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속 이야기] 넷스케이프, 닷컴버블의 신호탄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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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8-08-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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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세 마크 앤드리슨의 넷스케이프, 나스닥 입성…한때 90% 시장점유율로 인터넷의 대명사

[사진=AP/연합뉴스]


1995년 8월 9일. 웹브라우저 기업 넷스케이프가 나스닥에 입성했다. 주당 14달러로 책정된 공모가는 기업 공개 직전에 28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주식 500만주는 상장 첫날부터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 폐장을 앞둔 한때 주가가 75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때는 누구도 5년 뒤를 내다보지 못했다. 닷컴버블의 거대한 서막이었다.

설립자 마크 안드레센은 겨우 24세의 나이로 억만장자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와 비교됐다. 세계적인 시사잡지 타임지는 왕좌에 앉아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안드레센을 표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재학 중 부설 연구소에서 시급 12달러짜리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맡았던 안드레센은 '월드와이드웹', 즉 인터넷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그는 텍스트로만 구현되던 기존의 브라우저 대신 이미지와 아이콘 등 그래픽을 덧붙이면 보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을 훨씬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드레센이 3개월을 꼬박 매달린 끝에 공개한 웹브라우저 '모자이크'는 혁명에 가까웠다.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인터넷 창에 가까운 형태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1993년 11월 모자이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공개되자마자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다. 1993년 한해에만 인터넷 이용자가 34만2000% 증가했다.

당시 학교 측은 안드레센이 연구소 재직 중에 모자이크를 개발했기 때문에 모자이크가 학교의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학교에 정나미가 떨어진 안드레센은 정규직 제의를 뿌리치고 나홀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이 내놓은 새로운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는 한때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면서, 인터넷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넷스케이프의 위세는 MS와의 전쟁을 통해 천천히 허물어졌다. MS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 기본 옵션으로 제공하는 전략으로 넷스케이프의 점유율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2008년 공식적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전히 벤처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안드레센의 풍성한 금발도 이제는 한 올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의 주머니 속에선 넷스케이프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예들이 '열일' 중이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실패의 모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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