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초당동서 4세기대 신라 찰갑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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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기자
입력 2018-11-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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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전한 형태로 영동지역에서 발견된 첫 번째 찰갑

강릉에서 발굴된 찰갑. [문화재청]

우리나라 영동 지역에서 완전한 형태로는 처음인 신라시대 찰갑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1일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 조사 중인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신라 찰갑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찰갑은 작은 미늘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갑옷을 말한다.

이번에 발견된 찰갑은 직사각형 형태로 동-서 방향으로 놓인 토광목곽묘에서 출토됐다. 토광목곽묘 일부는 조사 지역의 남동쪽 경계 밖으로 나와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확인된 규모는 길이 약 3.05m, 폭 1.4m, 깊이 25cm 정도로 바닥에는 지름 5~10cm의 작은 돌을 사용해 무덤 내부의 바닥에 시신을 올려놓기 위해 마련된 구조물인 시상대를 마련했고 시상대 가장자리로 목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찰갑은 시상대의 서단벽 쪽에서 발견됐고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이외에 목의 뒷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경갑),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가 함께 확인됐다. 찰갑 옆에는 긴목항아리(장경호,), 짧은목항아리(단경호,) 등 신라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이 함께 부장됐고, 신라 토기의 연대를 고려했을 때, 4세기 대 강릉지방에 주둔하였던 신라 장수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395년(신라 내물왕 42년) 말갈이 북쪽 변방(현재 강릉 인근)에 침입해 신라가 크게 패했고, 450년(신라 내지왕 34년)에는 하슬라(강릉의 옛 지명) 성주 삼직이 고구려의 변방 장수를 살해한 사건 등이 전하고 있어 4~5세기대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 간에 국경 충돌사건이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강릉지역에서는 많은 수의 신라 고분이 조사된 바 있는 가운데, 초당동 고분군의 대형 석곽묘에서 금동관, 관장식(관식), 호접형(나비모양) 금동 관모장식 등 신라 상류층의 물건들이 출토된 바 있어 이른 시기부터 신라가 강릉 지역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굴기관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이번에 초당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찰갑 역시 이른 시기부터 신라가 강릉 지역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해왔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로 판단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이 완전한 형태의 찰갑이 영동 지역에서 발견된 첫 번째 사례로, 신라의 영동지역 진출의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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