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365]눈 못 감는 청암(靑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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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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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 차장

“포스코의 시드머니는 일제식민지 배상금, 다시 말해 조상의 혈세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기가 포스코의 영원한 출발선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에겐 상충되는 요소에 균형을 잡아주는 통찰력이 소중하다. 사원·주주·지역사회·지식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고(故) 청암 박태준 명예회장이 생전 포스코 후배들에게 남긴 당부의 말이다. 최고경영자가 갖춰야 할 수많은 덕목 가운데 청암이 유독 ‘균형’과 ‘조정’을 강조한 것은 조상의 혈세로 탄생한 포스코의 배경 때문일 것이다.

전문경영인 기업으로 국내 재계 5대 기업, 글로벌 철강업계 5대 기업으로 성장하기 까지 포스코는 수많은 국내외 경쟁업체들과 생존을 건 사투를 벌였다.

이뿐인가. 정부와 정치권 등 권력층으로부터 외압도 견뎌내야 했다. 포스코의 기록 문화가 정착, 발달한 것이 사정당국 덕분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결국 청암의 당부는 국민기업인 포스코를 이끌어갈 최고경영자(CEO)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관계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 특히 포스코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까지 함께 간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귀결된다.

청암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 권력층과 반대세력으로부터 후배 경영진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했다. 그가 정치권으로 투신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포스코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회사 임직원들과 철강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얘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 투자기업으로 출발한 포스코를 공기업으로 여기고 회사를 흔들려는 권력층들이 많다보니 포스코는 늘 외부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 이런 압박을 몸으로 막아내고 포스코의 경영권 독립을 지켜준 사람이 다름 아닌 청암이었다”고 전했다.

5년전인 2011년 12월 13일 청암은 별세했다. 당시 기자는 기사를 통해 "포스코는 외부 견제로부터 조직의 안정을 꾀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잠재워야 한다"며 "그 일을 할 사람은 포스코 회장 뿐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포스코 신임 회장은 청암이 맡아왔던 ‘어른’으로서의 역할까지 겸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정권과 결부된 각종 부정 의혹에 포스코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의혹의 한 축에 포스코가 서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연임 여부가 그의 경영능력이 아닌, 최순실 게이트 의혹 해소에 달려 있을 정도다. 안타까울 뿐이다.

포스코는 청암이 살아있을 땐 권력층의 압박을 이겨내겠다는 패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 압박을 당연시 여기고 적당히 타협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진 건 아닐까 싶다. 권력층과 관계를 맺으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더해 압박을 환영하는 이들까지 있다고 한다.

포스코인들은 정권의 농간에 불만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포스코가 그동안 쌓아온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5년 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청암이 이제는 편히 눈을 감아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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