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고서 주후비급방, 노벨상을 낳다...투유유, 시약 자신에게 실험하다 중독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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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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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학자라 더욱 빛나

도사 갈홍이 1600여년전 저술한 주후비급방.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고 밝혀 놓았다. [사진=바이두]



조용성 베이징특파원·김근정 기자 = 青蒿一握, 以水二升漬, 絞取汁, 儘服之(청호일악,이수이승지, 교취즙, 진복지). 

4세기 동진(東晋)시대 도사인 갈홍(葛洪)이 저술한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 나오는 문구다. 말라리아편에 나오는 것으로 '개똥쑥을 캐내 물 두되에 담궈놓은 후, 비틀어 즙을 짜낸 액을 복용하라'라는 뜻이다. 이 내용이 1600년후 중국 투유유(屠呦呦) 중의과학원 교수로 하여금 노벨상을 수상하게 만들었다.

◆ 노벨의학상, 1600년 전 중국 고서에서 시작되다 

갈홍은 당대 유명한 도사로 영생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 민간의 물질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수은을 만드는 법이나 화학적 승화작용법 등을 개발해내기도 했다. 민간의학 지식과 경험도 풍부했으며, 이를 엮어 주후비급방이라는 책을 남겼다. '주후비급방'은 '팔꿈치 뒤에 항상 두고 볼 응급처치술'이라는 뜻이다. 책에는 양충병, 사슬병, 식도병, 광견병 등에 대한 예방과 치료방법등도 기술돼 있다.

말라리아(학질)가 주로 발병하는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 인근에서는 고대로부터 개똥쑥(중국명 칭하오, 靑蒿)을 이용한 민간요법이 전해져내려오고 있었다. 후이저우시 뤄푸(羅浮)산 인근에는 '개똥쑥이 말라리아를 퇴치한다'는 내용의 비석이 보존돼 있기도 하다. 갈홍은 책에서 이 지역의 민간의술을 토대로 말라리아에 대한 치료법을 적었다. 

말라리아 퇴치제를 연구하던 투 교수는 광둥성에서 내려오는 개똥쑥을 주목해 연구를 거듭해왔다. 개똥쑥에서 약효가 있는 물질을 추출해내는 작업은 난관에 부딪혔고, 실패가 거듭됐다. 그러던 투 교수는 갈홍이 지은 주후비급방에 나온 15글자의 비법에 주목했다. 특히 물에 담궈놓은 후 비틀어 즙을 짜라는 글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처음에는 개똥쑥을 끓이거나 찌는 방법으로 물질을 추출하려 했었다. 그 뒤 주후비급방에 나온 제조법을 참고해 중국 남방지역의 더운 날씨를 감안한 적당한 온도에 개똥쑥을 담궈놓은 후 즙을 짜냈다. 이 방법으로 마침내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는 항말라리아제 아르테미시닌(중국명 칭하오쑤, 靑蒿素)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올해 85세인 투유유가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밝히는 모습. [사진=신화사]
 

85세 여성 중의학자, 평생을 묵묵히 약초 연구와 신약개발에 매진한 진정한 의학자, 해외 유학경험도, 긴 가방끈도, 중국 국내 과학계의 인정과 찬사도 없었지만 그의 인고의 세월은 노벨상으로 귀결됐다. 흔한 약초 개똥쑥으로 수 백만명을 말라리아에서 구해내며 '인류애'를 실현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함께 연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동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 2000여종 천연식물 조사, 190여 차례나 실패하기도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6일 투유유 특집을 한 개 면을 털어 실으면서 중의학 고서에서 연구의 영감을 얻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투 교수가 앞서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자신은 1969년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프로젝트 523'에 참여하며 연구에 뛰어들었다. '프로젝트 523'은 1967년 중국이 말라리아 퇴치 신약 개발을 위해 대대적으로 진행한 연구사업으로 전국 60여개 관련 기관의 연구원 500여명이 투입됐다.
 
연구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당시 투 교수 모습. [사진=신화사]
 

당시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연구조 조장을 맡은 투 교수는 조원과 함께 서양의 유명 약재 등 총 2000여 종이 넘는 천연식물을 조사하고 200종에 달하는 천연 추출물을 실험쥐에 임상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무려 191차례의 실패를 겪었지만 투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라리아가 중국 고대부터 있던 병이라 고대 약학서에 처방이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친 그는 1600여년전 중국 동진(東晉)시대 의학서인 '주후비급방'을 주목했다. 개똥쑥에서 추출한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가 말라리아 억제 효능이 있다는 위대한 사실을 입증한 때는 1971년 10월이었다. 

과정은 험난하고 고단했다. 통풍도 되지 않는 열악한 연구실에서 '의학자'의 투혼을 불살랐다. 투 교수는 "동물 실험이 끝났고 효과가 있음을 확신했죠, 그리고 인체 첫 실험 대상으로 나에게 독성여부를 테스트 했죠, 이 연구의 책임자는 나라는 생각이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거듭된 실험으로 간염과 각종 중독 증상에 시달린 끝에 겨우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직접 하이난(海南)으로 날라가 21명의 말라리아 환자들에게 아르테미니신을 투여해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실히 입증했다.

고군분투 속에 탄생한 '기적의 명약'은 수 백만 인류의 목숨을 구했다. 중국 관영언론 신화망(新華網)은 아르테미시닌 말라리아 치료제를 '중국의 신약(神藥)'이라며 극찬했다. 아르테미시닌은 지난 2004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 말라리아 최우선 치료제로 선정됐고 영국의 권위있는 의학잡지 '더란셋'(The Lancet)은 아르테미니신의 말라리아 완치율이 무려 97%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WHO에 따르면 아르테미시닌 등장으로 말라리아로부터 고통받던 아프리카 주민의 삶이 달라졌다. 2008년 잠비아의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률은 2000년 대비 무려 66%가 하락했다. 2009년 아프리카 총 54개국 중 11개 국가에 아르테미시닌이 100% 보급됐고, 5개 국가 보급률도 50~100%까지 확대됐다.

투 교수의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과 인류에 대한 기여, 이번 노벨상 수상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의학자가 흔한 약초인 '개똥쑥'에서 치료물질을 추출해냈다는 점이다.

중국 과학계는 2011년 투 교수가 '노벨상의 전 단계'로 불리는 미국의 '래스커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그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중국 과학분야에 기여한 인물에 부여되는 명예 칭호인 '원사' 투표에서도 수 차례 미끄러졌다. 인간관계나 명성을 쌓는 것보다는 자신의 연구와 본연에 임무에만 충실했던 때문이다.

개똥쑥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약초다. 위벽보호와 간 해독, 생리통 치료 등에 효능이 있어 널리 사용되는 약재다. 최근에는 뛰어난 항암 효능도 입증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흔히 사용되던 중의약 약재를 현대의학과 접목, 새로운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발상의 전환을 투 교수는 해냈다. 노벨위원회 관계자는 "투 교수의 연구가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중의학과 현대의학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연구형태를 제시했다"면서 "앞으로 중의학 약재가 전세계 의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투 교수 역시 "아르테미시닌 연구의 성공은 혼자가 아니라 연구팀이 함께 시련을 이겨낸 결과물로 중의약의 귀한 자산과 연관된 성과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노벨상 수상 수감을 밝혔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발언을 인용해 "중의약은 위대한 보물창고"라며 "중국에는 고대부터 내려온 소중하고 귀한 자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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