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뉴스]공부 잘해도 행복하지 않은 까닭, '성적공화국' 청소년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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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규 기자
입력 2017-12-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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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마르는 경쟁에, 열등생도 우등생도 쫓기는 신세…재능 뛰어나지만 창의성 죽이는 교육 여전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아이클릭아트]


[찬물뉴스]“학교에서 왜 공부를 해야 해요?”라는 학생의 물음에 “공부를 못하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그러면 행복하지 않잖아”라고 답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이 모범 답안은 꽤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기만에 가깝다. 공부를 잘해도 반드시 행복하지 않으며 공부를 못해도 반드시 불행하지도 않다. 애초 행복의 척도가 공부 즉 성적이라는 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 성적 좋은 아이는 행복할까?

한국은 공부를 참 잘하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3년마다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수학 1~4위, 읽기 3~8위, 과학 5~8위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지난해를 제외한 최근 8년간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머물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통계청의 ‘2016년 사회 조사 결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살 충동을 느낀 한국의 10대 절반가량(48.1%)은 성적을 꼽았다.

단언컨대 성적이 좋건 나쁘건 한국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다. 이는 연대와 공존보다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 교육 탓이 크다.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친구>의 한 장면이다. 극 중에서 교사는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모욕과 체벌을 가한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이지만 극 중의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것이 불쾌하지만 한국 교육제도의 민낯이다.

더욱이 시험엔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버젓이 출제된다. 모욕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은 스스로 한꺼번에 여러 곳의 학원에 다니길 원한다. 과거 학창시절 학습된 공포에 부모는 남들보다 사교육을 더 많이 시키지 않으면 불안에 떤다.

학교와 학원밖에 모르는 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도 모른다. 꿈을 좇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일주일 평균 초등학생 약 38시간, 중학생 약 50시간, 고등학생 약 60시간 동안 공부(2014년 학생의 평균 학습시간)한다. OECD 회원국 평균(33시간)보다 1.5배나 긴 시간이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한다. 도무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시험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교사는 왜 가르치지도 않은 시험 문제로 학생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차별하는지,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지 누군가 답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창의력이 가장 큰 자산인 혁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간성이 상실된 승자독식과 오로지 정답만을 추구하는 교육 방식으로는 창의적 사고를 기를 수 없다.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교육 제도 개선을 미룰 수 없는 시기가 됐다.

사회적 분위기 변화가 먼저다. 공교육을 무력화시켜 매출을 올리려는 학원, 불안감을 부추겨 사교육 광풍을 불러일으킨 언론, 과도하게 고학력에 집착하는 부모의 태도가 바뀌어야 경쟁의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

[2017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자료 = 한국방정환재단]


◆ 공부 못하는 나라 학생은 행복하다

독일의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다.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시험 기간을 비밀로 한다. 학교에서는 지식보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경쟁보다 함께 어우러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이런 탓에 독일은 PISA에서 항상 중하위권에 그친다.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도 자신의 적성에 맞춰 역량을 키우면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독일 교육 철학은 수많은 ‘마이스터(기술장인)’를 길러냈다.

독일은 대학 진학하는 고등학생보다 기술장인 양성을 위한 교육을 선택하는 학생이 더 많다. 부모 역시 대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일과 교육을 병행하는 ‘이원적 시스템’으로 실업률은 줄어들고 기업 경쟁력은 크게 향상됐다.

독일의 교육은 국가 경쟁력 세계 5위(세계경제포럼 기준)의 경제 대국과 세계 157개국 중 16번째(유엔 세계 행복지수 2017 보고서)로 행복한 나라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PISA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는 핀란드는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과정인 9년제 종합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학생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6학년 전에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시험의 목적은 학생이 해당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핀란드의 교육은 학생이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해 8월에는 종합학교에 ‘현상기반교육’(Phenomenon-Based Learning)을 도입했다. 과목별로 특정 주제의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이 협력해 무엇을 만들거나 체험하면서 개념을 익힐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엔 학생들이 3D프린터로 입체도형을 만들고 관찰하면서 부피와 넓이를 구하는 수학적 원리를 깨우친다. 맞고 틀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 교사의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은 다른 학생과 토론하면서 다시 배우게 된다.

수업 이후에도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면 방과 후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세계 여러 나라는 핀란드의 PISA 순위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핀란드는 도리어 “PISA 순위는 무의미하다. 학생에겐 미래에 필요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모든 학생을 인재로 길러내는 교육의 힘이 곧 핀란드의 국가 경쟁력이다. 창의성을 갖춘 학생들이 창업에 나서면서 핀란드는 인구수 대비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과거 핀란드 경제 4분의 1을 차지했던 노키아의 빈자리를 스타트업이 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도 PISA 평균에서 간신히 머무는 덴마크를 비롯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 영국, 벨기에 등 한국보다 공부 못하는 나라 학생이 더 행복(2017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아이클릭아트]


◆ 경제를 위해서라도 부디…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는 지난달 한국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7’에서 “PISA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국가일수록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GEI) 점수가 훨씬 낮다”며 “지식전달 중심의 100년 전 교육 방식을 바꿔야 혁신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가정신지수는 창업환경과 활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13년 기업가정신지수와 경제 성장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주입식 교육으로 길러진 모범생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20세기 초 대량생산 체제에서 자본의 극대화를 위해 동선, 작업 범위 등을 철저히 표준화해 노동자를 기계로 전락시킨 테일러리즘(Taylorism)이 혁신의 시대에선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당연한 결과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한국 교육의 인간성 회복이 절실하다.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 최근 경제를 최우선으로 가치로 생각하는 모 일간지에서 학생 성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이다. 이제는 “공부 못해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건넬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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