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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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8-02-0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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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칼럼]

 

[사진=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단박에 감이 왔다. 사실이 아니라면 현직 검사가, 그것도 여성이 저럴 리가 없다. 그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도 찾아봤다. 납득을 넘어 감정이입까지 되었다. 아마도 사회생활 연차가 조금 된 여성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당했거나 적어도 주위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강제추행은 범죄이니 이제라도 단죄되어야 한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을 하는 남성들 중에도 뒤에서는 8년이나 지난 일을 왜 이제 와서? 혹은 어떤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정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피해자 조사가 이루어졌고 당시 정황을 잘 알 만한 관계자와 가해자 쪽의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8년 가까이 지났다 해도 의지의 문제일 뿐 진실규명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서 검사 사건은 7년3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다. 이 사건에는 막다른 골목에서 당사자가 폭로라는 형식을 띠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세 차례 있었건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첫 번째는 사건 직후 법적 제재가 아닌 사과를 받는 것이었지만 끝내 가해자의 사과는 없었다. 두 번째는 동료 검사가 2017년 검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2개월 뒤인 9월 서 검사가 법무부장관에게 메일을 보내고 검찰과장과 면담까지 했지만 이 단계에서도 조직 차원의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사자 폭로 뒤에야 불난 호떡집인 양 서둘러 검찰에 조사단이 꾸려지고 법무부에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만약 현직 검사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이토록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켰을까. 시민단체 진영에서도 부차적으로 다루어지거나 여성‘만'의 문제로 치부되던 여성폭력 문제에 무엇이 전국 릴레이 시위를 조직하고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달구게 된 것일까.

이렇게 폭발력이 큰 것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이고 게다가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해야 하는 검찰 조직 내 문제 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유명인인 탓에 불붙은 것과 엇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성희롱이나 강제추행 같은 성폭력이 직장 내에서, 혹은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는 눈을 감고 살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알려지는 건 8%에 불과하다는 공식 통계를 본 적도 있다. 피해자가 열에 아홉은 눈물을 삼키고 침묵하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법조계를 필두로 정치권, 학계 등에서 서 검사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한국에도 미국판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시작되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수많은 서지현들’이 이미 존재해왔고 이를 알리려는 힘겨운 투쟁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2016년 9월 발화된 문단의 성폭력 폭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단 트윗들이 넘쳐났고 ‘#미술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등 다른 분야로도 번져갔다.

2018년 지금도 #Metoo나 #Withyou 등의 해시태그를 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분명 반길 일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상당수 성폭력 사건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목격자가 존재한다. 서 검사 사건도 장례식장이라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그야말로 중인환시((衆人環視) 상황에서 일어났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성폭력이 일어날 조짐을 보일 때, 침묵하지 않고 방관하지 않고 문유석 판사 말대로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하고 제지해야 한다. 목격자의 개입은 성폭력을 막거나 더 큰 폭력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임이 분명하다.

가해자들은 대개 부적절한 농담과 신체 접촉을 여러 차례 하면서 어디까지 용인되는지 시험해 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른바 간을 보는 것이다. 당사자나 주위 사람들이 적극 거부하지 않으면 이들은 대담해진다. 이때 만약 목격자가 ‘뭘 하는 것이냐’, ‘내가 보고 있다’고 개입한다면 효과적으로 성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등에서 목격자 교육을 강조하는 연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성폭력 여성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게 목격자들 역시 현장에서 적극 제지하거나 사후에 증언조차 기피하는 것은 결국 권력관계에서 비롯한다. 피해자도 목격자도 가해자에 비해 힘에서 열위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처럼 집단과 위계를 중시하는 곳에서는 가해자를 향한 문제 제기가 더욱 어렵다. 왕왕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조직의 리더, 특히 남성 리더들이 적극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나 아내, 딸, 누이동생들 아닌가 말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미투와 위투하고 목격자가 미퍼스트해서 성폭력이 만연한 시대를 끝내는 타임즈업(Time’s Up)하자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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