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불편해도 기억해야 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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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7-12-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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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강희제(1654~1722)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 또는 성군으로 불린다.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황제라고도 한다. 지금의 중국 영토가 그의 재위기간에 사실상 확정되었다. 당시 중국에 파견됐던 선교사들도 그를 높이 평가, 유럽에도 잘 알려졌다.

조선은 병자호란의 굴욕과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 때문에 조선 지배층은 청을 오랑캐라며 인정하지 않고, 강희제를 형편없는 군주로 폄하했다. 중국도 아니면서 명나라 부활이나 꿈꾸는 비현실적 숭명반청(崇明反淸)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러나 반청감정이 지나쳐 엄연한 현실을 왜곡, 정세파악을 그르쳤다. 적개심과 복수심을 철저한 군비확장이나 무력양성으로 기른 게 아니라 감정과 기분에 사로잡혀 혼자 허공에 주먹질만 한 꼴이었다.

심지어 청이 영토경계 확정을 위해 백두산 일대 현지답사를 하며 조선의 협조를 구하자, '곧 망하게 되니 피난길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며 거절하자고까지 했다. 희망사항과 정보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조선 대표는 그 부근까지 갔으나 현장 참석은 하지도 않은 채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졌다. 국정운영이 이 정도였다.

사학자 하정식(숭실대 명예교수) 박사의 논문 ‘일그러진 초상-조선지배층의 강희제상’에 따르면 이게 사실이었나 싶을 정도로 국제정세 인식이 비정상이었다. 외면해버리고 싶은 과거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공식기록문서에 엄존하는 사실들이다.

당시 중국을 다녀 온 사신들마다 강희제는 못나고 무능해 청나라는 곧 망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근검절약하면 ‘오랑캐라 예를 모른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청나라 번영과 안정은 ‘나태와 음란’으로 각색했다. 임금들 역시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반면 프랑스 선교사 부베는 강희제가 서양과 그 과학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수학, 기하학, 해부학, 화학 등을 열심히 배우며, 뛰어난 자질로 거대제국을 성공적으로 통치하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조선의 강희제 모습과는 달랐다.

삼전도 굴욕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그래서 2000년 전 로마에 맞서 항전했던 마사다(Masada)를 지금도 날마다 현장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와 대조적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그렇다. 과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증오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실제 모습을 독하게 늘 응시해야 한다. 중국·미국·북한도 냉철한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감정은 치명적인 독극물일 뿐이다.

손자병법의 “적을 모르고, 내 자신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글귀가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요즘이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알고, 무얼 모르고 있는가. 괴롭더라도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후손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전해주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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