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명예교수]
2027년도 국가예산안은 이례적 측면이 강하다. 총지출은 820조9천억원으로 전년보다 12.8% 증가한다. 역대 최대 규모이자 매우 높은 증가율이다. 정부는 이를 단순한 경기부양이 아니라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 재정운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AI와 첨단산업, R&D, 청년, 지방, 교육·인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미래대응기금을 새롭게 만든 것도 이번 예산안의 특징이다. 확장재정, 국가채무 등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예산안이 아주 특이한 국가 경제 여건 속에서 편성되었기 때문에 흑백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26년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실질성장률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2분기 실질 GDP는 전년 동기보다 3.7% 증가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명목 GDP다. 같은 기간 명목 GDP는 26.4% 증가했고 GDP 디플레이터는 21.9% 상승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도 2026년 경상성장률이 두 자릿수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명목경제의 급팽창은 세수 증가로 연결된다. 2027년 국세수입은 584조4천억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6년 본예산의 390조2천억원과 비교하면 매우 큰 증가다. 이에 따라 조세부담률은 17.0%에서 22.5%, 국민부담률은 24.1%에서 29.8%로 높아질 전망이다.
따라서 2027년 예산안의 첫 번째 평가기준은 늘어난 세수가 구조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어야 한다. 반도체 가격과 수출단가 상승, 교역조건 개선에 따른 세수 증가까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는 경기여건이 바뀌면 다시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2027년 통합재정수지는 59조9천억원 흑자이지만 관리재정수지는 3조1천억원 적자다. 국가채무는 1,519조8천억원으로 전년보다 100조원 이상 증가한다. 반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1.6%에서 48.3%로 낮아진다. 국가채무 비율이 낮아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상당 부분이 명목 GDP가 급증한 데 따른 분모 효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명목성장률이 정상화될 경우에도 국가채무 비율이 안정될 수 있도록 재정구조를 만들어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27년 국세수입 가운데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를 넘어서는 추가세수는 162조3천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이 가운데 45조4천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투자하고 12조5천억원은 국채 신규발행 축소에 활용할 계획이다. 미래대응기금은 이러한 추가세수를 미래투자와 재정안정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미래대응기금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우선 경기호황으로 발생한 일시적 세수가 상시적 의무지출로 전환돼서는 안 된다. 둘째, 기존 부처 사업을 단순히 기금으로 이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의 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세입이 전망보다 감소하면 지출도 자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넷째, 투자성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하여 효과가 낮은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국회의 예산안 심의다.
2027년 예산안에 대하여 여야는 몇 가지 원칙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일시적 세수는 일시적 지출에 사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세수 증가가 구조적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조금·인건비와 같은 의무적 지출을 크게 늘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둘째, 미래 성장동력을 높이는 투자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AI, R&D, 전력망, 첨단산업, 인재양성 등은 단년도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경쟁력의 문제다.
셋째, 국가채무 관리 기준을 세워야 한다. 명목 GDP 증가로 채무비율이 낮아졌다고 재정여력이 무한정 확대된 것은 아니다. 추가세수의 일정 부분은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사용한다는 원칙도 필요하다. 넷째, 지출의 성과를 검증하는 예산심의로 바뀌어야 한다. 예산이 늘었는지 줄었는지가 아니라 민간투자를 얼마나 유발했는지, 생산성을 얼마나 높였는지, 고용과 소득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창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다섯째, 국회 스스로도 증액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예산의 방만성을 비판하면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지역사업과 정치적 사업을 대폭 증액한다면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할 명분이 약해진다.
2027년 예산안은 확장재정인가 긴축재정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 경제는 높은 명목성장과 세수 증가라는 흔치 않은 상황을 맞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현재의 소비로 소진하느냐, 아니면 미래의 성장능력과 재정건전성으로 전환하느냐이다. 여야가 합의해야 할 기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시적인 세수는 영구적인 지출로 만들지 않고, 미래 성장투자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국가채무는 안정시키고, 모든 사업은 성과 가능성으로 평가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국회 심의가 이루어진다면 2027년 예산은 단순히 역대 최대 예산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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