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마음의 '허기'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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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03-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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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에서 도망치듯 고향을 내려온 혜원(김태리 분). 일과 사랑, 돈과 현실에 치여 사는 그는 속된 말로 딱 ‘요즘 애들’이다. 수많은 경쟁과 강요 속에 살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적은 월급에 허덕이는 청춘을 대표하는 셈이다.

영화 ‘제보자’ 이후 4년 만에 ‘리틀 포레스트’로 스크린 복귀한 임순례(58) 감독은 혜원 같은 ‘요즘 애들’과 비틀린 현 사회의 모습에 주목했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동명의 일본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임 감독은 극 중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와 건강한 한 끼를 지어먹는 과정을 통해 ‘요즘’ 관객에게 위로와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혜원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분), 은숙(진기주 분)과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영화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임순례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일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또 동명의 일본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각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무엇인가?
- 한국적 정서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작가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보니 생각보다 ‘한국화’가 쉽지 않더라. 정서나 환경이 상당히 일본스러웠기 때문이다.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와) 어떤 걸 취하고, 버릴 것인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또 많은 분이 원작을 좋아하시다 보니 어떻게 차별성을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던 것 같고…. 리메이크든 뭐든 이건 한국영화니까. 기획 단계부터 ‘한국화’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컸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땐, 군데군데 비어있는 구간이 많았을 것 같은데
- 원작 자체가 기승전결이 있거나, 관객들이 ‘와’ 할 만한 구석은 없다. 제작비도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고 많은 사람이 볼 만한 소재도 아니니까. 처음부터 욕심을 적게 가졌다. 이 영화를 좋아할 사람들만 와서 봤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했다. 거기다 ‘김태리 정도의 스타성이면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거다.

영화의 정서나 감성을 보면 관객층이 명확해 보인다. 2030 여성 관객들이 타깃인 것 같은데
- 그렇다. 특정 영화를 찾아보는 경험과 훈련이 되어있고 장르 영화나 문법화된 영화들을 좋아하는 관객층이다. 거기다 여성 관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나. 우리 영화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인테리어라든지, 메뉴 선정, 대사 등도 젊은 친구들을 고려해서 만들었다. 속된 말로 ‘구리다’고 하는 것을 가급적 빼려고 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그 ‘구리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 예컨대 일본영화처럼 결말부에 여주인공이 마을에 정착한다거나, 잔치를 연다거나 하는 것. 하하하. 우리 영화에는 유난히 젊은 친구들이 스태프로 많이 참여했는데 하나같이 잔치를 연다는 대목에서 ‘구리다!’고 했다. 시골에 살아도 공동체에 몰입하기보다 자기 생활이 보장되는 걸 원하는 것 같았다. ‘일본영화의 엔딩이 한국관객들이 원하는 엔딩일까?’ 고민했었다.

‘요즘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구간도 있었을 텐데
- 물론이다. 저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려면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헤어져야 하는 세대니까. 시나리오를 논의할 때 젊은 친구들이 ‘그건 구세대의 방식’이라고 했다. 우리 스태프들도 영화의 예비 관객이니까 ‘안 된다’, ‘구리다’고 하는 건 걷어낸 거다. 요즘 관객들에게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고집하고 싶었던 게 있을 텐데
- 마을 회관 장면을 몇 번 어필했었는데 ‘6시 내고향 같다’며 너무 싫어했다.

개인주의적인 요즘 세대에 대해 아쉬움도 있었을 텐데
-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좋지 않다. 기존 관습이나 공동체 문화에 자유를 잃고 억압당하면서 사는 것도 안 좋지만 나 혼자만 사는 것도 지혜롭지는 않다. 농촌 특성상 일종의 공동체지 않나.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의 개성, 자유의 접점을 찾아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임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에는 일본영화에는 없는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그중 하나가 고모에 대한 이미지, 한국적인 간섭 등의 모습이었다. 그마저도 많이 눌렀다고 생각이 드는데
- 실제였다면 흙발로 마당까지 들어오시고 평상에 누워계시거나 술을 드셨겠지. 하하하. 극 중 토마토를 먹을 때 ‘풀 좀 뽑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등, (간섭을) 살짝살짝 넣었다. 현실은 더 심할 수도 있지만. 이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무례하다고 여기면 갈등이 생기는 거고. 같은 시골이라고 해도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역사적 배경, 지역적 특색을 이해한다면 받아들이기가 더 좋을 거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생활 중이라고. 이런 생활들이 ‘리틀 포레스트’에도 도움이 되었나?
- 콕 짚을 수는 없지만 아마 상당히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지금 12년째 텃밭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 이 영화가 단순하게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지 않나. 사계절의 가치나 농작물을 키우는 것 등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로 생각한다. 특히 연출부·제작부가 토마토 농사를 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농사가 처음이라 안 열리면 어쩌나 너무 걱정하는 거다. 그나마 저는 다 아니까 ‘때가 되면 열릴 거다’ 그 친구들을 안심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나름 농작물에 전문가니까. 하하하.

일본영화와 달리 엄마와 혜원 간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풀어갔다
- 엄마가 떠나는 걸, 혜원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딸을 두고 말도 없이 떠나야 하나? 관객들에게 이 모습이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다. (엄마 캐릭터를) 엉뚱하고, 쉽게 이해 안 가는 캐릭터로 설정했고 문소리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해주면서 많은 부분 설득하게 된 것 같다. 관객들도 잘 받아들여 주셨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극 중 모녀 관계는 한국영화에서는 낯선 감성을 가졌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했다
- 영화 초반, 재하와 은숙이 트럭을 타고 가며 혜원 모녀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나. 남자 관객들은 재하의 입장일 거고, 여자 관객들은 은숙의 입장일 거로 생각한다. 저의 경우는 아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항상 특별한 것 같다. 가장 짜증을 내다가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이 영화는 친구 간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건 혜원이 엄마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엄마가 말도 없이 떠나버린 것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건강하게 털어버릴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중심축이었다. 대사나 내레이션 연기 톤에도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다.

영화를 보다 보니 두 모녀가 똑 닮았더라
- 처음에는 ‘두 사람이 모녀를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안 닮은 것 같고, 나이 차이도 적으니까. 그런데 문소리 씨는 워낙 연기에 베테랑이라 그 부분을 잘 표현해줬고, 김태리 씨도 엄마와의 호흡을 좋아하고 잘 따라줬다.

요즘 ‘리틀 포레스트’를 비롯해 ‘윤식당’, ‘효리네 민박’까지 힐링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지 않나. 왜 ‘요즘 세대’가 이런 힐링에 열광한다고 생각하나?
- 대부분의 사람이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윤식당’을 보면 옆 식당 셰프들, 주민들과 밥을 먹고 대화하는 모습이 여유롭지 않나.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효리 씨의 경우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만, 그런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나. 한국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는 사람을 몇 못 봤다. 그렇기 때문에 힐링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인기를 끄는 게 아닐까 싶고. 너무 각박하고, 바쁘다 보니까 그런 데서 대리만족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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