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삶과 꿈] 동북아 비극 시대에 민중의 지팡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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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효 기자
입력 2017-09-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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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일혁, 첫 빨치산 토벌작전인 구이작전에서 대승을 거두다

[사진=차일혁기념사업회 제공]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학박사)=전북지역의 빨치산토벌을 위해 창설된 제18전투경찰대대의 대대장 차일혁(車一赫) 경감은 드디어 빨치산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도경비사령부(道警備司令部)로부터 받았다.

 그때가 1950년 12월 26일이었다. 첫 토벌작전 지역은 전북 완주군 구이면이었다. 병력이라고 해봐야 경상도에서 차출해온 경찰관 50명과 학도병을 포함해 갓모집한 150명의 신출내기 경찰관이었다. 모두 합쳐 200명이었다. 훈련도 기껏해야 겨우 2주일 남짓 밖에 못했다. 무기와 장비도 빈약했다. 대대에 M1 소총은 딱 1정뿐이었고 나머지는 일제 소총이었다. 중화기로는 소련제 82밀리 박격포 1문과 미국제 60밀리 박격포 2문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차일혁 부대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빨치산을 토벌한다는 긍지심을 갖고 있었다. 차일혁도 그런 부하대원들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그 지휘관에 그 부하들이었다. 용장(勇將)밑에 약졸(弱卒)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차일혁은 빨치산 토벌에 앞서 자랑스러운 대원들을 불러놓고 훈시(訓示)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든 작전이 그렇듯이 첫 전투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차일혁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원들에 대한 정신무장을 중요시했다. 전투경험이 많은 지휘관에게서만 나올만한 행동이었다.

“지금 빨치산들은 도내 각처에서 출몰하여 교란작전(攪亂作戰)과 함께 약탈(掠奪) 및 파괴(破壞)를 일삼고 있다. 우리가 비록 훈련은 부족하지만, 언제까지나 공비(共匪)들을 수수방관(袖手傍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먼저 나아가 적의 정면에서 적을 공격하여 섬멸하자! 처녀 출동인 이번 작전의 승패가 우리 부대의 존속(存續)을 좌우하고, 앞으로 국민들에게 전투경찰에 대한 신뢰(信賴)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자!”

 차일혁이 보기에 대원들이 아직 훈련이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도내 각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빨치산들의 약탈행위를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그 보다 더 급한 것은 빨치산들을 토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일이 항상 준비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다소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차일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첫 토벌작전도 비록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대로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대원들의 부족한 훈련과 열악한 무기 및 장비를 고려하여, 적정수집에 신경을 쓰고, 보다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워 이를 보완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첫 빨치산 출정(出征)에 임했다.
 

[사진=차일혁기념사업회 제공]

 제18전투경찰대대는 1950년 12월 26일 전북 도청 앞에서 마침내 출정식을 가졌다. 차일혁은 전북지사와 도경국장(道警局長) 겸 도경비사령관에게 출정신고를 했다. 출정식에서 김가전(金嘉全) 전북지사가 훈시를 했고, 이어 김의택(金義澤) 도경국장 겸 도경비사령관이 차일혁에게 지휘관에게 수여하는 지휘봉(指揮棒)을 수여했다.

 제18전투경찰대대는 우렁찬 경찰악대의 연주 속에 남·여 학도호국단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사이드카를 탄 차일혁 대대장의 선두지휘(先頭指揮)를 받으며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작전지역인 완주군 구이면을 향해 출동했다. 부대는 전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고, 주간이기 때문에 아무런 사고도 없이 작전지역인 구이면 항가리에 도착하여 양조장 옆에 있는 구이초등학교에 숙영지를 정했다. 구이면 두현리에서 항가리까지는 치안이 회복됐으나, 인근의 정자리와 백여리 그리고 삼길리는 아직 빨치산 수중에 있는 미수복(未收復) 지구였다. 얼마 전에 국군11사단 13연대가 작전을 전개했으나, 빨치산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항가리만 겨우 치안을 회복한 상태였다.

 차일혁은 빨치산에 대한 정보수집에 나섰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된다.”는 것은 전장에서의 기본원리였다. 이른바 손자병법에서 말하고 있는 지피지기(知彼知己)였다. 차일혁은 항가리 지서주임으로부터 빨치산에 대해 믿을만한 정보를 얻었다. 그에 의하면 “적은 정읍 관내의 순창, 복흥, 쌍치와 구이 등 일부 미수복 지구를 점거하여, 이른바 그들의 ‘도당사령부(道黨司令部)’를 회문산(回文山)에 두고, 인근 지역인 전주, 완주, 임실 등지에는 시·군당(市郡黨)과 면당(面黨)을 설치해 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전투력이 뛰어난 빨치산부대인 기포병단과 번개병단을 주변에 대기시켜 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 항가리도 밤에는 ‘인민공화국’으로 변해 항상 적의 습격을 받고 있다.”고 알려줬다.

 더군다나 차일혁이 대적해야 될 빨치산들은 우수한 병력과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차일혁 부대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럼에도 차일혁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분쇄함으로써 차일혁 부대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차일혁은 항가리 지서주임으로부터 얻은 정보와 빨치산 전향자로부터 적의 은거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수색대를 편성하여 적진에 투입하여 빨치산 2명을 사살하고 5명을 추가로 생포했다. 수색대의 보고에 의하면, 적의 병력이 예상 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차일혁은 정면공격보다는 게릴라전에 의한 기습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야만 승산(勝算)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50년 12월 28일 새벽 4시, 차일혁 부대는 빨치산을 기습하기 위해 주둔지를 출발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대원들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 허름한 복장으로 매서운 눈바람과 영하의 추운 날씨를 견뎌야 했고, 몇 자나 쌓인 눈 속을 군화대신 짚신이나 농구화를 신고 걸어가야 했다. 더군다나 혹한의 추위로 인해 총자루를 쥔 손은 꽁꽁 얼어붙었고, 코에는 고드름이 달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 속에서도 차일혁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기습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차일혁은 “적들도 감히 우리가 이 눈 속을 뚫고 기습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할 것이다. 기습을 통해 그들을 반드시 깨부수고 말리라!”하며 승리를 다짐했다.

 구이초등학교를 출발한 차일혁 부대는 어느덧 적진을 향해 6km정도 전진했다. 그곳에는 도로를 가로질러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 일부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개울에는 뜀 돌이 놓여 있었다. 개울을 건너려면 그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차일혁 부대는 척후소대를 선두로 1중대가 건넜고, 그 뒤를 따라 사이드카를 타고 가던 차일혁의 대대본부가 막 개울물을 건너려는 순간, 왼쪽 산의 능선으로부터 총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적의 병력은 대략 150명 정도로 추산됐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놀라 대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을 기습하려던 차일혁이 도리어 적의 기습받았다. 그때 시각이 새벽 5시였다.

 적의 기습을 받자 차일혁은 마치 용수철에 튕겨나가듯 재빠르게 앞으로 뛰어 나갔다. 그 뒤를 보신병 김규수가 따랐다. 그때 전북일보 종군기자는 보이질 않았다. 부대에서 유일하게 M1소총을 소지하고 있던 보신병 김규수는 총신에 소형 태극기를 달고 있었다. 눈에 띄는 태극기 탓에 총탄이 대대본부에 집중됐다. 차일혁은 재빨리 총을 빼앗아 태극기를 뜯어냈다. 적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광탄과 함께 총탄을 쏘아댔다. 차일혁은 주위를 둘러본 뒤 총탄이 비 오듯 날아옴에도 개의치 않고, 앞으로 뛰어나가 길가에 있는 민가의 담장을 뛰어 넘었다. 김규수도 뒤따라 넘었다. 울타리에 기대에 선 차일혁이 부엌 입구에 엎드려 있는 김규수를 보고 “나팔수를 찾아 사격중지 나팔을 불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대원들은 산봉우리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향해 사격하고 있었다.

 차일혁은 보이지도 않은 빨치산들은 향해 총을 쏘고 있는 대원들의 사격을 중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빨치산들이 어디에서 총을 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팔수를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빨치산들은 차일혁이 있는 곳을 향해 계속 총을 쏘아댔다. 위급한 상황이었다. 차일혁이 다시 김규수에게 나팔수를 찾아 사격중지 명령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나팔수는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총소리 때문에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전달되지 않았다. 동틀 무렵이 되어 주위를 살펴보니 대원들이 여기저기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차일혁 주변에는 환자들만 보일 뿐 나팔수도 간부들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보신병 김규수가 총에 맞아 나동그라졌다. 차일혁은 피를 흘리고 있는 보신병 김규수를 끌고 부엌으로 들어가 보니, 대원들이 큰 아궁이 두개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를 빼놓은 채 떨고 있었다. 나팔수도 그곳에 있었다. 차일혁은 나팔수에게 뒷문으로 나가, 사격중지 나팔을 불라고 명령했다. 그때서야 사격이 멈추었다.

 사격을 중지하고 나서 보니 빨치산들이 산중턱 7부 능선에서 사격하고 있었다. 차일혁은 나팔수에게 “적은 7부 능선에 있으니 그곳을 향해 집중사격 하라!”고 명령했다. 나팔수가 옆에 있는 대원에게 소리쳐 전달했다. 순식간에 차일혁의 명령이 대원들에게 전파됐다. 모든 화력이 7부 능선으로 집중되자 적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그렇게 해서 1시간 정도 지나자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면서 100m 전방의 물체를 볼 수 있게 됐다. 빨치산들은 차일혁 부대를 기만하기 위해 산봉우리에 불을 피워놓고, 봉우리의 7부 능선에 호를 파고, 그 속에 숨어 기습사격을 하고 있었다.

 차일혁은 빨치산의 위치를 파악한 뒤, 60밀리 박격포나 로켓포로 제압하려고 했으나 중화기부대는 차일혁이 있는 곳에서 10리 후방에 있었다. 통신장비가 없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차일혁은 결사대 3명을 선발하여 중화기부대로 가서 적이 있는 곳에 박격포를 쏘라고 명령했다. 결사대가 출발한 지 10여분이 지나자 박격포탄이 적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중화기 중대장은 북한군으로부터 빼앗은 소련제 82미리 박격포 1문과 미제(美製) 60미리 박격포 2문을 갖고 있었는데, 포탄이 미제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련제 82미리 박격포에다 미제 81미리 포탄을 사용했다. 명중도는 떨어졌으나, 포탄이 적들의 호 근처에 떨어지자 빨치산들은 우왕좌왕했다. 차일혁은 이때다 하고, 나팔수에게 일제사격과 함께 돌격나팔을 불게 했다. 차일혁이 앞장서서 공격하자, 대원들도 일제히 사격을 하며 돌진했다. 빨치산들은 42구의 시체를 남기고 퇴각했다. 그 과정에서 차일혁 부대는 빨치산 3명을 생포하고, 다발총 등 총기류 5정을 비롯하여 수류탄 4발, 서류 등을 노획했다. 대신 차일혁 부대는 전사 3명, 중상 5명의 피해를 입었다.

 실전경험이 전혀 없는 차일혁 부대는 창설된 지 불과 2주일일 만에 처녀 출동하여 대승(大勝)을 거뒀다. 여기에는 차일혁의 중국에서의 풍부한 실전경험과 북한 남침 이후 경각산(鯨角山)에서의 옹골연유격대 경험이 승리를 이끄는데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 차일혁은 죽은 부하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난 다음, 죽은 빨치산들의 시체를 ‘인간의 예’를 갖춰 야산에 묻어줬다. 비록 빨치산이라고 하지만 죽어서까지 ‘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일혁 부대는 저녁 7시에 주둔지인 항가리로 복귀했다. 대원들 중에는 항가리 주민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빨치산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항가리 주민들 중에 적과 내통한 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을 색출해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낌새를 알아 챈 탓인지 주민들은 차일혁 부대에게 해를 입지 않을까 하며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차일혁도 고민에 빠졌다. 주민들이 적과 내통했다면, 그냥 넘겨 버릴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고심했지만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인공시절(人共時節)’ 총상을 당해 원기리에서 숨어 지낼 때, 차일혁을 피신시켜 준 사돈과 그곳 면장이 찾아와 선처를 호소했다. 먼저 사돈이 말을 하자, 뒤이어 면장이 사돈을 거들고 나섰다.

 “차 대장. 제 말 좀 들어보시오. 나도 인공시절 부역을 했지만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느 누구도 부역을 마다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제 인민군을 몰아냈으니 같은 마을 주민끼리 죽고 죽이는 일만은 막읍시다. 갈치가 갈치꼬리 무는 격 아닙니까. 구이면은 원래 전주와 가까우면서도 오지에 접해서 씨족간의 갈등이 심했는데 이제 평소 미워하던 사람끼리 서로 이간질하는 흉흉한 마을로 변해버렸습니다.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다 죽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무골호인(無骨好人) 허허실실(虛虛實實) 바보 같은 사람들만 살아남았어요. 우리 아들놈도 의용군(義勇軍)에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이제 더 이상 피를 보는 일만은 막아 주십시오.”

 “우리들도 인공시절에 살기 위해서 부역을 했지만, 그때도 많은 사람을 살려주기도 했었습니다. 처벌해야 한다면 우리부터 처벌해 주십시오. 더 이상 무고한 살상만은 없게 해주십시오. 사실 피난가지 못한 사람 중에 인민군에게 밥 한 번 안 해주고, 노래 한 번 따라 부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모두 협조해야만 했었습니다.”

 차일혁은 사돈에게 인명살상은 피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구이면에서 생포한 빨치산을 죽이지 않고 귀순자로 처리해 취사반에 배속시켰다. 사실 그들은 도망가지도 않았고, 철저한 빨치산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빨치산에 가까웠다. 그들은 바로 구이면의 주민들이었다. 12월 29일, 제18전투경찰대대는 항가리에 본부를 둔 채 계속해서 장팔리와 정자리를 향해 진격했다. 그곳에 있던 빨치산들은 얼마 못가 정읍군 산내면 방면으로 도주하자, 제18전투경찰대대는 이곳의 치안을 회복하게 됐다. 차일혁은 사돈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해서 공포에 질려 있는 항가리, 원기리, 광곡리 주민들을 모아놓고 즉석연설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이면에서 괴뢰군(傀儡軍)의 총에 맞은 적도 있고, 또 다락에 숨어 치료도 받고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또 나와 같은 유격대원 15명이 옹골연에서 생포되어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수복된 뒤 처녀출전이기도 합니다만, 나와의 인연이 특별한 곳입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여러분들을 대하지는 않겠습니다. 전주시 부시장을 사살한 구이면 분주소장 황준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방면시킬 테니 주위에 부역한 일로 숨어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자수시키십시오. 아무리 인민군에게 협조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수하면 당국에서 관대히 처분하도록 저도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씨족(氏族)간의 알력 같은 한(恨)풀이는 더 이상 하지 맙시다.”

 차일혁의 연설을 들은 주민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차일혁은 밀고하는 주민들을 훈계해서 돌려보냈다. 이웃 간의 보복의 악순환을 이제 끊어주고 싶었다. 사돈을 통해 부역자들이 속속 자수해 왔다. 그들 중에는 놀랍게도 광곡리에서 차일혁에게 총을 쏜 김일수(가명)란 자도 끼어 있었다.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처분만을 기다리는 그를 바라보는 차일혁의 입장은 난처했다. 밑에 있는 대원들은 인공시절 그가 차일혁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며 화를 냈다. “저런 자를 살려두면 안됩니다. 가능한 한 용서해준다고 하지만, 저런 악질적인 사람까지 용서해 준다면 적과 싸우는 우리들의 사기도 떨어져 버릴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희들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차일혁은 부하들을 설득시켜 내보냈다. “네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니, 나도 용서하겠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차일혁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절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총을 쏘아 팔을 거의 불구로 만든 사람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차일혁은 그를 깨끗이 용서해 줬다. 여기에 차일혁의 진정한 휴머니즘 정신이 있었다.

 첫 전투를 훌륭히 마치고 전주에 귀대하자 시내 변두리에서부터 이미 승전보를 전해들은 시민과 학생들이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차일혁 부대의 개선(凱旋)을 환영해 줬다. 도경 경비계장과 전주시장 등이 도경비사령관의 특명으로 감사장과 표창장을 전달하고, 전공을 치하했다. 밤에는 지방 유지들의 환영이 있었다. 부대로 돌아온 대원들은 그동안 지친 심신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이튿날부터 구이면 전투의 실전경험을 토대로, 보다 실전적인 교육훈련에 들어갔다. 차일혁 부대는 그렇게 첫 전투를 승리로 끝내고, 다음 전투를 기다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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