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일정상회담, 맥빠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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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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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전략적 가치 낮아져, 골든타임 놓쳤나

9일 베이징에서 열린 APEC 비즈니스 서밋 개막식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 그는 10~11일에 아베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사진=신화사]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오는 10일과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중일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APEC 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합의서에 함께 사인한 후 웃으면서 악수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장면은 올해 APEC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별다른 큰 이슈가 없던 APEC에 글로벌 이슈가 발생하자 베이징 외교무대가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베이징 외교무대는 활기가 돌지만, 우리나라는 다소 맥이 빠진 모습이다. 그동안 중국과 '찰떡공조'를 과시하며 중국과 손을 맞잡고 일본을 거세게 몰아붙였었던 우리나라였다. 일본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흔들림없이 일본에게 과거사와 위안부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그동안 강국인 중국과 보조를 맞췄음에도 일본의 성의있는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건만, 중일정상회담으로 인해 이제는 우리나라 홀로 일본에 대해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리를 요구해야 할 처지다.

그동안 극우행보로 동북아시아에서 '외톨이'가 됐었던 일본은 꾸준히 상황타개를 위한 노력을 해왔었다. 아베 총리가 국제무대에서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하기도 했고, 여러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관계정상화 노력보다 우리나라에 대한 노력이 더 컸다. 한국을 끌어들인다면, 좀 더 적은 양보를 통해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한국이 한일관계개선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자,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타개책으로 삼기까지 했다. 일본으로서는 그만큼 동북아에서의 상황타개가 절실했었다.

하지만 중국과의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이제 일본은 한숨을 돌리게됐다. 한숨 돌리게 된 만큼 한국과의 관계복원 필요성 역시 과거에 비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느긋했고 일본이 다급했다면, 이제는 일본은 느긋해지고 우리나라는 마음이 바짝타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됐다.

이번 중일정상회담은 일본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중일갈등의 출구를 찾았다는 점에서 중국에게 이익이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복원에 나서게 됐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숨통이 트였다는 점에서 일본에게 이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을 함께 밀어붙일 파트너가 없어졌고, 일본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중국과의 관계에서 역시 '일본'이라는 카드를 상실해 버렸다.

◆댜오위다오, 과거사. 일본의 양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는 APEC 회의기간 중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중국과 일본은 6∼7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 간 회담을 통해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에 대한 입장 등을 담은 4개항의 합의를 도출했다.

4개 항목은 ▲전략적 호혜관계 지속 발전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로 향한다는 정신아래 정치적인 장애를 극복하자는 데 대한 일부 인식의 일치 ▲댜오위다오 문제 등에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음고 인식하고 위기관리 메커니즘 구축 ▲여러가지 창구를 통해 점진적으로 정치외교안보 대화를 가동 등이다.

4개 항목에서 일본이 상당한 양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역사를 직시해 정치적인 장애를 극복하자는 부분은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모종의 합의 혹은 묵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양국의 합의로 인해 일본은 제스춰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그동안 야스쿠니신사참배 중단을 요청해왔던 만큼, 일본은 참배횟수를 줄인다거나, 총리나 각료의 참배를 최대한 자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댜오위다오 관련해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점을 문서로 공식화했다. 향후 댜오위다오를 두고 양국간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 문건에 기재돼 있는 '양국간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문구가 충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제까지 댜오위다오 갈등의 존재를 확인한 문건은 없다. 다만 일본측은 '댜오위다오 영유권에 대한 다른 견해'라는 문구 대신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국면에 대한 다른 견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와 함께 상호 신뢰관계 구축 노력을 '점진적으로' 해나가겠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이는 중국측이 일본의 실행여부를 봐가면서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행이 없다면 관련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음을 내포한다. 선언이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는 중국의 강한 의사표현인 셈이다.

 

중일 외무장관 회담이 8일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2년2개월만에 개최된 외무장관 회담은 곧 열릴 중일정상회담의 의제를 논의했다. 왕이 외교부장과 기시다 후마오 일본 외무상이 참석했다.[사진=신화사]



◆중일갈등, 출구마련 성공

2012년 9월이후 2년여 넘게 경색국면을 지속해 왔던 중일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출구'를 맞게 됐다. 당시 도쿄시의 댜오위다오 매입으로 중국에는 전국적인 반일감정이 촉발됐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중국의 언론매체는 일본의 과거 잔학상을 집중보도했다. 댜오위다오 인근에서는 양국의 전투기와 전투함이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조성하기도 했다.

양국의 관계악화는 경제계나 국민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은 양국 정치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아슬아슬하면서도 불편한 상태가 이어졌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 개최로 일정부분의 긴장상태는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중일 양국의 과거사문제와 댜오위다오문제는 해소하기 힘든 난제이다. 때문에 향후 양국은 또다시 긴장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번 중일정상회담을 통해 대화국면을 조성하는데는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로써 시진핑 지도부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 역할을 했음을 APEC이라는 국제무대를 통해 세계만방에 알릴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가시적인 양보를 얻어냄으로서 국내여론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점진적으로' 관계를 풀어나가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양국관계의 주도권을 점했다. 

취싱(曲星)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원장은 "이번에 합의한 4가지 공동인식을 준수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양국관계의 회복은 장기간의 과정을 통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가오훙(高洪)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원 부소장은 "이번 4가지 공동인식으로 인해 양국의 댜오위다오 분쟁과 과거사 갈등에 대해 명확한 공동문서가 존재하게 됐으며 이는 외교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골든타임 놓쳤나

중국과 일본의 대화국면 전환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우선 댜오위다오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일 양국 정상이 만나는데, 우리가 일본과의 만남을 거부하면 우리가 일본과의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줄 수 있다. 이번 중일정상회담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압박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의 대화가 재개된 이상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정상화에 대해 과거처럼 목을 멜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 더이상 동북아의 외톨이가 아닌 상황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은 그 매력도가 예전만 같지 못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양보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나아가 일본이 북일관계정상화에서 성과를 낸다면 일본이 중국, 북한과 함께 한국을 포위하는 형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또한 중국 역시 한국에 대한 정치적인 수요를 낮추는 이익을 얻게 됐다. 일본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한국과의 공조를 해왔던 중국은, 이제 일본으로부터 일정부분 양보를 얻어낸 만큼 한국과의 공조 필요성 역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한중FTA협상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중FTA체결은 한중양국의 공조를 과시하며 일본을 더욱 외톨이로 만드는 정치적인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상황변화로 인해 중국의 한중FTA에 대한 정치적인 필요성은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공조강화를 위해 한중FTA에 대한 정치적인 필요성이 더 높아져 버렸다. 이는 양국의 협상력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로서는 더욱 힘든 협상국면을 맞게 됐다.

베이징 현지 외교가 관계자는 "동북아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어부지리를 얻어야 하는 우리나라가 두 강국으로부터 선수를 빼앗긴 모양새가 됐다"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으면서도, 더욱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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