얻어왔다. 이렇게 하면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농사만으론 수익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라면서 "그동안 땅주로서 사유재산권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공공주택 짓는다고 헐값에 땅을 내놓으라니 기가 찰 따름"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내놓은 교통망 확충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왕숙지구 내 M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진접지구에 아파트 들어올 때도 집값이 저렴해 실수요자들이 많이 왔었지만 얼마 못살고 다 서울로 갔다"며 "아무리 교통망이 확충된다 해도 서울살이보다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곳도 자족도시로 개발되지 않는다면 이전 신도시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안정화라는 정부 목적이 달성될지도 미지수라는 반응이 많았다. S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강남 집값이 급격히 뛰면서 정부가 공급대책을 내놓은 것이지만, 강남과 여긴 수요층이 달라 강남 살던 사람들이 여기 집값이 싸다고 넘어오진 않을 것"이라며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나 중랑구, 구리쪽에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왕숙지구 아파트 분양 시점에 투기꾼들이 들끓을 것 같다"며 "다산신도시도 분양권 전매제한이 풀리자마자 투기꾼들이 잔뜩 몰려 집값이 엄청 올랐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왕숙1지구 일대[사진 = 윤지은 기자]


◆ 기존 신도시도 침울..."공급 과잉·교통체증에 집값 떨어질라"

왕숙지구 인근의 기존 신도시들도 정부 결정을 반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왕숙지구에서 버스로 10분 미만이면 닿을 수 있는 별내지구는 2만5000가구규모의 신도시로 공급을 앞둔 물량도 아직 남아 있다. 지난 10월 분양을 시작한 별내 자이엘라 아파트 등이 오는 2021년 4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3만10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다산신도시도 이달 진건지구에서 다산신도시 자연&자이 등이 분양을 앞두고 있어 주민들의 반응이 냉랭한 편이다. 아직 기존 신도시 공급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또 신도시가 개발되면 집값이 떨어질 게 우려된다는 이유다.

별내 리슈빌 아파트 인근의 C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집값 안정을 위해선 공급이 필요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그 공급이 왜 하필 내 집 앞이어야 하냐는 입장"이라며 "다산신도시 들어오면서 이 지역 일대가 출퇴근 시간만 되면 난리인데 교통이 더 열악해지면 집값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2기 신도시 소외를 막기 위해 별내선 별내역~북별내 3.3㎞ 연장사업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철도 하나를 연장한다고 해서 교통체증이 일거에 해결되긴 어렵다는 게 일대 공인중개업소 대표들의 전망이다.

별내지구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민 B씨는 "가격 변동이 아직은 없지만 앞으로 분명히 떨어질 것"이라며 "3기 신도시 입주가 2023년에 이뤄진다는데, 왕숙지구 쪽 아파트 분양가를 보긴 해야겠지만 그 전에 집을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일대[사진 = 윤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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