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반려동물이 우리 곁을 차지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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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입력 2018-01-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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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펫시터(petsitter)'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평소 애완동물(이렇게 불렀다가는 큰코 다치는 게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인 듯하다), 아니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아서 그쪽 돌아가는 세상을 잘 몰랐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보모(베이비시터)처럼 이젠 반려동물에게도 보모가 필요한 세상이 됐다는 건 전혀 '뉴스'가 아닌 모양이다. 주인이 집을 비우는 동안 주인 대신 반려동물을 돌보면서 하루 3만~4만원의 보수를 받는다고 하니, 가정주부(남성 포함)들에겐 부업으로 나쁘지 않은 듯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외국인들의 끔찍한 사랑과 그 기상천외한 세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25년 전이었다. 일본의 한 매거진에 실린 ‘애완견 풍속도’ 기사였다. 애완견 장례식을 비롯해 묘지·납골당·펜던트 등의 추모물품, 애완견과 함께 묵을 수 있는 호텔, 빠진 털을 쉽게 청소할 수 있게 방 모서리를 둥글게 지은 전용 주택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199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에선 이런 얘기들이 꽤 황당했다. 1991년 우리나라 1인당 GDP는 7122달러였다. '팔자 좋은 미친 사람들이 많구나. 그 돈으로 차라리 불쌍한 사람들이나 돕지’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그 '미친 짓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모두 현실이 됐다. 국내 반려동물 보유가구 비율은 2012년 17.9%에서 2015년 24%(457만 가구)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1인 가구가 61만 가구(13.5%)를 차지한다. 등록 반려동물 숫자도 97만 마리(2015년 기준)이니, 미등록을 포함해 다섯명 중 한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다. 

하루 숙박비가 30만원에 달하는 반려동물 동반 전용 호텔이 인기를 끌고, 이들 전용 샴푸와 미스트 등의 미용품은 필수 소비재가 됐다. 수제버거는 물론이고 6년근 홍삼과 인삼 농축액이 들어간 건강식, 몸매를 가꾸기 위한 다이어트 식품, 스트레스를 푸는 탄산수 스파와 마사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누리는 것보다 더한 호사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의를 입혀 맞춤형 관에 넣는 것은 기본이고, 유골을 녹여 큰 구슬이나 팔찌, 펜던트 형태의 ‘메모리얼 스톤’까지 만든다고 한다.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다.

'펫 산업'이나 '페코노미(펫+이코노미)' 등의 단어가 일상화됐을 정도로 반려동물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2016년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조2900억원 정도였다. 경기불황에 시장과 상인들이 다 죽어간다는 말이 나와도 페코노미만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쑥쑥 성장하는 슈퍼(super)산업이 되고 있다. 

반려동물과 쌓은 정은 ‘가족 이상’이라는 것이 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다. 50대 이상 남성들 사이에서는 “퇴근 후 늦게 집에 들어왔을 때 뛰어와 반겨주는 것은 '개새끼'(욕이 아닌 애칭)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듣기 어렵지 않다. 반려견에 대한 애정은 옛날에도 별다르지 않았다. 제정러시아 전성기를 이끌었던 예카테리나 여제는 독일 마이슨(Meissen) 도자기에 40개의 피겨린 작품을 특별 주문해 이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39㎞ 떨어진 푸슈킨 시의 오라니엔바움(Oranienbaum·일명 예카테리나 궁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 이 중에는 예카테리나 여제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주문했던 그녀의 애완견 '리제타(Lisetta)'도 있다. 그녀는 피겨린이 리제타와 비슷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리제타를 그린 초상화를 마이슨 도자기에 직접 보내기까지 했다.

엄밀히 말해 지금의 반려동물 문화는 우리 전통풍속이 분명 아니다. 애완견이 문 밖 ‘개집’에서 머물다가 문지방을 넘어와 실내에서 주인과 함께 거주하게 된 역사는 길어야 15년 남짓이다. 요즘은 고양이들도 이 대열에 합류해서 고유의 도도하고 까칠한 품성마저 저버리고 마치 강아지처럼 행동하고 아양을 떠는 ‘개냥이’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반려동물은 어떻게 우리 곁을 파고든 것일까? 어떤 이유로 우리 침대와 소파를 떡하니 주인처럼 차지하고 있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외로움을 나눌 친구가 필요해졌고,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사랑을 나눌 대상이 줄어들면서 그 빈자리를 반려동물이 메워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반려동물이 우리의 '제일 친구'가 된 진짜 이유는 그들이 휴대폰을 조작하지 못하고 SNS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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