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의 골프& 休] 연못에 빠진 ‘박인비의 미소’, 그 발칙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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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 기자
입력 2018-03-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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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여제' 박인비의 미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가?”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 여제’ 박인비에게 외신 기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을 앞둔 29일(한국시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이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박인비의 대답은 역시 ‘골프 여제’다웠다. “이번 대회에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모두 왔다. 아버지께서 ‘갤러리 그랜드슬램’을 해보고 싶어 하신다. 우승한 메이저 대회 가운데 이 대회에서만 안 계셨다.” 박인비는 2013년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LPGA 투어 선수들의 꿈인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넘어 ‘갤러리 그랜드슬램’을 목표로 삼은 박인비의 여유다.

ANA 인스퍼레이션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에서 개막해 나흘간 시즌 첫 ‘메이저 퀸’을 가리는 열전이 펼쳐진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에 대한 의욕을 드러낸 박인비는 “이번 주에 기회가 된다면 부모님 앞에서 우승해 연못에 빠지는 영광을 누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회 우승자는 특별한 ‘전통 의식’을 치른다. 대회 마지막 날 우승자가 18번 홀을 마친 뒤 그린 옆 ‘호수의 여인들(The Ladies of The Lake)’이라고 불리는 연못에 몸을 던지는 우승 세리머니다.

이 독특한 전통은 ‘명예의 전당’ 멤버인 에이미 앨코트(미국)가 1988년 이 대회 전신인 나비스코 다이나 쇼어에서 우승한 뒤 연못에 몸을 던지며 자축한 이후 ‘공식 세리머니’로 자리잡았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대회 진행 총책임자를 맡았던 테리 윌콕스의 공로를 기리며 2006년부터 그의 손주 ‘포피’를 붙여 ‘포피 폰드(Poppie's pond)’라는 이름을 새겼다.

이런 특별한 세리머니가 있기에, 박인비가 가족과 함께 하는 이번 대회에서 ‘호수의 여인’을 꿈꾸는 이유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마음의 여유도 찾았다. 2주 전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하며 심적 부담을 덜었다. 그가 말하는 또 다른 남은 목표는 ‘즐기는 골프’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골프를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결과에 연연하게 되면 골프가 잘되지 않을 때 골프가 싫어지더라. 앞으로도 오래 골프를 하려면 결과와 관계없이 골프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쉼표 없이 달려온 박인비가 골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최근 2년간 부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최근 2년 동안 부상에 시달리며 시즌이 한창인 8월에 조기 마감했다. 박인비는 마음고생을 털어낸 뒤 성적을 떠나 골프 자체를 즐기기로 마음을 바꿨다. 올해는 일찌감치 우승도 했고, 몸 상태도 좋아 ‘즐길 준비’도 끝냈다. 세계랭킹 1위 자리에 대한 미련도 버린 지 오래다.

“예전에는 매 대회 기자회견에 참석해야 했지만, 올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사람들의 관심을 덜 받게 되니 골프에 더 전념할 수 있어 좋다. 지금 세계 1위가 아닌 것이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1위도 좋지만, 그 자리에서 내려와 있는 것도 충분히 즐길만한 일이다.”

박인비는 미스 샷이 나와도, 환상적인 샷으로 홀 안에 넣어도, 감격적인 우승을 해도, 늘 표정이 한결같다. 그래서 그의 앞에는 ‘돌부처’라는 별명도 붙는다. 이번 대회에서 ‘아빠’와 함께 ‘호수의 여인’이 된다면 한 번쯤 환하게 웃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포피 폰드에 빠진 ‘골프 여제’의 흠뻑 젖은 미소를 또 한 번 보고 싶다. 발칙한 상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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