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영원한 청년 의사 윤봉길⑦]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 조국의 독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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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입력 2018-08-0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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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국의 結社 '월진회' 탄생

[윤봉길 의사가 부흥원 앞에서 강연하는 장면 기록화.]


해가 바뀌어 1929년 22세가 된 매헌은 이흑룡과의 만남을 계기로 생각과 생활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정을 바치는 청년동지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그에게 큰 위안과 함께 힘이 되었다. 매헌은 이흑룡과는 은밀한 만남을 통해 의기투합하며, 사고(思考)의 폭을 넓혀 나갔다. 또 다른 희망을 보자, 매헌은 그동안 심혈을 기울인 농민활동에 더욱 힘을 쏟았다. 한편 설을 맞아 자신의 생각과 진솔한 감정을 담아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로 빛을 보는 농민운동
매헌은 야학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강사도 영입했다. 제주에서 이웃마을로 이주해 예산공립농업학교에 다니며 학생운동을 펼치던 강봉주는 처음에는 강사자리를 사양했으나 매헌의 간곡한 청에 수락했다. 후일 강봉주는 매헌의 상해의거에 자극받아 친일연극상연 반대투쟁 등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기 위해 독서교육에도 치중했다. 매헌은 그동안 운영돼온 ‘각곡독서회’(角谷讀書會)를 더 활성화 시키기 위해, 서울에 있는 중동학교에 유학 중인 사촌동생 신득(본명 윤은의)에게 책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썼다. 신득은 농촌계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터라 사촌형 매헌의 부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공주 영명학교를 졸업하고, 야학의 강사로 활동하던 정종갑도 많은 책을 마을문고에 기탁했다. 탄력이 붙은 각곡독서회로 인해 야학생들의 사고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었다.
또한 매헌은 마을 청년 5명과 ‘위친계’를 조직하여, 회원들 가족의 상(喪)이나 경사(慶事)에 대비했다. 갑자기 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착안해, 매달 또는 철마다 돈과 곡식을 회비로 비축해 두었다가 적절할 때 사용했다.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은 ‘위친계’의 발족은 매헌의 또 다른 인간적 품성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불같고 호방한 그의 성격 이면에 이런 자상함과 정이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체육회와 기독교 청년회 등을 중심으로 각종 운동경기가 성행했다. 시대 조류에 맞춰 매헌은 지덕체(智德體) 조화를 이룬 인재 양성을 목표로 ‘수암체육회’를 결성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매헌은 ‘협동심 배양, 패기와 야망 진작(振作), 체격을 바로 잡고 체위 향상, 이웃과 친선 도모, 시대적 조류 부응’이라는 다섯 가지 목표를 설정한 뒤,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에 치중했다.
마을 청년들은 매헌의 진정성과 추진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아왔기에 물불 가리지 않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매헌은 마을 청년들과 냇가 근처의 황무지를 개간해, 1천 평이 넘는 운동장을 만들었다. 이후 틈나는 시간에 축구를 통해 체력을 다졌다. 이렇듯 마을 청년들은 야학을 통해 학문을 닦고, 밤에는 책을 통해 인격을 함양하며 체력까지 보강했다.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니. ]


쌀공장과 일제의 수탈
어느 날, 매헌은 동생 남의에게 학생들에게 줄 문구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남의는 예산에서 문구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삽다리(삽교) 시장에서 굉음(轟音)을 내며, 기계에서 쌀이 펑펑 나오는 ‘쌀공장’이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삼화(三和)정미소였다. 집으로 돌아온 남의는 매헌에게 “앞으로는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다”며 자신이 본 쌀 공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일제는 예당(예산, 당진)평야에서 수확한 벼를 삽교에서 모아 탈곡한 후, 군산으로 보내 일본으로 가져갔다. 당시 일제는 군비(軍備) 조달을 위해 벼를 포함해 많은 것을 수탈(收奪)해 가서 우리 농촌은 점점 피폐해졌다. 이날 봉길은 야학에서 일본의 쌀 수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며, 학생들에게 일본에 대한 경각심(警覺心)을 심어 주었다.
이 무렵 이흑룡이 매헌을 또 찾아왔다. 이흑룡은 그동안의 독립군과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매헌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한 강우규(姜宇奎) 의사, 김상옥(金相玉) 의사, 나석주(羅錫疇) 의사, 송학선(宋學先) 의사, 박열(朴烈) 열사 등의 이야기였다. 이흑룡이 다녀간 뒤, 매헌은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는 길은 무력’뿐이라는 것을 실감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애국 학예회 개최로 일경의 감시대상이 되다
1929년 3월 28일 야학생들이 새 마을회관인 ‘부흥원’에 마을사람들을 초청해 학예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이웃마을 사람까지 약 500여 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막이 오르자 일제의 수탈과 침략을 풍자한 <토끼와 여우> 단막극을 공연했다. <이솝우화>를 각색한 연극으로, 여우가 연약한 토끼의 먹이를 가로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는 매헌과 청년들이 각색한 것으로, 관객들은 여우가 일본을 지칭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 챌 수 있었다. 공연으로 인해 매헌은 주재소로 불려갔고, 결국 일경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 대상에 올랐다.
 

[월진회기(보물 제 568호). 월진회기의 바탕색인 흰색은 백의민족, 3줄의 청색은 삼천리 금수강산을 상징한다. 민족의 꽃인 무궁화꽃은 우리 민족이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권회복운동을 위한 월진회 창립
그해 4월 23일, 매헌은 이제껏 해온 계몽운동과 농민운동을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37인의 동지들과 뜻을 모아 기존의 야학, 각곡독서회, 목계농민회, 수암체육회 등을 총체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월진회’(月進會)를 창립했다.
월진회의 당면 목표는 첫째, 농가부업의 장려 둘째, 산림녹화와 유실수 재배 셋째, 학술토론회와 학예회 등의 개최였다. 초대 월진회장에 취임한 매헌은 ‘창립취지서’ ‘월진회기’ ‘월진회가’ ‘월진회금언’을 직접 만들었다.
한 달 전 <토끼와 여우> 공연으로 인해 일경의 감시가 심했던 시기여서, 월진회 창립취지서에는 농민단체로 위장했으나 그 근본 목적은 국권회복운동이었다. 이는 ‘월진회기’에 잘 나타나 있다. 월진회기의 흰색 바탕은 백의민족, 청색 세 줄은 삼천리금수강산, 한가운데 무궁화는 조국이 광복을 되찾아 영원히 번영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독립을 이룩하자는 창립목적을 기(旗)에 담아 마을 청년들의 조국애를 독려했던 것이다.
 

[월진회 명부]


월진회의 창립목적은 ‘월진회 금언’을 통해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매헌은 ‘월(月). 진(進). 회(會). 금(金). 언(言)’이라는 각각 글자가 뜻하는 바를 5행시로 표현했다. 월(月): 월지광(月之光)으로 일락지암(日落之暗)을 다시 밝힐 수 있으리니, 진(進): 진행곡(進行曲)에 발을 맞추어 한마음 한뜻으로, 회(會): 회(會)의 준분(準分)을 간폐(肝肺)에 굳세게 명각(銘刻)하여, 금(金): 금(金)과 같이 당당한 만중(萬衆)의 숭배물(崇拜物)이 되어 보자, 언(言): 언약불수(言約不守)면 불신(不信)이요, 불신(不信)이면 비인(非人)이다.
이 중 ‘월지광으로 일락지암을 다시 밝힐 수 있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뜻은 ‘해가 지면 달빛으로 어둠을 밝힌다’는 것으로, 비록 나라는 잃었어도 월진회 회원 하나하나가 노력하면 그것으로 시대의 어둠을 밝혀 조국의 독립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함으로써 월진회 창립 취지를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매헌은 ‘월진회금언’을 회원들에게 주지시키며,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농민운동을 진행하면서, 매월 14일 신사조 강연회를 개최하여 애국사상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왼쪽) 강봉주(1913. 11. 15~1985. 9.25) 월진회 강사, 건국훈장 애족장 받음. (오른쪽) 정종호 (1911.5.12~1950.7). 월진회 이사겸 강사. 건국훈장 애족장 받음. ]


또한 ‘월진회가’(月進會歌) 가사에도 월진회의 활동 방향이 잘 드러나 있다.
암흑동천(暗黑東天) 계명성(啓明星)이 돋아 오나니 / 약육강식 잔인성을 내어 버리고 / 상조상애(相助相愛) 넉자를 철안(鐵案) 삼아서 / 굳세게 단결하자 우리 월진회.
여기서 계명성이란 금성(金星)의 이명(異名)으로, 새벽에 보이는 속칭 ‘샛별’이다. 어두웠던 동녘 하늘에 새벽이 트여(월진회 탄생) 샛별(월진회)이 점점 밝아오는 세상은 조국의 광복을 의미한다. 결국 ‘암흑동천 계명성이 돋아 온다’는 구절은 월진회의 활약 속에 이룩되는 대한 독립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매헌의 상해의거는 월진회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농민독본>이 이론의 장이라면 ‘월진회’는 실천의 장으로서, 매헌이 꿈꿔왔던 농민개혁운동의 숙원이 하나둘 정리되어 실현되던 터전이며 구국항쟁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보배로 발전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이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사진=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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