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사이트] 상전벽해(桑田碧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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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희 기자
입력 2017-09-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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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희 지모비코리아 대표. [사진=지모비코리아 제공]


중국 심천에서 맞닥뜨린 상황이다. 한국에서 최신 출시된 사물인터넷(IoT) 디바이스를 가지고 중국 파트너와 협의하러 갔다. 블루투스 기반의 최신 서비스가 탑재된 제품인데 중국 시장에 접목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의 미팅이었다. 내용을 경청한 뒤 파트너의 입에서 툭 터져 나온 한마디가 그 모든 기대를 좌절하게 했다.

“지금 논의 중인 것은 BL5.0(블루투스 5.0)이에요.”

BL4.0은 이미 구닥다리에 속하고 앞으로 나올 제품들은 기구 설계를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금 중국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곤 한다. IT(정보기술)강국 코리아의 위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10년의 후퇴가, 중국에서는 10년의 성장을 의미하고 있었다.

2007년 필자는 홍콩에 회사를 세우고 중국제조사와 함께 스마트폰 해외 유통업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중국 제조사의 스마트폰 제조 능력이 상당히 낙후돼 있어 글로벌 유통에 문제가 많았다. 한국은 당시 모바일 강국으로서 제조 서비스 모든 면에서 중국의 산업 모델이었다.

그러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중국은 지금 달라져 있다. 개혁개방의 상징인 심천은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기반으로서 ‘세계의 공장’이 된 지 오래다. 제조업의 성공은 관련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켰다. 이는 다시 선순환을 일으켜 새로운 발상과 기술 혁신의 토대가 되고 있다. 혹자는 전 세계에서 논의되는 모든 선진적인 기술들은 이미 심천에 다 있다고까지 얘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제품을 거대한 중국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순진한 꿈이 되기 일쑤다. 가뜩이나 미국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이슈로 한중관계의 해법이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로 진출하면 좋은가. 다른 나라들에서도 아마 중국산 제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이자 R&D’로 변모해가고 있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항상 그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시간낭비를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풀어가느냐가 향후 우리나라의 발전을 가늠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知己知彼百战不殆) 이라고 했다. 상대에게 부족한 나만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상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중국은 기술과 자본, 아이디어, 열정은 넘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문화적 심미안, 브랜드 기획력 등 '소프트 가치'는 한국에 뒤처져 있다고 본다. 우리는 제조에서 서비스 시대에 접어들어 소비문화를 향유하게 되었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다양한 문화를 섭렵한 우리의 문화적 토대는 나름의 저력이 있다.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있어 소유보다는 ‘삶의 누림’이 있는 문화,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문화적 경험 등이 우리의 소프트 가치에 자양이 되어주고 있다고 본다.

디자인과 예술 등 문화의 창조력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가 그렇듯 오랜 기간 쌓여온 문화적 가치가 꾸준한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집중 해야 할 것은, 나만의 강점을 세계화 시키는 일일 것이다. 글로벌 경쟁의 시대에 질적, 문화적 성장에 있어 우리가 자부할 만한 현실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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