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칼럼]주변에서 변경으로, 변경에서 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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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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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 주석과 틸러슨 국무장관.[사진=신화통신]



세계체제론의 대표적 학자인 이탈리아 출신 조반니 아리기는 중국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 들어서 세계의 체제적 변동에 가장 주요한 변수가 된 중국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에 대해 '문외한'인 이 대학자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라는 화려한 제목의 책을 썼다.

이 책에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변경(frontier)과 주변(periphery)이다. 이는 청나라가 왜 서구 열강처럼 무차별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풀어가면서 제시된다. 청나라는 방어해야만 하는 변경(邊境)을 평화를 회복한 주변(周邊)으로 만들려고 했으며, 수탈보다는 투자를 통해 변경을 주변화하고 주변을 안보의 완충지대이자 번영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변경이 전쟁과 단절의 공간이라면, 주변은 경제와 교류의 공간이다. 변경과 주변의 구분이 타당한지,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변경과 주변을 이렇게 구분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개념들이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간명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듯하다.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맞붙는 변경이었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는 전장(戰場)이 되었으며, 휴전 이후에는 가장 위험한 변경이 되었다. 비록 우리는 중심을 꿈꾸었지만, 냉전 시기 한국과 북한은 공히 두 세력의 변경으로서 때로는 전쟁의 공포로 인한 고통을, 때로는 각 진영으로부터 변경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혜택을 모두 받았다.

한국과 북한의 집권세력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각 진영의 중심에 기대어 '변경'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시기 중국에게 대한민국은 변경이었다. 한때 자신들이 피를 흘린 전장이었으며, 미 제국주의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고, 혈맹인 북한과 휴전 상태인 한국이 변경이 아니면 어디가 변경이었겠는가.

개혁·개방은 단절된 변경이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고 돈이 돌 수 있는 주변을 필요로 했다. 사실 냉전 시기 중국 또한 미·소 간 냉전 격돌의 변경이었으며, 때로는 스스로 외부와 철저히 단절하여 모두로부터 변경이 되고자 했다. 개혁·개방은 중국이 자신을 탈변경화하고 근접한 국가들을 변경에서 주변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중국에게 한국은 번영을 위한 가장 훌륭한 주변 국가가 되어주었다. 우리도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기 오직 북한만이 변경에서 벗어나 주변이 되기보다는 전쟁의 공포를 조장하며 전면적인 변경화를 통해 생존을 추구했다.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는 변경을 더 위협적인 전장의 공간으로 치장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변경에서 주변을 넘어 이제 중심이 되어가고 있으며, 기존의 중심이었던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중국은 동쪽의 변경화에 대비하면서 주변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래도록 주변보다는 변경에 가까웠던 서쪽을 향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동쪽의 변경화에 대비한 서쪽 변경의 주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또한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는 중국과의 접점 지역을 변경화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다시 중심의 교차점에 서게 되었다. 중심이 되려던 열망의 실현은커녕 탈냉전기 불완전하나마 평화를 유지시켜주고 번영을 보장했던 주변의 지위에서 다시 변경이 될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은 우리가 거대한 강대국들의 주변에서 다시 변경화될 길목에 서 있다는 이정표인 셈이다. 문제는 두 중심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평화와 번영의 주변으로라도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두 중심 사이에서 주변은 변경이 되고 어쩌면 더 불행하게도 전장이 될 수 있다. 사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변곡점일지도 모른다.

글 : 조형진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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