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이 최근 한 달여 사이 10엔가량 급락해 일본 주요 기업 과반의 실적 전망에 적용된 예상 환율을 밑돌고 있다. 주요 제조업체 20곳의 4~6월 영업이익 증가분 중 약 90%가 엔저 효과였던 만큼, 엔화 강세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실적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금융정보업체 퀵(QUICK) 집계 결과, 예상 환율을 공개한 일본 주요 상장기업 360곳 가운데 150곳은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환율을 달러당 155~159엔으로 잡았다. 35곳은 160~164엔으로 예상했다. 현재 엔·달러 환율(153~154엔)은 전체의 51.4%인 185곳의 예상 환율보다 낮다.
엔·달러 환율은 7월 하순 164엔에 육박한 뒤 미·일 공동 개입으로 155엔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8월 말 160엔대로 반등했으나 이달 들어 153~154엔대로 급락했다. 기업들은 4~6월 실적 발표가 본격화한 7월 하순의 160엔대 환율을 반영해 예상 환율을 잇달아 높여 잡았다.
아베 겐지 다이와증권 수석전략가는 엔·달러 환율이 1엔 하락할 때 일본 상장기업 전체의 경상이익이 약 0.3%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했다. 유로화 대비 엔화 강세 영향까지 포함하면 감소 폭은 약 0.4%로 커진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의 엔화 환산액이 줄고 수출 채산성도 나빠지기 때문이다.
일본 상장기업은 AI용 반도체 수요 증가와 엔저 효과에 힘입어 4~6월 호실적을 냈다. 자동차와 정밀기기, 전기·전자, 중공업·기계 분야 주요 제조업체 20곳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총 7798억엔(약 6조8052억원) 늘었고, 증가분의 약 90%는 엔저 덕분이었다.
해외 매출 비중이 90%가 넘는 TDK의 4~6월 영업이익은 298억엔 늘었고, 이 가운데 113억엔이 엔저 효과였다. 해외 매출 비중이 57%인 미쓰비시전기도 조정 영업이익 증가분 505억엔 중 220억엔이 엔저 효과였다.
마쓰다는 4~6월 영업흑자로 전환했지만 엔저 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였다. 미쓰비시자동차도 환율 요인을 빼면 영업적자였다. 닛케이는 엔저가 자동차업체 등이 안고 있는 구조적 부진을 가려왔다고 짚었다. 후지모토 데쓰야 마쓰다 최고재무·회계책임자는 실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조개혁과 원가 절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며 "환율 변동을 견딜 힘을 확실히 길러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엔화 강세가 모든 일본 기업에 악재인 것은 아니다. 원자재와 연료, 식료품 수입 비용을 줄여 내수기업의 경영을 뒷받침한다. 해외에서 생산한 가구와 생활용품을 일본으로 들여오는 니토리홀딩스 등 수입기업에는 오히려 호재다.
닛케이는 미국 기술기업의 AI 투자로 반도체·데이터센터 관련 기업의 실적 호조가 이어지고 있어, 도쿄증시 프라임시장 상장기업(금융 등 제외)의 2026회계연도 순이익이 엔화 강세에도 전년 대비 10% 넘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데 신고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주식전략가는 "제조업은 달러당 150엔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환율이 그 아래로 떨어지면 반도체 관련 기업의 실적이 늘더라도 제조업 전반의 실적은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장은 오는 17~18일 열리는 일본은행(BOJ)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주시하고 있다. 일본은행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면 엔·달러 환율이 추가로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일본의 재정 악화 우려에 따른 잠재적인 엔화 매도 압력도 남아 있다. 닛케이는 환율이 당분간 크게 출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세라 아야코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 상석이사는 환율 변동성이 큰 배경에 대해 "미·일 재무당국의 메시지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밑바탕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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