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통하는 영상 메시지

 

(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삼성미술관 리움은 렘 쿨하스가 미래적 전시공간으로 디자인한 블랙박스의 특성을 살린 ‘블랙박스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첫 번째 행사가 내년 2월 13일까지 열리는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영상 3부작 ‘크리스찬 마클레이: 소리를 보는 경험(Christian Marclay: What You See Is What You Hear)’ 전이다.

‘보는 것을 들을 수는 없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마클레이의 작업은 레코드판을 사용해 즉흥적인 소음 음악을 실험하거나 레코드표지나 악보같이 소리를 대변하는 이미지를 사용한 오브제 작업,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들을 소리를 중심으로 편집한 영상작업 등으로 지난 30여 년간 국제 미술무대와 아방가르드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한국에서의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친숙한 장편 극영화를 편집한 세 점의 영상 작업으로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아는 할리우드 영화는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마클레이는 디제잉 퍼포먼스처럼 유명한 영화장면을 소리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재편집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했다.

영화 속의 전화 통화 장면들을 편집해 만든 ‘전화’(1995)는 영화를 소리의 조각으로 나누고 연결해 제작한 최초의 시도로 전혀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이 전화라는 매체를 통해 서로 연결되도록 했다. 마클레이는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와 이에 답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서로 다른 장면들을 연결해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의 인물들이 전화통화 내용을 이어 가도록 교묘하게 편집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소통매체로서의 전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클레이의 대표작 ‘비디오 사중주’(2002)는 음향을 중심으로 한 영화편집의 백미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파이널 컷 프로라는 영상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700개가 넘는 영화필름을 편집해 4개의 영상으로 결합한 작품으로, 가로 12m, 세로 2.25m의 대형 화면을 좌우로 오가며 공간 속에서 음향의 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장면을 편집한 영상에서 배우나 음악가들은 악기를 켜거나 노래를 부르고 갖가지 소음을 낸다. 이런 장면들로 구성된 4개 스크린의 음향과 영상은 서로 완벽하게 교차하고 있으며, 마치 사중주단의 연주자들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2010년 10월 런던의 화이트큐브갤러리에서 선보인 신작 ‘시계’(2010)는 시간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수많은 영화 속의 시계 장면들을 연결해 하루 24시간을 재현한 대작이다. 흑백영화는 물론, 멜로나 액션영화까지 다양한 장르 속에서 시계가 시간을 가리키는 장면이나 대화 속에 시간이 언급되는 장면들을 연결해 보여준다.

시계가 등장하는 화면들은 시간을 명시할 뿐 아니라, 이전 사건과 앞으로 벌어질 사건 사이의 장면 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서, 시계 또한 전화기 못지않게 따로 떨어진 시공간 사이를 매개하는 도구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0인치 이상의 대형화면에 Full HD 고해상도로 24시간에 맞추어 실시간으로 상영되어, 우리를 둘러싼 시간의 무게와 영화라는 대중문화의 압도적인 힘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연주장에서는 음악을 기대하는 관람객들에게 눈으로만 본다고 생각하는 영상을 귀로 들으면서 시각과 청각이라는 감각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 느껴 보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작가가 영화를 날 재료로 그의 개인적인 비전을 실현시켜 보이는 이러한 작업들은 디지털과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시대에 현대예술의 필연적인 귀결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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