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학생인건비, 갹출 사용하면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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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정 변호사(법무법인 이안)
입력 2018-05-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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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례 중심으로 공통경비 지출기준 제시

1. 들어가며

올해 초 과기정통부는 「학생인건비 계상기준」을 개정 고시하였다.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학생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를 학위 과정별로 상한을 두었던 종래 방식을 버리고 연구기관이 학생인건비를 실정에 맞게 정하도록 하되 하한 금액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인건비를 등록금과 생활비에 충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향하여 열악한 연구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이다.

학생의 연구과제 참여는 교수의 연구를 보조하며 노동을 제공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학위 취득에 필요한 연구과정을 수행하는 학업 과정이라는 면도 있어 그간 학생인건비는 다소 회색지대에 놓여 있어왔다. 해마다 학생인건비를 개인적으로 착복하거나 타 용도에 사용하여 교수가 입건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접하는 것도 그간 학생인건비가 학생 노동의 대가보다 연구과제비라는 점에 보다 무게중심을 두었던 관행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금번 고시의 개정은 학생연구원의 생계를 개선시키는 효과는 물론 학생인건비가 노동의 대가라는 것을 재확인한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학생인건비가 상향되더라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거나 학생이 자유롭게 처분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계상기준은 무용지물인바 이를 대비해 「학생인건비 통합관리 지침」 등은 학생인건비 공동관리 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서 공동관리란, 학생연구원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회수하여 연구실에서 관리,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책임자 등이 학생인건비를 착복, 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위반 시 정도에 따라 학생인건비 통합관리기관 지정이 취소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연구책임자는 행정제재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다.

문제는 규정이 용도나 경위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학생인건비 공동관리로 포섭하고 있어 연구실 경비 통장을 개설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보니 결국 교수와 학생 간 연구 필요경비 등을 두고 서로 눈치싸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수와 불화가 생긴 학생이 그간 지출한 경비를 인건비 공동관리라고 주장하며 민원을 제기하면 교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상기 지침이 인건비 공동관리를 원론적·포괄적으로 제시할 뿐, 그 세부적인 태양이나 위법성은 사법적인 판단에 맡기고 있어 실무상 해석이 분분하기도 하다. 이에 이하에서는 학생인건비 공동관리에 대한 행정처분이 취소된 사례, 무죄판결 받은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 현장에서 공통경비 지출시 참고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학생인건비 공동관리와 행정제재

가. 행정제재 근거와 사유
행정제재는 행정상 법률적 이익을 박탈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공권력 행사이므로 반드시 법률의 근거를 요한다. 학생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회수하여 착복하거나 타용도에 사용하면, 과학기술기본법상 ‘사업비를 용도 외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아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 사업비 환수, 제재부가금 징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학생인건비를 일부 회수하여 공동관리 하였더라도 실상 그 사용내역이 용도 외로 보기 어려운 경우라면 상기와 같은 제재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간혹 단순히 학생인건비가 일부 공동관리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행정제재를 가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에 대하여 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를 보자.

나. 참여제한 및 환수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사례(서울행정법원 2016구합72419, 서울고법 2017누74513호로 항소심 계속 중)
A교수는 다수의 국가연구개발과제에 책임자를 맡아 오던 중 본인의 연구실 소속 연구원들의 인건비 지급 기준을 제시하고 동 기준을 초과한 금액을 공동계좌에 입금토록 한 후 연구실 내 직원에게 관리토록 하였다. 이에 해당 행정청은 공동관리 계좌 개설, 이용이 사업비의 용도 외 사용으로 보고 A교수에게 3년간 참여제한 및 4년치 인건비 환수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실제 동 계좌의 금원은 대부분 연구실 필요 물품이나 간식비, 출장 경비 등에 사용되었고, 협약 지연 등으로 연구비 지급이 지체되는 경우 학생들에게 장학금 용도로 선 지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에 법원은 동 사안에 대해 교수가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유용한 바가 없어 인건비 공동관리 금지 규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 공동경비를 조성한 동기나 경위, 경비 사용처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사업비를 용도 외로 사용한 경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A교수에 대한 제재처분을 모두 취소하였다.

다. 시사점
첫째, 행정지침이나 규정위반이 곧바로 행정제재 사유는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행정 실무자들 중에도 간혹 행정지침이나 협약규정에 매몰되어 혼동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행정제재 대상인지는 반드시 법률상 제재사유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즉, 인건비 공동관리가 행정제재 대상인지는 한 스텝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학생인건비 공동관리 금지 규정을 도입한 취지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공동관리 계좌가 학생인건비 횡령 도구로 흔히 사용될 뿐 아니라 횡령 유혹을 유발하는 동기가 됨은 의문이 없고 이러한 상황을 원천봉쇄하여 학생연구원의 인건비 지급을 보장하려는 것에 이의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연구실의 경비 운영의 자치권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 않을까.

3. 학생인건비 공동관리와 사기죄

가. 기망과 인건비 편취
대학의 경우 정부과제 수주 시 산학협력단이 협약의 주체가 되고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과제를 수행한다. 학생인건비 통합관리가 시행되면서 학생인건비는 산학협력단이 연구책임자별 학생인건비를 전체 관리하되 연구책임자가 정한 연구참여율에 따라 학생 계좌로 직접 이체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급된 학생인건비를 사후에 일부 갹출받아 공통계좌를 개설, 이용하는 것에 대해 연구책임자가 사기죄로 종종 기소되기도 한다. 학생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일부 돌려받는 것은 결국 인건비 부풀리기나 허위연구원 등록하여 산학협력단을 속여서 인건비를 과다 청구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죄 여부를 논하려면 대학의 연구인력 가동 실태와 연구과제비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인데 하기 사례는 좋은 예라 하겠다.

나. 학생인건비 공동관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사례(광주지방법원 2014노1512, 상고기각)
B교수는 수년간 20여건의 정부과제 연구책임자로 과제를 수행해오면서 자신의 연구실 학생들을 연구에 참여시켜 인건비를 지급해왔다. B교수는 평소 연구원들의 경력에 따라 급여를 정하고 논문 발표 등 성과가 있는 연구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의 인건비 지급 지침을 정하고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연구원 명의로 연구실 공통계좌를 개설, 관리토록 하면서 동 지침을 초과하는 금원을 공통계좌로 모아 사용토록 하였다. 이에 대해 원심은 B교수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실상 공통계좌 금원은 대부분 실제 연구에 참여했으나 연구원 변경 절차를 거치지 못해 인건비를 지급받지 못한 인력에 대한 인건비, 논문이나 특허 등록에 대한 연구원 인센티브, 학회 출장비, 연구원 축의금, 연구실 필요물품 구입 등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출은 연구원들의 인건비성 지출이거나 연구수행에 간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인건비를 부풀리려는 고의나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인정하여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파기, 무죄를 선고하였다.

다. 시사점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기망하여 재산적 처분을 하게 한다는 고의와 타인의 재산을 불법으로 영득하려는 의사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안과 같이 학생들에게 이미 지급되어 각 학생들이 처분권을 득한 금원을 필요에 의해 사후적으로 갹출 받은 경우라면, 처음부터 학생에게 지급할 의사가 없었던 경우와 다르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교수가 개인적으로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통경비를 마련한 것이 아니므로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학생의 주머니에서 금원이 지출되었다는 결과만 두고 소위 교수와 학생이 갑을관계라는 방정식에 지나치게 앞세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4. 나가며

대학의 경우 타과제와 달리 사업계획서에 인력을 특정하지 않고 총 인력투입량(man-month)만을 기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학의 연구 인력은 주로 석사,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력풀의 변동성과 과제의 특성 등을 고려해 실제 참여인력으로 누구를 얼마만큼 투입할 것인지를 교수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과제 중도에 연구 인력이 변경되더라도 적시에 반영하지 못하거나 연구지원 인력에 대한 보상 필요성 등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과제비 중 간접비 지출은 연구책임자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상 교수와 연구원들이 품앗이 개념으로 연구실 필요경비 등을 모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용도가 엄격히 정해진 정부과제비라는 원론적인 논리부터 내세우기보다 열악한 연구실 환경과 과제비 집행 구조에 대한 이해와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은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법무법인 이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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