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무상삼매(無相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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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5-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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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가 수트라 I.18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


혜안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 바로 ‘혜안(慧眼)’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그런 혜안을 산스크리트어로 ‘프라즈나(Prajna)’라고 불렀다. 프라즈나는 인간의 이성적 추론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정신적 활동이다. 프라즈나는 오히려 ‘통찰력’ 혹은 ‘직관력’에 가깝다. 오랫동안 수학공부를 수련한 수학자가 어떤 난해한 문제풀기를 시도할 때 그(녀)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의 수준이다. 이 생각은 수학공부를 인내와 열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마한 결과다. 그것은 최고의 수학자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프라즈나는 만물에 대한 지식과 그 축적이 아니다. 오랜 공부를 통해 만물의 바깥 모습뿐만 아니라 그 내부 모습을 간파하는 능력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프라즈나는 오랫동안 한자를 공부한 사람이 자신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헌을 보고 그 안에 있는 난해한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프라즈나는 오랜 세월 자신이 몰입한 분야에 대한 일가견(一家見)을 지니게 하는 높은 수준의 정신이다.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17에서는 요가수련자가 요가 수련을 통해 삼매경 안으로 진입한 후 어떤 대상에 대한 깊은 명상, 즉 ‘삼프라즈나타(samprajnata)’, 즉 ‘유상삼매’를 소개했다. 요가수트라 I.18에서는 또 다른 명상을 설명한다. 이 삼매경에서는 명상의 가시적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련자가 경험한 적은 없었지만 잠재의식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 등장하는 이미지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꿈 안에서 발견된다. 이 현상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산스크리트 단어는 삼프라즈나타에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사 a-를 첨가한 ‘아삼프라즈나타(asamprajnata)’다. 파탄잘리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또 다른’이라는 산스크리트 단어 ‘안야(anyah)’를 사용했다. 그 이유는 무상삼매경이 유상삼매경의 반대가 아니라 모든 개념들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무상삼매
요가수련자는 오감으로 경험한 대상으로부터 얻는 개별인상인 ‘프라트야야(pratyaya)’를 깊이 보는 유상삼매를 경험한다. 그 후에는 자신이 생전에 오감으로 경험한 적이 없는 대상을 떠올린다. 이 무상삼매는 마치 씨앗상태로 존재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실질적인 생각의 싹을 내지 않는다. 인간의 생각 안에서 잠재성으로만 존재한다. 생각, 기억 그리고 행위를 유발하는 잠재적인 인상도 숨어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마음의 심연에 존재하는 ‘푸루사(purusa)’는 의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생(自生)적이며 자존(自存)적이다.

무상삼매의 상태를 종종 ‘구름’과 비교한다. 비행사는 비행을 하다 보면 구름을 지나는 경우가 있다. 아래 펼쳐지는 경치가 없어지고 방향감각이 사라진다. 비행사는 비행기가 산이나 다른 비행기와 같은 커다란 물체와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행을 지속한다. 요가수련자가 명상의 대상을 지니는 단계에서 그 대상이 사라진 단계로 진입하면 그(녀)는 공허(空虛)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단계에서 자신이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대상이 생길 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몽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돼 있고 경계하고 있다. 그래야 그가 속해 있는 어두웠던 공허가 이전에 전혀 새로운 빛으로 가득한 장소에서 새로운 것을 명료하게 보기 때문이다. 숙련된 요가수련자는 이 경험을 반복하여 자신이 발견하고자 하는 궁극적 자기 자신인 푸루사와 합일한다.

푸루사는 불멸하고 살해될 수 없으며 육체가 죽어도 살아남는다. 그것은 태어나지 않고 영원하고 고유하며 불사를 수 없고 창이나 칼로 찌르거나 자를 수도 혹은 비바람을 맞을 수도 없다. 오랜 수련을 거친 겸손한 요가수련자는 자신의 생각 속에 푸루사를 감지한다. 이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연관되어 존재하지 않고 그것 자체로 우주가 탄생할 때부터 존재한 원칙들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1795년 작. [사진=영국박물관]


요가수트라 I.18
유상삼매경에서 무상삼매경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공허하며 형태가 없다. 구름은 액체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다. 만일 우리가 전등을 어두운 방에 비춘다면 전등에서 나간 빛이 머무른 자리에 있는 물건들을 비로소 볼 수 있다. 이 물건들은 전등 빛의 도움으로만 그 존재가 확인된다. 우리가 빛이 머무르는 물건을 볼 수 있지만, 빛 그 자체는 볼 수 없다.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18에서 무상삼매경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비라마 프라트야야 아비야사 푸르바 삼스카라 세쇼-안야(virama pratyaya abhyasa purvah samskara seso-'nyah)’ 이 문장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오랜 연습 후에 오감을 바탕으로 한 생각을 모두 멈추게 한 후 남아 있는 (잠재적) 인상이 다른 삼매(무상삼매)다.”
 
생각 멈추기
마음이 무상삼매경에서 무위(無爲) 상태를 유지하기 전 통과해야 할 생각이나 마음의 상태가 있다. 파탄잘리는 이 수트라에서 무상삼매경 직전의 상태를 ‘비라마-프라트야야(virama pratyaya)’, 즉 ‘(모든) 생각 멈추기’라고 한다. 생각을 멈추는 것도 생각이다. 이것은 모든 생각을 제거하기 위한 마지막 생각이다. 요가수련자는 유상삼매경에서 쥐고 있던 씨앗을 공허한 마음에 떨어뜨린다.

가장 심오한 생각은 오히려 생각을 멈춤으로 생긴다. 수련자가 자신의 마음을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모아 삼매경 내로 들어가 하는 행위는 무위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천지개벽을 준비하는 고요한 마음의 준비상태이며 우주의 질서를 형성하는 혼돈의 적막이다. 11세기 페르시아 학자 알-비루니(Al-Biruni)는 이 단계의 영혼을 껍질로 싸여 있는 쌀알에 비교한다. 쌀이 껍질을 유지하는 한 그 쌀은 싹을 틔우고 낱알을 만들 가능성을 지닌다. 껍질이 제거되면 이 가능성은 사라진다.
 
오랜 연습
자신의 본 모습인 푸르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물결치듯 항상 일어나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 요가를 오랫동안 수련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잡념이나 생각을 제거할 수 없다. 그것은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정한 분야에 인내를 발휘하여 몰입했다는 점이다. 양궁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수년 동안 매일 활쏘기를 연습해야 한다. 또한 양궁선수는 실제 시합에서 화살을 시위의 정가운데 절피에 놓고 시위를 힘껏 당긴 후 멈춰야 한다.

이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팔 근육뿐만 아니라 온몸이 안정되게 10시간 같은 3초를 미동도 없이 멈춰야 한다. 이것은 오랜 수련의 당연한 결과다. 파탄잘리는 이 과정을 ‘아브야사 푸르바(abhyasa purvah), 즉 ‘연습에 뒤따르는’ 혹은 ‘연습 후에’라고 표현했다.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1.13에서 ‘연습’을 ‘흔들림이 없는 정적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정의했다. 무상삼매경은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한 자가 도전하는 높은 차원의 명상이다.
 
잠재적 인상
파탄잘리는 무상삼매경을 ‘삼스카라 세쇼(samskara seso)’, 즉 ‘잠재적 인상’이라고 정의한다. 잠재적 인상은 요가수련자가 참다운 자신인 푸루사를 발견하기 직전의 상태로, 거대한 깨달음의 이전 단계다. 생각을 멈추면 자신도 자신 안에서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이전과는 다른 심오하고 숭고한 생각이 떠오른다. 우주가 탄생하기 직전, 즉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을 통해 우주를 구성한 시간과 공간이 등장한다. 한 유대 시인은 기원전 6세기 우주창조 이전의 상태를 히브리어로 ‘토후 와-보후(tohu wa-bohu)’(창세기 1.2)라고 표현했다.

빅뱅 이전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없어 숨을 길게 내쉬는 ‘후’를 이용하여 이 구절을 만들었다. 이 구절은 흔히 ‘공허하고 혼돈스럽다’라고 번역한다. 모든 것이 정지된 태고의 정적상태다. 모든 것이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상태다. 요가수련자는 나도 모르는 우주적인 자아를 마주치기 위해 인내를 가지고 수련해야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수련이 아니라 그런 대상들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 주는 씨앗을 찾는 수련이다. 나는 더욱 나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내가 감동하고 싶은 나 자신인 푸루사의 윤곽이 이곳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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