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혹독한 겨울 예감했던 화웨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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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12-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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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이두 ]


"지금은 봄이지만 겨울이 머지않았다. 화웨이의 겨울은 더욱 춥고 혹독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미숙하다. 순조롭게 발전하고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탓에 고난이 닥쳤을 때 정확한 길을 찾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화웨이의 최대 약점이다."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10여년 전 사보에 게재한 '화웨이의 겨울'이라는 6000자 분량의 글을 통해 이같이 경고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중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런 회장은 "어느 날 판매량과 이익이 감소하기 시작해 결국 회사가 망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은 뒤 "태평한 시기가 너무 길었던 게 아마도 재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타이태닉호가 환호성 속에 출항했다가 침몰한 것처럼 어려운 때는 반드시 찾아온다"며 "우리 직원들은 너무 맹목적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낙관적"이라고 질타했다.

'편안한 처지에 있을 때 위험이 발생할 것을 생각한다(居安思危)'는 고사성어를 언급하며 "일부러 놀래주려 하는 말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쓴 글은 아니겠지만 그의 예언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성장을 거듭해 온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했다.

◆대체 불가 국민기업, 매출 'BAT' 합계 초과

지난달 30일 화웨이는 올해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약 113조4500억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IT 대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큰 금액이다. PC 제조업체인 레노버 매출의 2배,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 매출의 6배에 해당한다.

통신장비 시장의 경쟁자인 노키아와 에릭슨의 매출 합계보다도 많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셋째로 '1000억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화웨이의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2%로 노키아(13%)와 에릭슨(11%)을 여유 있게 앞섰다.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진 상황이다.

올해 3분기에는 애플을 뛰어넘어 세계 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도약하며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중이다.

대체 불가한 중국 국가대표 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중국인들도 "알리바바의 빈자리는 텐센트나 바이두가 메울 수 있지만 화웨이가 없어지면 대체할 기업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화웨이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7만9400위안(약 1억2800만원)으로 중국 내 1위다.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27만2000위안(약 4500만원)으로 전체 평균의 5배 이상이다.

천리팡(陳黎芳) 화웨이 부사장은 "연봉 100만 위안 이상인 직원이 1만명에 달하고 500만 위안을 넘게 받는 사람도 1000명이 넘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난해 화웨이는 매출의 11.8%에 해당하는 710억 위안(약 11조6674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효자 기업이다.

◆화웨이 내공에 위기감, 옥죄기 본격화

화웨이는 덩치만 큰 기업이 아니다. 내공도 만만치 않다.

전체 직원 수 18만명의 45% 수준인 8만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지난해 R&D 투자 비용은 897억 위안(약 14조7100억원)이었다. 현재까지 특허 취득 건수는 7만4307건에 달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5G 통신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화웨이는 61건의 5G 관련 특허를 취득해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전체 5G 관련 특허의 22.93%에 해당하는 수치다.

5G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기지국 설비의 경우 35% 안팎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며, 광통신 장비 점유율은 40~45%에 이른다.

150개국 이상에 통신장비를 납품하는 화웨이는 유럽 시장에서만 50.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지난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유럽연합(EU)의 5G 통신장비 상용화 인증을 획득한 바 있다.

유럽에 본사를 둔 노키아와 에릭슨을 제치고 첫 인증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화웨이는 향후 5G 시장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쥘 공산이 크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화웨이를 콕 집어 공격하게 된 이유다.

5G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런 회장의 딸이자 화웨이 부회장인 멍완저우(孟晩舟)가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되면서 촉발된 '화웨이 사태'는 한 개인과 기업의 차원을 넘어 무역전쟁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캐나다 법원이 멍 부회장의 보석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내년 3월 초까지 진행될 미·중 간 협상 결과에 따라 사태가 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멍 부회장의 신병 처리와 별개로 화웨이 옥죄기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우방인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화웨이 장비 퇴출을 선언한 데 이어 유럽 내 최대 통신장비 시장인 독일과 프랑스도 화웨이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인 오랑주가 화웨이 5G 장비 배제를 발표했고, 독일 도이체텔레콤도 화웨이 장비 도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화웨이 측은 "5G 기술 선두주자의 참여와 경쟁이 없어지면 망 구축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고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묘책은 없어 보인다.
 

지난 2015년 영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화웨이 영국법인을 들러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바이두 ]


◆입 닫으라는 부친, 조국이 자랑스럽다는 딸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또 다른 이유는 불투명한 경영 시스템 때문이다.

화웨이는 포천 500대 기업 중 유일한 비상장 기업이다. 런 회장이 보유한 화웨이 지분은 1.4%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직원들이 우리사주 형식으로 갖고 있다.

지난해 직원들이 받은 배당금 총액은 1403억 위안(약 22조555억원)으로 추정된다. 런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외국 자본의 투자 제의를 한사코 거절한다.

매출의 70% 정도를 중국 밖에서 창출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인 런 회장이 정경 유착으로 회사를 키웠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런 회장은 앞서 언급한 '화웨이의 겨울'이라는 글에서 경영 철학의 일단(一端)을 드러냈다.

런 회장은 "우리는 상장사가 아니다. 직원들은 언론을 대할 때 소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모든 직원이 업무에만 매진해야 효과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국가의 일은 국가가 관리하고 정부의 일은 정부가 관리하며 사회의 일은 사회가 관리한다. 우리는 법을 잘 지키는 국민이 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할 뿐이다. 그래야 회사가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문제와 맞닥뜨리더라도 공산당의 말을 잘 듣고 정부를 따르면 된다"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권했다.

런 회장은 "사회가 당신을 화웨이 직원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때 진정한 화웨이인(人)이 되는 법"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수련이 부족한 것"이라고 글을 끝맺었다.

기업을 국가의 명령을 따르며 복지부동해야 하는 존재로 정의한 셈이다.

그의 딸인 멍 부회장은 지난 12일 보석으로 풀려난 뒤 중국판 페이스북인 웨이보를 통해 "나는 화웨이가 자랑스럽고 조국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심경을 전했다.

런 회장 부녀의 인식대로라면 화웨이가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활로를 찾아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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