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새로운 남북관계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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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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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촛불민심 촘촘히 살펴야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현 시국은 ‘시절이 하 수상하다’는 옛 문인의 시조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병자호란 치욕을 겪은 뒤 척화파로 몰려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이 남긴 시조에 나오는 이 대목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발사대 비공개 반입과 국방부의 의도적인 보고 누락으로 혼돈(混沌) 속에 있는 현 시국을 잘 대변해준다.

‘하 수상’이라는 말은 몹시 뒤숭숭하다는 뜻이다. 지금 시대가 꼭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20일 조금 넘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꽤 긴 시간이 지난 것처럼 말하곤 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일자리위원회 출범을 시작으로 청와대와 일부 내각 인선에 이어 이낙연 총리 지명까지 거칠 것이 없이 앞으로만 나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파격 행보와 소통을 내세워 시민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정부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만찬 파동을 계기로 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개혁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며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러나 이낙연 총리 인준을 둘러싼 정치공방에 막히면서 순탄하게만 보였던 정부 출범 초기의 행보는 삐걱거리기 시작해 연이은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들이 ‘공약논쟁’으로 치달았으면서 개혁 추진의 동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국면은 사드로 인해 크게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의 추가 반입과 관련한 국방부의 보고 누락에 대해 ‘충격’을 받고 청와대에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이른바 ‘사드 논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와 관련한 ‘기선잡기’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곡예를 시작한 것으로 비쳐져 여기저기서 우려 섞인 시선이 돌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만난 자리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전임 정부 결정이지만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며 논쟁이 확산되는 것을 먼저 차단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야 한다”며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미국이 이해해줘야 한다”고 강조해 여운을 뒀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기본 방향으로 해석돼 정상회담까지 남은 기간 동안 한·미 간의 물밑 조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는 명분이 아니라 실리라는 것은 외교가의 불문율이다. 명분에 치우쳐 실리를 잃은 외교 행태를 우리는 많이 목격해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명분보다 양국 간 실리를 찾아가기를 바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방면에서는 이미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 않나.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1일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는 '제주포럼'에 보낸 영상메시지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메시지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표현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구상, 담대한 실천을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는데, 여기서 말한 ‘완전히 새로운 구상’이 주목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전제로 했지만 이른바 ‘문재인 구상’을 준비 중이며, 이것을 밝힐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외국 역할론에 기대지 않고 한반도문제를 대한민국이 주도해 나가겠다”고 밝혀 ‘자주 외교론’에 대한 신념을 내비쳤다.

국제적인 협력과 자주 외교는 상반되는 듯하지만, 그것을 절묘하게 엮을 수 있는 지혜가 ‘문재인 구상’의 핵심이 될 것 같다.

이번 영상메시지를 통해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문 대통령이 “남북이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는 대한민국이 만든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시켜 세계 경제 지도를 바꾸는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향후 남북한이 함께 이뤄내야 할 목표지점이다.

‘하 수상한 시절’을 파격과 소통이라는 외형에 치우치지 않고 본질적인 변화로 전환하는 것은 오롯이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이 시점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을 다시 촘촘히 읽어내는 지혜를 가지길 바란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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