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중국 최대 민영 철강회사인 장쑤(江蘇) 사강(沙鋼)그룹 선원룽(沈文榮) 회장은 지난 2009년 중국 경제잡지 신차이푸(新財富)가 선정한 중국 부호 1위에 등극했다.

전통 제조업 뿐만 아니라 비상장 기업 경영인이 중국 부호 1위에 오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 당시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중국의 '철강황제'로 불리우는 선 회장은 1946년 장쑤 장자강(張家港)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8년 고향에 소재한 진펑(錦豊) 면화가공기계학교를 졸업한 뒤 역시 인근의 진펑 면화공장의 기계조립공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선원룽이 기계공이 된데는 가족들의 영향이 컸다. 공장 일꾼이던 아버지의 3형제로부터 매일 공장 얘기를 들으면서 어린시절부터 '공장'에 대해 남다른 꿈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1974년 공장장이 된 선 회장은 45만 위안(한화 약 81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해 이듬해 제철 작업장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중국 최대·세계 6위(2009년 조강능력 기준) 철강회사 사강그룹의 모태였다.

사강 공장 주변 100km 부근에는 바오강(寶鋼) 등 내로라하는 대형 철강업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소규모의 샹전(鄕鎭)기업인 사강에게는 첫 주문을 따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선원룽은 그러나 불굴의 정신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하며 장쑤외에 전국으로 지명도를 높여나갔다.

선 회장의 경영능력이 빛을 발한 것은 1979년 개혁개방 직후 때다. 건설붐을 예측한 선 회장은 창틀용 철을 주력제품으로 선정하면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중시했다. 이 때부터 사강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부와 명예를 쌓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취약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75t짜리 전기로를 구입, 성장기반을 다졌다. 2001년, 철강 가격이 폭락하자 독일 도르트문트에 있던 티센크루프제철소 설비를 2400만 달러의 헐값에 통째로 사들였다. 2003년 이후 중국 철강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고수익을 내면서 선 회장은 중국 부호의 반열에 올라섰고 '철강의 모래황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 총수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출장 때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고집할 정도로 검소하기로 유명한 선 회장. 그러나 스포츠팀 및 예술단 스폰서, 불우아동을 위한 학비 지원 등 '써야 할 곳'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의 포스코맨들 보다 더 박태준 전 회장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선 회장은 지난 해 “중국 철강기업의 설비 수준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기술면에서는 아직 5년~ 10년 뒤져있다"며 포스코의 선진 기술인 파이넥스공법을 도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한국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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