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다니엘 칼럼] 3567일의 아베 신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노 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 대표
입력 2018-10-01 11:1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노 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 대표 ]


2014년 4월에 한시간 동안 총리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며, 내가 정치가 아베 신조에게서 강하게 느낀 점의 하나는 분위기가 복잡하지 않고 어뗜 결의에 차 있었다는 것이다. “총리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쉬면서 깨달은 것은 내게 동지와 적이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전후 여덟개의 파벌로 시작한 자민당이 거의 독재에 가깝게 수십년을 집권해 올 수 있던 원동력의 핵심은, 파벌들이 피아 식별을 지양하고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었다. 이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적과 동지’를 말하는 아베는 다소 생소하게 보였다.

2006년에 자민당 총재로서 총리 자리에 오른 아베는 1년 후에 질병으로 인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권력에서 떠난 공백기간에 누가 동지이고 적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2012년에 다시 총리로 컴백한 이후, 그는 과연 자신을 보위하는 몇몇 사람에게 맹렬한 충성심을 보여왔다. 부총리겸 재무대신 아소 타로,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 경제산업대신 세코 히로시게 등이 좋은 예이다.

지난 9월 20일에 자민당 총재로 재선됨으로써,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집권이 가능하게 되었다. 도중에 총리 자리를 내놓는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그는 3567일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의 정치가가 된다. 그 뒤를 잇는 일본의 총리를 꼽는다면, 영일비밀동맹의 주역으로 우리의 귀에 익은 가쓰라 타로가 2886일, 전후에 사토 에이사쿠가 2798일, 그리고 조선병탄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2720일로 그 뒤를 잇는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이미지 속에서 아베 신조는 대정치가가 아니다. 역사교과서, 독도, 일본군 위안부, 일제강점기 징용공 등 한·일 간에 놓은 갈등 사안에 반드시 등장하는 아베에 대하여 그리 좋은 이미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호불호를 떠나 그가 2021년까지 집권한다는 시나리오는 한국의 정치, 경제 등에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20년 말까지 현직에 있을 것이고, 한국에 중요한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이 모두 권좌에 남아있게 된다.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남북경협의 물결이 구체화되는 일찍이 없었던 중요한 시기에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정권이 2020년 말까지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문재인과 아베가 이끄는 한일관계는 비교적 양호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워싱턴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5일에 아베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통보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존의 한일합의의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두 나라 사이에 가장 민감한 현안은 일단 ‘선반 위에’ 올려진 상태에서 장래에 새로운 해법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사활적인 조건으로 여기는 아베 총리가 헌법9조를 개정하여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함으로써 실질적인 국방군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세계가 알고 있다. 이제 3년의 임기가 확보된 이상, 이 문제를 관철하려고 애를 쓸 것이며, 이를 찬성하는 보수 정치인들도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한편 한일관계의 개선을 전망하게 하는 새로운 요인들이 있다. 우선 북한 문제에 있어 두 나라는 서로 도움이 돼야만 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임기 중에 한반도의 동질성을 회복하겠다는 목표 아래,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본과 국교를 맺어 정상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IMF 가입을 비롯하여 국제금융체제에 편입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등을 포함하여 북한의 세계경제체제 편입이 한국의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북일 관계정상화에 산파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아베 총리의 경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결은 그가 임기 내에 꼭 완성하고 싶어하는 사안이다. 아베가 외무대신이던 부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던 첫 주에 맡은 사건이 납치문제였다. 그 이후로 아베는 일본의 정치가 중에서 납치문제를 가장 소상히 알고 많이 관여한 사람이다.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은 ‘지극한 통한’이라고 최근에 토로하였다.

일본의 정치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 하나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것’(生き物)이라고. 개성이 강한 정치가들이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통치하는 앞으로의 2년간 동아시아에는 전에 없던 역동적인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다.



노 다니엘
195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를 1978년에 졸업하고 4년간 공군장교로 복무한 후 1983년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MIT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일본금융시장과 정권의 관계에 관한 논문을 썼다. 1994년부터 홍콩과기대 교수를 하다가 2000년에 학계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 경영·전략 컨설팅업에 종사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