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가 배달기사들에게 헬멧과 마스크를 벗어 얼굴이 보이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협조문을 내걸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8일 보배드림 사회관계망 서비스 계정에는 '전주의 한 아파트에 붙은 얼굴이 보이도록 해달라는 협조문입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과 사진이 게재됐다.
협조문에는 배달 기사 등 헬멧 착용자에게 얼굴이 보이도록 요청하며 "얼굴을 가리는 헬멧을 착용하시면 입주민분들이 불안감 및 두려움을 느낀다는 민원이 많다. 단지 내 이동 또는 승강기 탑승 시에는 무조건 헬멧을 올려 얼굴이 보이도록 해달라. 모든 입주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이해하시고 협조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쓰였다.
아파트 측이 이 같은 요청을 한 이유는 방범과 주민 안전이다. 얼굴이 가려진 상태로 공동현관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폐쇄회로(CC)TV를 통한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배달기사들 사이에서는 해당 조치가 특정 직업군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배달기사는 이미 플랫폼을 통해 배차받고 주문자의 주소로 이동하는 만큼 별도의 얼굴 확인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특히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배달기사가 단지에 들어갈 때마다 헬멧을 벗었다가 다시 착용하면 배송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건당 수입을 받으며 시간에 쫓기는 배달기사에게는 짧은 출입 절차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배달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면 택배기사나 방문 수리기사 등 다른 외부인에게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범죄 예방을 이유로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고 인적사항까지 요구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며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조치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현직 라이더라고 밝힌 누리꾼들도 “헬멧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경계하는 시선을 받을 때가 많다”, “배달 시간은 촉박한데 단지마다 출입 방식이 달라 현장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주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공동현관을 통과해 각 세대의 문 앞까지 접근하는 만큼 최소한 얼굴 정도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배달기사를 범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에 들어오는 외부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 “사고가 발생한 뒤 CCTV를 확인해도 얼굴이 모두 가려져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주민 입장에서는 더욱 불안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어린이와 여성이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가린 낯선 사람과 마주치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며 아파트의 요청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배달기사에게 헬멧을 벗게 하는 것을 넘어 휴대전화 번호와 이름을 방명록에 적도록 하거나 신분증을 맡기도록 요구하는 사례도 알려졌다. 일반 승강기 대신 화물용 승강기만 이용하게 하거나 오토바이의 지상 출입을 막아 음식을 들고 장거리를 걸어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배달기사들 사이에서는 출입 조건이 까다로운 아파트를 이른바 ‘천룡인 아파트’라고 부르며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지난달에도 일부 아파트의 과도한 출입 제한을 두고 배달기사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번 논란을 두고 누리꾼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주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협조”라는 주장과 “배달기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차별적 요구”라는 주장이 맞섰다.
결국 핵심은 얼굴을 확인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외부 방문자에게 동일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하느냐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주민 안전과 배달기사의 인권·노동환경을 함께 고려한 출입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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