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정근식 원장 "남북정상회담, 북미관계 방향·범위 결정할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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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은주 기자
입력 2018-03-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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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남진 아주경제 논설고문-정근식 통일평화연구원장 대담

허남진-정근식 대담[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한반도 전쟁 직전의 위기가 평화를 위한 기회로 전환되면서 '탈냉전'의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후속인 북·미 정상회담의 예비회담 성격이지만, 오히려 북·미 관계의 방향과 범위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외교 정세가 급물살을 타며 본지가 지난 9일 마련한 대담에서 허남진 아주경제 논설고문과 마주 앉은 정근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원장은 남북-북미 상황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북측 대표단의 두 차례 방남 △대북특사단의 답방과 남북 정상회담 4월 개최 합의 △대북특사단의 방미와 북·미 정상회담의 5월 개최 발표는 불과 한달 사이에 진행됐다.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 묻자 정 원장은 "많은 사람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가 예상한 북·미 간 협상의 교환구조와 다른 출발점을 북한이 파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경로에 유의해야 한다"며 "이것이 현재 상황을 누가 주도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이 확정되자마자, 일본과 중국의 행보도 바빠졌다"며 "강력한 대북 제재론을 견지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당황하고 있지만, 아마도 일본은 1970년대 초반 미·중 데탕트(긴장완화) 초기의 행보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일본은 미·중 간 화해 기류가 형성되자마자,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한 바 있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치적으로 보면 완벽한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 해체로 가야 하고, 문화적으로 보면 세계시민으로 교양을 가진 성숙한 사회로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반도를 '세계적 차원의 냉전의 대결장'이라고 평가한 그는 한반도 문제가 단순히 남북 민족간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크게는 전세계로 범위가 확장된다고 분석했다. 

정 원장은 "1945년에 한반도는 미국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했다. 한반도 분단은 동아시아 전체가 북방과 남방으로 나뉘는 계기이며, 3·8선은 분단을 가르는 중요한 경계선"이라며 "또 하나의 (동아시아) 분단은 1949년까지의 중국 내전으로, 중국 내전과 한국 전쟁은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다, 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의 만남, 헨리 키신저의 방중 등으로 중·미 관계가 급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북관계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70년대를 기점으로 미·중 간 데탕트와 남북 간 긴장의 시간적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신체제의 엄격한 통제체제 속에 있었다. 정 원장은 "세계적인 흐름에 적응못해 발생한 게 '5·18 민주항쟁'"이라고 덧붙였다.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는 1992년 중요한 변화를 체험했다. 정 원장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탈냉전 흐름 속에서 한국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러시아·몽골·중국과 수교한 이때를 '비대칭적 탈냉전'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비대칭적 탈냉전은 남한이 기존의 북방·공산 진영과 화해했는데, 북한은 미국·일본과 화해하지 못하면서 생긴 불균형 상태를 지칭한다.

그는 "동아시아 냉전분단 체제의 일차적인 해체가 비대칭적 탈냉전이라면, 2차는 북한과 미·일의 수교, 화해를 수반해야 통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냉전분단 체제 해체를 위한 일차적 실험이었다는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으며 남북 관계가 과거로 회귀하다, 이번 문재인 정부 성립을 계기로 과거의 남북 흐름이 복원됐다"며 "한단계 나아가 냉전분단체제의 해체로 나아가는 길목에 들어선게 아닐까 싶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야당이 '북한의 시간 끌어주기' 우려를 제기하며 '남남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이 남긴 부정적 유산'이라고 정의했다. 남북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여전히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일각에서 '북한에 시간을 끌어주는 게 아니냐', '북핵이 완성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런 입장에서 보면 대안은 북한을 폭격하고, 전쟁해야 하느냐는 근본적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고 답했다. 

분단국가였다가 극적으로 통일을 이룬 독일의 예를 든 그는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해방 이후 100년이 되기 전에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통일에 가까운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며 "결국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라고 전했다. 

이어 "냉전 체제의 완전한 해체, 타인에 대한 배려와 포용, 나아가 북한에 대한 관심과 배려·포용이 한 세트로 연결된 과제"라며 "우리 국민이 평화철학에 기초한 국제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북한 문제를 비롯, 우리사회 전반에 배려와 포용이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는 정 원장은 미래 세대를 이끌 수 있는 인재육성과 고등교육 정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 원장은 "근대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시민교양을 발전시킬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공부는 젊을 때 학교에서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한국 사회도 50대, 60대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지식을 섭취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배려와 포용이 부족해진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1998년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를 꼽았다.

정 원장은 "IMF를 겪으며 대학의 인문학, 사회과학 등 순수학문 학과가 어려워지고, 안정적인 로스쿨·법대·의대로 몰리는 변화가 생겼다"며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위주의 직업을 택하며 미래에 대해 책임지는 엘리트가 적어졌다"고 말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청년이 직업을 갖기가 어려워지고, 자아실현의 기회가 제한되며 이른바 '루저'가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개인 책임이라기보다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 세대 후의 젊은이를 누가 책임지느냐라는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점진적으로 고급 일자리에 대해 배려했으면 한다. 그들에게 사회적 배려와 포용을 가르치는 교육이 발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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