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금단의 요초(妖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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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7-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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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酒食雜記



금단의 요초(妖草)

금주금주(今週禁酒) 금년금연(今年禁煙). 굳게 결심하지만, 하루 이틀뿐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일쑤다. 그래도 담배는 낫다. ‘스스로’ 문제인 것이다. 술은 어렵다. ‘더불어’ 문제이기 때문이다. 혼자 피우는 담배가 함께 마시는 술보다는 자르기 쉽겠지. 정말 그럴까.
담배는 요초(妖草)라 했다. 요사스런 풀이란 뜻이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폐부에 이르면,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와 새하얗게 부서진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이 칼끝 같은 의식을 벨벳처럼 감싼다. 어쩌면 고독(孤獨)이라기보다 부드러운 독(膏毒)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사스럽다고 했을까.
연암 박지원은 담배를 즐겼다. 열하일기의 ‘태학유관록’에서 중국인 왕씨와 담배를 두고 입씨름을 벌인다. 연암은 “토종 담배와 중국 담배가 맛이 비슷하다. 일본에서 건너와 만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왕씨는 “아니다. 서양에서 왔다. 아메리카 임금이 여러 풀을 직접 맛보고는 담배로 백성의 입 병을 낫게 했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두 주장 모두 근거가 있다.
먼저 조선에 담배가 전래된 과정이다. 광해군 때인 1616년 일본에서 ‘남령초(南靈草)’가 건너온다. 남쪽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다. 인조실록은 “담배가 전래된 지 5~6년 만에 남녀노소 피우지 않는 자가 없다. 손님을 대할 때 차와 술 대신 담배를 내놓아 연다(煙茶)로 불렸다”고 전한다.
남령초는 담박괴(談博怪)로도 불렸다. 토바코(tobacco)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자 뜻을 풀면 ‘대화를 넓게 하는 괴이한 풀’쯤이다. 그런데 대화를 의미하는 ‘담(談)’이 가래를 뜻하는 ‘담(痰)’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조선말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남만(南蠻)의 담파고(談婆姑)라는 여인이 담(痰)을 앓다가 남령초를 먹고 낫자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인의 이름 담파고(談婆姑)를 담파고(痰婆姑)로 하면 ‘가래로 고생하는 늙은 시어머니’가 된다.
담배가 정말로 가래에 효험이 있을까. 조선말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가래가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을 때, 소화가 되지 않아 눕기에 불편할 때 효험이 있다”고 썼다. 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대표적인 실학자임을 생각하면, 당시엔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가래는 몰라도 소화에는 효과가 있다. 항간에 ‘식후불연초 노상객사(食後不煙草 路上客死)’란 말이 있다. 또 화장실에 갈 때 담배를 피워 문다. 식후 입안의 텁텁함이나 화장실의 냄새 때문이 아니다. 실제 소화작용을 돕는 것이다.
현대 의학은 “적량의 니코틴은 장(腸)의 활동을 활성화한다”고 평가한다. 의과대학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니코틴의 효능을 서양처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대신 수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했던 것이다. 대장의 활동이 느리면 변비, 빠르면 설사가 일어난다. 해우소(解憂所)에서 근심이 변비일 터인데, 적량의 니코틴은 장의 활동을 활성화한다지 않는가.
열하일기의 ‘아메리카 임금’과 담배의 관련 설도 근거가 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1492년 바하마제도에 도착했을 때다. 그가 ‘산 살바도르(구원자)’라고 이름 붙인 지역의 원주민들이 구슬과 열매, 말린 잎을 선물로 준다. 이것이 바로 담뱃잎이었다. 마야문명에서 담배는 신과 의사소통하는 매개였다.
기독교인들은 처음 ‘사탄의 잎’으로 여겼다. 하지만 강력한 행복감, 안정감, 각성 효과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나.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면 7초 만에 뇌를 자극해 행복감을 일으키는 도파민을 생성시킨다. 그 효과는 20~30분 지속되다 차차 사라진다. 또다시 담배를 찾게 되는 ‘금단의 간격’인 셈이다. 이 의존성 때문에 ‘담배는 백인이 독한 술을 준 데 대한 인디언의 복수’라고도 한다.
담배는 이보다 정신적·심리적 측면이 강할 것이다. 대만의 수필가 린위탕(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서 “책상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고, 책장에 반쯤 담긴 코냑이 있다면 더불어 세상사를 이야기할 만하다”고 했다. 영국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는 ‘담배는 완벽한 쾌락의 완벽한 형태’라고 했다. 찰스 킹슬리는 담배를 “외로운 사람의 벗, 총각의 친구, 배고픈 자의 음식, 슬픈 사람의 위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의 잠, 추운 사람을 위한 불”이라 했다.
무엇보다 담배는 ‘저항의 아이콘’이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이유 없는 반항’에서 담배를 물었을 때,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젊음을 의미했다. 혁명가 체 게바라가 텁수룩한 얼굴로 담배를 질겅거릴 때, 기득권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반항적 캐릭터는 꼬나문 담배로 완성됐다. 요즘 안방극장에선 뿌옇게 처리됐지만.
한때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지나친 건강을 삼갑시다”란 블랙 유머가 있었다. 흡연반대 구호를 살짝 비튼 것이다. 그럼에도 담배는 이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듯하다. 기호(嗜好)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금년금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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