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와 비단, 도자기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하지만 영국 상품의 대중국 수출 규모는 크지 않았다. 중국으로 은이 계속 유입되자, 영국 상인들은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팔아 무역 불균형을 메우기 시작했다. 1839년 청 정부가 아편을 몰수하고 폐기하며 불거진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번졌다. 이것이 바로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아편전쟁’이다.
18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 ‘전쟁’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현재 미·중 무역전쟁에서는 총과 함포 대신 관세와 수출 통제, 반도체와 희토류가 무기로 등장했다.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이 첨단기술 수출을 막으면 중국은 핵심 광물 공급을 제한한다. 2018년 이후 미·중 간 통상 갈등이 줄곧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며 국제 뉴스를 도배하는 것이 전혀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미·중 무역전쟁은 아편전쟁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청에는 영국을 제약할 수단이 없었지만, 지금은 양국 모두 상대의 급소를 쥐고 있다. 그래서 상대를 압박하면서도 거래를 멈추지 못한다.
지난 9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이런 현실을 증명해 줬다. 양국은 11월 만료 예정이던 무역 휴전을 2027년 1월 10일까지 연장하고, 미·중 무역이사회를 본격적으로 가동해 각각 약 3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에 더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갈등은 계속되는데도 왜 다시 관세 인하를 논의하고 거래를 확대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미국과 중국이 시장과 공급망, 금융으로 깊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경쟁국인 동시에 서로에게 중요한 시장이자 공급처이다. 미국 통계 기준으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미국은 중국에서 약 1,564억 달러를 수입했고 중국에는 약 652억 달러를 수출했다. 무역전쟁이 시작된 지 8년이 지났고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고 있지만, 같은 기간 양국의 상품 교역액은 여전히 2,200억 달러를 넘는다.
미국이 중국 제조업 덕을 봐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산 소비재와 중간재는 오랫동안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해왔다. 최근 관세 인상의 역효과가 미국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연구진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관세 인상 이후 중국산 수입품의 소매가격이 12월까지 전년 대비 8.5% 올랐으며, 4월부터 12월 사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관세 가운데 최소 30%가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된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중국과의 무역이 미국에 이익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이른바 ‘차이나 쇼크’는 중국산 제품과 직접 경쟁하던 미국 제조업 지역의 고용과 임금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중국산 수입 상품 경쟁에 많이 노출된 지역일수록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소비자 부담이 커지는데도 미국이 관세를 쉽게 거두지 못하는 까닭이다.
중국 역시 미국으로부터 얻는 이익이 크기에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거대한 소비시장이고, 달러 중심의 금융질서는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의 국외 거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중국은 오랫동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의 상당 부분을 외화 보유액으로 축적하고 미국 국채에도 투자해 왔다. 과거 1조 달러를 훌쩍 넘었던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크게 줄었지만, 올해 7월 말 기준으로도 6,180억 달러에 달한다. 금융 상호 의존의 모습은 달라지고 있어도 두 경제를 단기간에 분리하기 어려운 구조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양국은 서로 상대의 ‘초크 포인트’를 누를 수 있다. 미국은 관세뿐 아니라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설계 소프트웨어, 달러 중심의 금융망에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쥐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와 핵심 광물, 제조 공급망에서 미국이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0~2023년 평균 미국의 희토류 화합물과 금속 소비량 가운데 중국산이 차지한 비중은 67%였다. 천연흑연은 43%, 안티몬은 53%였다. 첨단산업과 국방에 필요한 핵심 광물로 범위를 넓히면 중국 공급망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상호 의존은 상대에게 유효타를 날릴 힘을 주지만, 그 힘을 쓸수록 자신이 치를 비용도 커진다. 미국이 관세와 기술 통제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자국 기업과 소비자가 그 비용을 떠안는다. 중국도 희토류 같은 자원을 과도하게 무기화하면 미국과 다른 국가의 공급망 탈중국을 재촉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한쪽도 손에 든 카드를 마음껏 쓰기 어렵다.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 관계’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양국은 지난 5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이 관계 규정에 합의했고, 이번에는 여기에 ‘존중·공정·대등(对等)’이라는 원칙을 더했다. 시진핑 주석은 협력을 주된 흐름으로 만들고 경쟁을 적절한 범위 안에서 관리하며 차이를 통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적 수사로 볼 수도 있지만, 무역이사회와 관세 인하 협의까지 함께 놓고 보면 적어도 양국이 경쟁의 폭주를 막을 장치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미·중 경쟁은 단기간에 끝날 수 없다. 앞으로 반도체와 AI, 전기차와 배터리, 희토류와 공급망을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더 격화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두 강대국이 전쟁으로 치닫는 관계라고 볼 필요는 없다. 깊은 상호 의존이 전쟁을 막아 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미·중이 관계를 단번에 끊으면 양쪽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한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나 아편전쟁을 양국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상호 의존의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이익 경쟁에 가깝다. 관세를 올렸다가 협상하고, 수출을 통제했다가 다시 거래하며, 제재 수단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대화의 틀을 만드는 모순적인 ‘가짜 친구’의 관계인 것이다.
이번 관세 인하 논의 대상은 비민감 품목에 그쳤고 반도체와 전기차는 빠졌다. 양국은 거래를 이어가면서도 안보와 기술 경쟁이 걸린 분야에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한국이 주목할 곳은 이 민감 분야와 비민감 분야의 경계선이다. 미·중의 표면적 불협화음과 갈등 행태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상호 억제 구조 속에서 양국이 무엇을 통제하고 거래하는지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경계 위에서 줄타기하며 취할 이익과 완충 역할의 기회요인을 찾을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 경기연구원 AI 연구실 연구위원 ▲ 한양대학교 전략정보학과 겸임 교수 ▲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지방정부 특위 위원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해외기관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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