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이 장기간 이어진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지만 국내 완성차 업계의 고심은 커지고 있다. 판매 회복을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보급형 모델 확대에 주력한 탓에 수익성 방어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테슬라와 BYD 등 중국산 전기차의 거센 공세 속 샌드위치 신세에 몰렸다는 지적이다.
20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최대 전기차 시장인 유럽(EU)에서 전기차 가격의 하락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순수전기차(BEV) 신차 평균 가격은 4만2700유로로 전년보다 1800유로(약 4%) 떨어졌다. 가격이 하락한 건 2020년 이후 처음이다. 보급형 모델이 집중된 B세그먼트(소형)는 하락 폭이 13%에 이른다.
한국 시장도 전기차 가격이 하락하기는 마찬가지다. BEV 평균 판매가격은 2023년 약 6750만원에서 2024년 5590만원으로 1년 새 17.2%가량 낮아졌다. 3000~4000만원대 전기차 판매 비중 역시 같은 기간 12.5%에서 32.8%로 2.6배 늘며 가격 경쟁력이 높은 보급형 전기차가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실제 전기차 판매량 성장을 주도하는 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델들이다. 올해 들어 테슬라 모델Y는 지난달까지 7만3125대가 신규 등록해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97.4% 증가했다. 국산 전기차 중 판매량이 가장 많은 기아 EV3도 해당 기간 2만6139대 팔려 39.5%의 증가 폭을 나타냈다. 보급형 모델이 전기차 주축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전기차 판매가 확대돼도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동화 초기에는 고가인 고성능 전기차가 주류였다면 전동화를 최근에는 3000~4000만원대 보급형 모델이 시장을 견인하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체는 전기차 진입 가격을 낮춰 장기간 이어진 캐즘을 돌파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2분기 현대차는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냈지만, 영업이익은 2조8509억원으로 오히려 전년 동기보다 20.8% 감소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1.7%포인트 하락한 5.8%에 그쳤다. 기아도 같은 기간 매출이 12.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9% 줄고 영업이익률은 1.4%포인트 낮아졌다.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는 국내 완성차 업계의 부담을 더 키운다. BYD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까지 영역을 넓혀 중저가 시장을 공략 중이다. 지난 6월 공개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씨라이언 6 DM-i'는 PHEV임에도 3750만원(FWD 기준)이란 낮은 가격으로 이목을 끌었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경쟁사 PHEV는 5000만원을 웃돈다.
여기에 테슬라는 국산 전기차와 비슷한 가격대에서 브랜드 경쟁력으로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주요 모델 가격대가 국산과 비슷하거나 소폭 높은 정도라 브랜드 인지도, 상품성 등을 우선순위에 두고 테슬라를 택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상하이 공장을 기반으로 공급도 충분히 뒷받침되며 테슬라는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8개월 연속 국내 수입차 브랜드 판매 1위에 올랐다.
결국 국내 완성차는 중저가 시장에서는 BYD의 가격 공세, 그 위 가격대에서는 테슬라의 브랜드 경쟁력 기반 공세를 동시에 받는 이른바 '샌드위치' 구도에 놓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전기차의 가성비와 테슬라의 브랜드 파워에 밀려 국산 전기차 입지가 지속적으로 좁아지는 모습"이라며 "가격 인상도 쉽지 않아 원가 절감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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