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 기회 놓치고 내파(內破)로 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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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10-2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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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경제 뷰포인트]지금 김정은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이재호 초빙논설위원

 

손가락하트 포즈를 취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图片来源 纽西斯通讯社]


# 단계적 호혜전략, GRIT가 진행중?

  게임이론(game theory)은 대북정책을 분석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도구다. 내가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상대방이 이를 외면하고 적대적으로 나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상호주의에 입각한 되갚음 전략(Tit for Tat)을 써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호의를 베풀어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 우리가 일상(日常)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비행 청소년 지도를 위한 처벌과 교화를 떠올려보라.

  상호주의에 입각한 Tit for Tat은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해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게 ‘단계적 호혜 전략(GRIT, Graduated Reciprocation in Tension-Reduction)'이다. 처음엔 호의적으로 대하다가 상대방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 때엔 응징하는 일종의 유연한 상호주의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GRIT의 특성을 지녔다고들 한다. ‘햇볕’을 쏘이다가 1999년 연평해전을 계기로 단호한 응징으로 돌아섰고, 이를 통해 북한의 협력적 태도를 이끌어내 결국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노정호·김용호, 2002년).

#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말까지 들어가며···

  문재인 정부의 초기 대북정책도 이와 유사한 점이 많다. 시혜(施惠) 일색이다. 어느 정권보다도 자비롭고 관대하다. 문 대통령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연내 종전선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설, 경협, 적대행위 금지, 핵 없는 한반도의 실현 등을 이행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지난달 유엔총회에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국제사회의 화답을 촉구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렇다고 북이 크게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 8월 후속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대북 제재에 편승해 철도·도로 협력 사업에서도 돈 안 되는 일만 하려는 심산”이라고 핀잔까지 주었다.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에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안팎의 반 통일세력에 의해 지난 10년간 북남의 결실이 무참히 짓밟혔다”면서 “남녘 동포도 힘을 합쳐 보수 타파운동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노골적인 대남 선동이다. 그런데도 가까운 장래에 대북정책이 바뀔 기미는 없어 보인다.

#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김정은의 친서를 몇 통 받고 나더니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의 대북 유화책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정치적 계산 끝에 나온 거겠지만 북으로선 나쁠 게 없다. 이미 김정은은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군사훈련 유예라는 수확을 얻었다. 일정기간 먼저 호의를 베풂으로써 상대방의 태도를 바꾸겠다는 한·미 양국의 GRIT 전략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이제 결심해야 한다. 이런 흐름에 긍정적으로 호응해 갈 것인지, 아니면 선대(先代)처럼 이용만 하고 말 것인지를. 핵을 포기하고 정상국가로 나아가기에 지금보다 좋은 환경이 없다. GRIT는 일정기간은 참고 기다리지만 상대방이 끝내 호의를 저버릴 경우 강력히 응징한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당신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대북 지원과 제재 완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진력한 문 대통령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도 한 번 보라. 일부 언론은 외교사고(事故)나 마찬가지라고 조롱하고 있지 않은가.

# 선호의가 후응징의 국면이 될 때

  ‘선(先) 호의’가 지나가고 ‘후(後) 응징’의 국면이 되면, 대북 제재는 더 강화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내파(內破)는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진정으로 두려운 건 외부로부터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아니라 내파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진보진영 인사들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평양거리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인도주의 단체인 컨선 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가 발표한 2018년 세계 기아지수에 따르면 북한은 119개 나라 중에 11번째로 작년 27위보다 순위가 오히려 올랐다. 예부터 식위민천(食爲民天), 인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했다. 인민을 굶주리게 하는 정권은 핵도 지켜주지 못한다.



                                  이재호 아주경제 초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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