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 FTA 폐기 '으름장'.. .안보동맹 흔들 가능성 부각되며 측근들은 폐기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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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7-09-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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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허리케인 하비로 직격탄을 맞은 텍사스 휴스턴을 찾아 이재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이 한국과의 FTA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단순한 '엄포'용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트럼프의 주요 참모들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미 양국 동맹관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협정의 폐기에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가 2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들을 인용하여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회의를 갖고 한·미 FTA 폐기를 논의할 예정이다. WP는 익명의 소식통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유지키로 결정할 가능성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협정 폐기를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며 이르면 이번 주 안에 폐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2일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만 밝혔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선 더 발표할 내용이 없다”며 추가적인 언급을 삼갔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폐기 검토 외신 보도와 관련, 차분하고 당당하게 대응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정부는 국익과 국격을 위해 당당하게 한·미 FTA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의 재협상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이후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의에서 미국은 재협상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우리 측은 한·미 FTA 효과와 미국 무역수지 적자 요인을 먼저 분석하자고 맞섰다.

WSJ는 백악관이 한·미 FTA를 진심으로 폐기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엄포를 놓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폐기를 공약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측근 및 참모들의 설득에 재협상으로 마음을 바꿨다가 최근 다시 결과에 따라 폐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

WSJ에 따르면 대중(對中) 강경파이자 보호무역론자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미 FTA 폐기에 관심을 나타낸 반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 등 백악관 안보·경제 사령탑들은 북한 위협이 고조된 시점에서 굳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이슈를 꺼낸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폐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동맹 강화를 원하는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도 같은 이유로 협정 폐기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폐기할 경우 양국 간 무역전쟁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뿌리째 흔들려 대북공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공화당계 연구기관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게리 슈밋 미국기업연구소(AEI) 메릴린웨어센터 안보담당국장은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새 대통령은 전임자에 비해 친미 성향이 약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반발할 상황으로 몰아가기보다 최대한 협력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웬디 커틀러 전 USTR 부대표 역시 이번 주 미국 정치매체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사안이 조심스럽게 다뤄지지 않을 경우 (한·미 FTA 개정을 둘러싼) 현재의 교착상태가 한·미 무역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양국 협력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기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끔찍한' 협정이라면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미 FTA 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데 동의했는데, 불과 두 달여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폐기를 언급했다.

미국 측은 한국과의 무역적자가 2011년 132억 달러였지만 2012년 한·미 FTA 실시 이후 2016년에는 276억 달러까지 늘어났다면서 협정이 미국에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WSJ에 따르면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무역 불균형은 단순한 협정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를 포함한 폭넓은 거시경제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는 협정을 개정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무역적자의 요인으로 한국의 무역장벽을 문제 삼았지만 WSJ는 최근 수년 동안 한국의 경제가 악화되면서 전반적인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소개했다.

미국 산업계에서도 한·미 FTA 폐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2일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미 FTA 폐기 결정을 막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줄 것을 촉구하면서 협정 발효 후 “항공우주 부문 수출이 80억 달러로 두 배나 늘었고, 주요 농장물 수출도 급증했다”는 내용을 담은 자료를 공유했다. 아울러 상공회의소는 한·미 FTA 폐기 시 백악관은 농업을 비롯한 산업계와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미제조업자협회 역시 회원들에게 긴급 이메일을 보내 한·미 FTA 폐기가 결정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정부 고위 관리, 의회 의원들, 주지사들을 접촉하라"고 촉구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의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개월 동안 의회는 행정부가 의회와 충분한 논의 없이 성급하게 통상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왔다. 지난 7월 중순 미국 상하원 통상위원회의 민주당과 공화당 대표들은 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한·미 FTA 검토 시 의회와 긴밀히 논의할 것을 요구하면서 급작스러운 폐기에 신중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한·미 FTA 폐기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아시아와의 끈끈한 경제 협력을 포기할 경우 이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탈퇴를 공식 선언했을 때에도 아태 지역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서 중국이 운신의 폭을 넓혀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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