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은의 손에 잡히는 부동산] 빚을 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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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입력 2018-12-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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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건설부동산부 윤지은 기자]


"내 집이 있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 집주인 눈치 안 봐도 되니 살 것 같아."

결혼 후 한동안 전세를 살았던 회사 선배는 내 집이 생겨서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 소유의 집에 얹혀사는 기자 처지에선 남의 집 살이가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몰라 선배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부동산부 기자로 몇 달째 일하면서 세입자들의 비애를 많이 지켜보게 됐다.

일반주택 세입자들은 집주인들 눈치보랴 바쁘지만, (공공)임대주택 세입자들은 '바깥의 시선'이 더 따갑다. 세 달 전쯤 국토교통부가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성동구치소 부지에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부지 근처 주민들은 집회, 시위에 국민청원까지 동원해 극렬한 반대를 이어갔다. '성동구치소 임대주택 반대'라는 이름의 카페에선 1000명이 넘는 가입자가 활동했다.

주민들이 잠잠해진 건 시가 일부 부지에 교육문화 복합시설과 청년창업시설을 들이고 전 가구를 임대 없이 100% 분양으로만 공급할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부터다. 근처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요즘엔 주민들이 왜 이렇게 조용한 거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임대가 안 들어오게 됐잖아요. 사람들은 임대 들어오면 집값 떨어질 걸 걱정하는 건 물론이고 임대 사는 아이들이 자기 집 아이들이랑 섞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임대주택 주민들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집값 하락의 원흉이거나 수준이 떨어져 섞이기 싫은 사람들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듯했다. 주민 반대를 이기지 못한 서울시가 백기를 들면서 성동구치소 부지엔 임대주택이 들어오지 않게 됐지만, 기자는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서 안타깝다기보단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근거 없는 편견을 감내하며 역세권 새 아파트를 임차하기보단,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나 다세대주택이어도 눈칫밥 안 먹어도 괜찮은 내 집에서 사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

눈치만 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떤 임대주택 임차인들은 엄동설한에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지난 2006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정부의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판교신도시에 지은 공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이달부터 10년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분양전환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간의 주택 가격 상승으로 지나치게 높아진 분양전환가격 때문에 '집주인의 꿈'은 멀게만 느껴진다.

국토부는 디딤돌 대출을 제공하거나 임차인이 우선분양전환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임대 기간을 8년 연장해준다는 내용의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분양전환가격의 기준이 되는 감정평가액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을 냉정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모 '키보드 워리어'는 "지금 판교 같은 데 임대주택 혜택 다 보고도 10년간 다른 집 다 올라서 갈 데 없어졌다고 데모하면서 난리치더라. 자기가 그간 혜택본거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혜택을 볼 수 있게 다른 데로 가서 양보해줘야지"라는 댓글을 남겼다.

"돈 없으면 나가라"고 간단히 말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른 집값은 판교 주민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남들 갭투자로 돈 벌 때 월급만 모아 월세 내고 이자 갚았다는 점일까.

임대주택 사는 사람들이 죄인이 되는 모습을 보니 투기를 해서라도, 무리한 대출을 당겨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수를 아는 사람보다 분에 넘치는 복을 바라는 욕심쟁이가 돼야 눈칫밥 안 먹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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