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집을 갖고 싶었어" MZ 부부의 선택 –영화 '홈리스'

  • 주거 불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단상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홈리스 스틸컷
[사진=영화 '홈리스' 스틸컷]


집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다.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고 잠을 청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곳. 누군가에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평생 닿기 힘든 신기루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나의 몸을 누일 집이 있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 ‘홈리스’ 속 스무살 남짓한 부부에겐 이런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 가출팸에서 만나 아이를 낳고 부부가 된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어린 아기인 우림을 안고 매일 찜질방을 전전한다. 한결은 배달 아르바이트로, 고운은 전단지를 돌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두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알뜰살뜰히 돈을 모아 함께 살아갈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미래를 꿈꾸던 이들에게 행복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보증금 사기를 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까지 화상을 입으면서 약 30만 원 가량의 치료비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건 10만 원 남짓. 집을 잃은 부부는 아이의 치료비를 감당할 여유도,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버틸 안전망도 없다. 이들은 금전적 손실을 넘어 가족의 일상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까지 빼앗겨버렸다.

막막한 상황에서 한결은 배달 아르바이트 대행업체 사장에게 재차 가불을 부탁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아무 곳에도 기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다. 

한결은 이때 노인 예분이 사는 2층 양옥집을 떠올린다. 평소 초밥을 자주 시켜먹던 예분은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그는 종종 배달을 하며 싹싹하게 대하는 한결에게 집안일을 부탁하기도 하고, 외국에 간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한결은 문득 생각난 그의 집으로 향한다. 괜찮은지 묻는 고운에 한결은 예분이 자녀들을 만나러 외국에 갔으며 자신에게 집을 봐달라고 했다는 말을 꺼낸다.

마당이 있고, 씻을 수 있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집. 고운에게 예분의 집은 안심이 되는 곳이다. 오늘밤 당장 소음이 없는 곳에서 맛있는 김치에 밥을 차려 먹고 어린 우림을 돌볼 곳이 있다는 것은 고운에겐 어쩌면 구원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사진영화 홈리스 스틸컷
[사진=영화 '홈리스' 스틸컷]

하지만 고운은 모르고 있었다. 한결이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2층의 방에는 예분의 시신이 있었다는 걸. 한결은 앞서 막막한 마음에 예분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이미 숨진 그녀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를 신고하지 않고 고운과 아기를 예분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한동안 이들은 머물 곳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지만 그 시간이 오래 가지 않는다. 한결은 배달 일을 하다 오토바이를 도둑맞고, 그 시각 고운은 2층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2층의 방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 고운은 집을 떠나려 했지만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현실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두 사람은 예분의 사망을 신고하지 않는 대신 시신을 정원에 묻고, 그 집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한결과 고운은 오랜만에 시장에 들러 전과 생선회 등을 사곤 예분의 시신이 묻힌 곳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영화 말미 1층 거실에서 밥을 차려 먹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단란한 한 가족처럼 보인다. 그러나 햇빛이 들어오는 큰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다. 마치 세상과 담을 쌓듯 스스로 고립되는 듯 보인다. 이제 이들에게 집은 진실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가둬야 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영화는 가난이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어떤 상황에 내몰렸기에 잘못된 선택 앞에서도 멈춰 설 수 없었는지, 그 과정에서 사회는 무엇을 놓쳤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주거 불안과 빈곤, 홀로 죽음을 맞는 노인의 고독은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위태로운 삶을 붙잡아 줄 손길이 부재하다는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

‘홈리스’는 가출 청소년과 주거 취약계층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부터 치솟는 집값 앞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 홀로 죽음을 맞는 노년의 고독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비춘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기 전, 그가 기댈 수 있는 자리는 우리 사회에 충분히 마련돼 있는가. 

개인의 불행을 그저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사회에서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 언제든 기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불행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우울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코 먼 곳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 혹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불행이 개인의 삶에 갇힌 채 되풀이되지 않도록, 위기에 놓인 이들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과 서로를 향한 관심이 절실한 이유다.
 
사진영화 홈리스 스틸컷
[사진=영화 '홈리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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