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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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7-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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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기독교인들에게 이스라엘은 정신적 고향이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신이 택한 선민(選民)들이 사는 성지(聖地)이다. 하지만 실상을 알면 실망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에서 기독교는 소수 종파 신세이다.

2017년 추정 이스라엘 인구는 879만명인데 74.8%가 유대교, 17.6%가 이슬람교이다. 기독교는 2.0%에 불과하다. 이슬람교의 시아파에서 갈려 나온 드루즈교(1.6%)와 비슷하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집단 린치나 왕따의 대상이다. 신문에서 종종 기독교인 박해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말해 중동의 화약고에 성냥불을 그어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지만, 정작 유대교의 이스라엘에서는 ‘썰렁~ 크리스마스’이다. 다만 성지 순례객과 관광객을 상대로 한 계절 마케팅이 요란할 뿐이다.

여기서 잠깐, 이슬람교와 기독교와 유대교는 본디 적대적인가. 유일신 야훼(여호와)와 알라는 상호 배타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차양자동 출이이명(此兩者同 出而異名)'이다. 둘 다 같은데, 이름만 다른 것이다. 유대교의 야훼(YHWH)와 기독교의 여호와(Jehovah), 이슬람의 알라(Allah)가 모두 같은 신을 지칭한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선지자 모세 역시 세 종교의 핵심 인물이다. 결국 세 종교의 뿌리는 하나이다.

예컨대 쿠란에서 동정녀 마리암(마리아)은 알라의 뜻에 따라 사막에서 홀로 예수를 낳는다. 알라는 이때 사막 한가운데서 샘물을 솟아나게 해 마리암의 목을 축여준다고 서술한다. 기독교의 신약성서와 다른 점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등장하지 않고 홀로 잉태하는 것이다. 예수가 행한 기적도 신약성서와 거의 똑같이 기술돼 있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여 군중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나환자를 고치며,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일화도 나온다.

그러면 세 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에 대한 관점이다. 이슬람은 예수(쿠란에서는 Isa)의 동정녀 탄생과 각종 기적 행위를 인정하지만, 삼위일체 신(神)으로서가 아니라 유일신 알라의 권능을 대신해 기적을 행한 선지자로 본다. 이슬람에는 5대 선지자가 있는데, 노아-아브라함-모세-예수-무함마드로 이어진다. 무함마드는 마지막 선지자이며, 알라만이 유일신이다. 따라서 예수는 무함마드에 앞서 진리를 선포한 신의 사자(使者)라는 것이다.

반면 유대교에서 예수는 신의 아들은 고사하고 배교자(背敎者)일 뿐이다. 모세로부터 이어져 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지키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선동한다.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성전에서 행패를 부리며 기성 체제에 거스른다. 스스로 메시아를 자칭하는 불온한 젊은 ‘랍비’인 것이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살려주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도록 종용한 이들이 유대인 제사장이다. 그들에게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기독교는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가 유일신의 독생자 아들이자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는, 성부·성자·성신 삼위일체의 한 축이다.
그런데 중동의 갈등 구조는 이슬람에 기독교·유대교 연합이 맞서는 구도로 보인다. 기독교로 보면 이슬람은 예수를 신이든 선지자이든 인정하는데, 유대교는 아예 배교자로 내치지 않는가. 기독교와 이슬람은 신이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은총을 베푼다고 여기지만, 유대교는 이스라엘 민족만 은총의 대상이지 않은가.

세계의 눈은 이에 호의적이지 않다. 예수가 포용한 바리새인(팔레스타인)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이스라엘을 인종차별 국가로 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지만, 지난 21일 유엔 총회는 이를 거부하는 결의안을 찬성 128국, 반대 9국으로 채택했다. 과거 유엔의 이스라엘 규탄 결의안에 번번이 기권했던 한국도 이번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기실 중동의 갈등은 종교 간 합종연횡이 아니라 땅 문제일 것이다. 몇 해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뭇 용감하게 “팔레스타인에는 땅, 이스라엘에는 평화를”이라고 주장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바마가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해피 홀리데이~”라 인사하며 유대교를 포함한 타 종교를 배려했는데도 말이다. 혹여 그들 인식의 근저에 솔로몬의 전도서 첫 구절이 각인된 것은 아닐까. “헛되고 헛되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여하튼 세 종교의 갈등에서 조식의 '칠보시(七步詩)'가 떠오른다. “본디 한 뿌리에서 났는데, 어찌 이리 급하게 들볶는가(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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