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회장 별세]‘사람이 곧 기업’ OCI, 노사상생 대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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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7-10-2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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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 화학 외길 이수영 회장의 경영철학(3)

이수영 OCI그룹 회장이 2014년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시에 준공한 100MW 규모의 태양광 셀, 모듈 공장 준공식에서 태양광 패널에 서명을 하고 있다.[사진=OCI그룹 제공]


OCI그룹은 노사분규가 없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1959년 창립 이후 노사 상생 우수 사례 기업을 거론할 때 늘 OCI가 이름에 올라온다.

1996년 회장에 취임한 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노사 무분규의 비결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방법은 아주 간단했지만 실천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노사화합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 가끔 공장에 내려가 근로자들과 소주파티를 갖는데 될 수 있는 한 근로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 마음을 편케 한다”면서 “한 번은 술자리에서 모든 직원들로부터 한잔씩 받다 200잔을 마신 경우도 있었다. 저는 지금도 최근에 입사한 직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회사 경영에 있어 노사화합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파업 없는 사업장을 운영했다. ‘사람이 곧 기업’이라는 부친 송암(松巖) 이회림 창업주의 유훈을 받아 인재 육성에 노력했다.

특히 직원들에게 “남에게 피해 줄 일, 욕먹을 일은 애당초 하지 마라. 돈을 버는 일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라는 말을 항상 강조하며 “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마라”라는 실천의 중요성을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경총 회장 취임, 5년만에 ‘노사정 대화’ 재개 이끌어내
이러한 이 회장이 노사문제와 관련해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회장을 맡은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1998년 경총 부회장을 맡은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1년 후인 2004년 제4대 경총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정국은 노 대통령과 정부부처가 대기업을 강하게 압박했고, 정치권에는 노동계 인사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으며, 이들의 지원을 업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어느 때보다 노사 갈등의 골이 깊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도 고개를 바짝 숙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총 회장을 맡는 다는 것은 불구덩이 속에 기름통을 들고 뛰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해 3월 11일 열린 취임식에서 이 회장은 화합을 강조하는 발언을 해 주목 받는다.

“모든 경제주체가 공론화된 장으로 들어와야 한다. 노조도 제도권에 들어와 토의해야 한다. 노조가 아예 없었다면 역효과가 많았을 것이다. 노조는 회사 경영에 도움을 주는 면도 있다. 하지만 과속과 노조간 경쟁 등이 문제다. 산업이 장기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 노조가 필요하다.”

그는 “이를 위해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나 협조할 것은 하고 타협할 것은 하도록 하겠다”면서 “노사문제가 과거와 같아서는 안되겠다는 입장이며 뭔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사가 향후 회사가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점을 예견하며 기업도 살고 근로자도 사는 경제문화를 창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신 발언으로 ‘재계 대변자’ 별칭 얻어
그의 노력 덕분에 5년간 중단되었던 노사정 위원회가 재개되는 등 노사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노측의 요구와 압박은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에 달했다. 이에 이 회장은 대화를 앞세우면서도 노측의 주장에는 하나씩 반박했다.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정 로드맵 등 노사문제 관련 법제도에 대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제시한 어떤 타협과 양보를 거부했다.

또한 지방공단에서 벌어진 노사분규와 관련해서도 해당기업을 대신해 노조 파업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증거와 자료를 정리해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사문제에 대응하는 등 사측의 입장을 적극 반영했다.

물론 사측에게도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실천해 임직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의 경총은 당시 5대 경제단체장 중 유일하게 제목소리를 낸다며 환영을 받았고, 언론으로부터 사실상 ‘재계의 대변자’로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정부 압박 당해도 알리지 않아
그가 노사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원칙에 입각한 경영철학과 이에 벗어난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성품에서 비롯됐다. 이러다보니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2년 임기인 경총 회장을 3연임하며 6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 회장이 경총 회장으로 소신껏 일하고 있는 동안 동양제철화학(현 OCI)은 정부에 눈도장을 찍혀 인허가 지연과 세무조사 등 여러 수단으로 압박을 받아 사업에 애로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이 회장은 회사나 경총 임직원들에게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해, 그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야 알려졌다. 회사 사정을 이용해 노측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감내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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