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김홍선 감독님이 저를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놔줬어요. 류준열 배우와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던 사이라 편하게 했고요. 감독님이 디테일한 노트를 많이 주는 스타일은 아니고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어서 저는 하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었어요. 그게 나쁜 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편했어요."
노자를 만들며 가장 신경 쓴 것은 거친 인상과 인간적인 빈틈 사이의 균형이었다. 설경구는 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 밀어붙이기보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인상은 험하게 갔으면 했어요. 다만 계속 무겁게만 10부까지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어요. 험악한 모습과 비어 보이는 모습이 교차돼야 사람으로서 빈틈이 있고, 그래야 입체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신은 빈틈, 이 신은 거칠게 이렇게 계산했다기보다는 상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뉜 것 같아요. 준열이와 할 때는 같이 어리숙해지고, (김)성오 쪽 인물을 만날 때는 또 거칠어지고요. 그런 변주로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변주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 속에서 더 분명해졌다. 특히 문재와 노자는 성격부터 속도까지 정반대에 가까운 인물이다. 설경구는 그 대비가 두 캐릭터를 함께 살리는 힘이 됐다고 봤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에요. 문재와 노자는 정반대의 인물이잖아요. 햄버거 먹는 것부터 문재는 속 터지는 캐릭터고, 노자는 급하고요. 그 대비가 잘 보여진 것 같아요. 서로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줬던 관계였어요."
류준열과의 호흡도 자연스럽게 맞아갔다. 설경구는 류준열이 자신의 역할뿐 아니라 장면 전체를 준비해오는 배우였고, 그 과정이 현장의 대화를 활발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준열이가 신 준비를 되게 많이 해와요. 보통은 자기 것만 준비해 오는데, 준열이는 상대방 것까지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처음에는 '아, 건방지게' 싶다가도 '그거 한번 해보자' 하게 됐고, 그 다음부터는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자를 건 자르자고 하면서 신나게 했던 것 같아요. 의견을 던져주는 게 고마웠어요."
설경구가 처음 노자에게서 느낀 이미지는 '얽매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들쥐처럼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문재처럼 극한의 불안에 몰린 인물과 달리, 노자는 조직을 떠난 뒤 자유인에 가까운 느낌을 지닌 인물이었다.
"조직을 떠난 뒤부터는 자유인 같았어요. 들쥐보다 덜 얽매이고, 문재만큼 쫓기는 느낌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더 편했을 수도 있어요. 얽매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있었죠. 다만 일식집에서 만나는 인물과 마주하는 장면은 마음이 좀 안 좋았어요. 계산으로 구축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액션 장면에서는 좁은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특히 쉽지 않았다. 설경구는 차 뒷좌석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떠올리며, 완성본에서는 짧게 지나가지만 실제 촬영은 꽤 길고 고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차 뒷좌석에서 했던 장면이 조금 힘들었어요. 공간이 너무 좁아서 부대꼈거든요. 그래서 같이 하는 친구들에게 '맞을 수도 있다, 참아라, 미안하다'고 했어요. 실제로 한 두세 대는 맞았을 거예요. 선배라고 말도 못했을 테니 미안하죠. 공간이 좁다 보니까 주먹도 막 치게 되고, 그때가 조금 버거웠어요. 완성본에서는 금방 지나가는데 촬영은 꽤 길게 했어요."
설경구는 만약 '들쥐'의 이야기가 한 회 더 이어진다면 노자 역시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봤다. 그가 생각한 노자의 결말은 도망이 아니라 수용에 가까웠다.
"노자도 구속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그래야 노자가 악행 이전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봤거든요. 팔 한쪽을 못 쓰게 되는 걸로 퉁치기에는 그 악행이 지워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시골로 순용이 찾아와서 체포한다면 노자는 받아들일 것 같아요. 엄마가 몇 년 만에 온 아들을 아침에 잠깐 나갔다 돌아온 사람처럼 대하잖아요. 그 말 한마디로 악행 이전의 나를 엄마가 증명해준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흥미로운 것은 노자가 분명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임에도 관객의 응원을 받는 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설경구는 그 이유를 인물에게서 풍기는 '사람 냄새'에서 찾았다.
"사람 냄새가 나서 그렇지 않을까요. 악행도 하지만 비어 있는 모습, 어설픈 모습이 있어요. 틈이 많아 보이고요. 작가가 조금 묵직하게 갔으면 했던 부분을 저는 사람 냄새나게 조금 틀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때 도움을 받은 건 문재라는 캐릭터예요. 손이 많이 가는 애고, 때리고 욕하고 싶은데도 어쩔 수 없이 보호해야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비호감일 수 있는 인물에게 인간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대해 설경구는 스스로 과하게 계산한 결과는 아니라고 했다. 인물 안에 이미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고, 그것이 작가와 감독의 방향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제가 억지로 구축했다기보다는, 작가나 감독이 그게 아니라고 하면 얘기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맞아떨어진 것 아닐까요. 제가 일부러 부여했다기보다 인물 안에서 그렇게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여러 얼굴을 보여준 배우에게도 '설경구다운 연기'라는 말은 때로 부담이 된다. 그는 경력이 쌓인 배우들이 피할 수 없이 듣게 되는 평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변주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배우의 일이라고 말했다.
"다 알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말도 있잖아요. '무슨 작품을 하든 똑같다, 지겹다' 하는 글도 있고요. 경력이 좀 된 배우들은 다 그런 말을 듣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어요. 제가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발버둥을 치죠.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죠."
변화에 대한 강박이 컸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설경구는 자신을 완전히 지우려 하기보다, 이야기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방식에 더 집중하고 있다.
"예전에는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이야기에 매달리게 됐어요. 물론 여전히 마음속에는 있어요. 이전에 했던 캐릭터를 안 하려고 하고, 조금씩 변주하려고 하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조금 없어진 것 같아요. 어차피 나니까, 거기서 조금씩 변하고 변주하면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설경구는 10부작이라는 호흡에 부담을 느낄 시청자들에게도 애정을 갖고 집중해 봐주길 당부했다. '들쥐'는 흘려보기보다 붙잡고 따라가야 하는 작품이라는 의미였다.
"10부작을 한 번에 보거나 이틀 안에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애정을 갖고 봐주시면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매 회차 엔딩을 잘 끊어놨거든요. 다만 집에서 보기 쉬운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일상생활을 하면서 보는 작품은 아니에요. 집중해서 봐야 하고, 1, 2부나 3부까지만 보면 계속 가지 않을까 싶어요. 흐트러지면 깨지는 작품이라 애정을 갖고 봐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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