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의 티키타카] 맥락(脈絡)이 제거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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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시사평론가]

 
 
맥락(脈絡)이라는 단어가 좀 어렵습니다. 한자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MZ세대에게는 차라리 영어로 ‘Context'라고 설명하면 편하겠지요.
 
맥락(脈絡)이라는 한자를 해석하면, 말이나 글, 어떤 현상이 일어난 전후의 과정과 배경, 정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맥락이 끊어지면 원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소통이 왜곡됩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과잉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걱정이 많던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심하다보니 ‘맥락맹(脈絡盲·Context Blindness)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프란체스카 홍에 대한 맥락제거
 
미국 숭배에 찌든 한국에서 홍윤정이 태어났으면 그저 원오브뎀이었을 것입니다. 1988년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태어났기에 프란체스카 홍이 되었고, 그러기에 대학을 중퇴하고 결국 민주사회주의자들 그룹에 속한 정치인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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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맥락을 제거하고 프란체스카 홍이 공산주의자라 선동했다. JTBC 유튜브 갈무리>

 
그런 그녀는 올해 미국 위스콘신 주지사 민주당 후보 경선 동안 자신의 과거 발언을 해명하는데 온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이른바 ‘추수감사절 폐지론’과 ‘이방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이 결합되면서 많은 미국 주류질서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선거 운동의 대부분을 이 해명에 쏟다보니 선거가 엉망이 된 것은 자명합니다. 바로 그 문제는 그녀가 2020년 자신의 SNS에 “추수감사절을 폐지하자. 1621년에 이미 그렇게 했어야 했다.”라고 쓴 글에 대한 왜곡입니다. 트럼프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그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그녀의 주장에 대한 맥락을 제거했습니다.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학살했던 것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축제인 ‘추수감사절’을 식민주의를 기념하는 날로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맥락을 제거하니 험한 말이 되었습니다. 맥락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참고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여전히 대량학살과 식민주의의 유산’이기에 폐지해야 한다는 다른 주장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UC Santa Barbara) 영문과의 암로 솔로몬(Amrah Salomón) 교수의 글입니다. (https://zrr.kr/gJnMwW)
 
홍장원과 조성현에 대한 맥락제거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조성현 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도 맥락제거의 희생자입니다. 12·3 내란 당시 이들이 처했던 불가피한 군·정보기관의 지휘 계통 상황과 사후 진실 규명에 기여한 공로(맥락)를 완전히 무시한 채, 계엄 초기 수행한 일부 행위만을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내란 가담 혐의로 기소한 권창영 종합특별검사팀, 분명히 무리한 법 적용을 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권창영 종합특검이 조은석 내란특검의 불입건 조치를 뒤집고 두 사람에 대해 기소를 한 것은 법률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소 기각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겁니다. 이 규칙 115조에는 불기소 결정을 할 수 있는 사유로 5가지(기소유예, 혐의 없음, 죄가 안 됨, 공소권 없음, 각하)를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각하가 논란이라고 합니다. 각하 사유 중 하나로 같은 사건에 관하여 검사의 불기소 결정이 있는 경우(새로이 중요한 증거가 발견되어 고소인, 고발인 또는 피해자가 그 사유를 소명한 경우는 제외한다)가 명시돼 있습니다. 게다가 종합특검은 내란특검의 불입건 결정을 뒤집을 뚜렷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권창영 특검이 두 사람을 기소한 것은 두 사람의 행위에 대해 ‘맥락’을 제거하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추정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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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특검' 수사 잔여 사건을 수사한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8월 24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비롯한 58명을 재판에 넘기고 18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과 김대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처음으로 구속 기소됐으며, 특검팀은 비상계엄을 저지했다는 평가를 받아 온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조성현 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도 재판에 넘겼다. 왼쪽부터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조성현 전 수방사 1경비단장, 김태효 전 차장, 김대기 전 실장 [사진=연합뉴스]>
 
 
 
12.3 내란 내부 공익제보자에 대한 맥락제거
 
사건이 벌어지면 수사관은 가장 먼저 범인의 휴대전화를 압수해서 디지털 포렌식을 합니다. 지금의 휴대전화는 그 사람의 지문과 같아서, 누구와 통화하고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심지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낱낱이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군은 디지털화된 지휘/통제(육군 C4I 및 합참 KJCCS, 한미연합)로 작전을 합니다. 그리고 소대/중대/대대 지휘/통제 장비는 PRE(위치보고접속장치·Positioning Report Equipment)와 위성PRE(통신 및 암호장비)입니다. 일반 개인으로 치면 군의 ‘휴대폰’인 셈입니다.
 
내부 공익제보자 김현석씨는 27년 동안 육군 C4I와 합참의 KJCCS 시스템, 그리고 위성PRE를 제작하고 유지․보수하면서 평생을 바친 사람인데, 12.3 내란 당시 군의 불법적인 작전(위성PRE를 전군이 끄고 작전에 들어가라는 비상식적 명령)을 목도하고 국회의원들과 조은석 내란특검과 권창영 종합특검, 각종 수사기관에 이 사실을 담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군의 당시 상황을 확인하려면 반드시 김현석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이 상황을 조사해야 하는데 그 어떤 기관도 김씨를 부르지 않고, 외려 ‘군 기밀 누설혐의’로 압수수색과 국수본 조사만 받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철저히 맥락을 제거하고 아무 생각 없이 수사를 진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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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씨는 지난 7월 10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12.3 내란사태에서 군의 불법적 행태에 대해 폭로했다 - 뉴스공장 유튜브 갈무리>
 

  
너무나 황당한 김현석씨는 지금 사무실로 개조한 차량을 가지고 한강 둔치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피해를 줄까 싶어 퇴사한 그는 제출한 자료를 뭉개고 있는 국수본을 비롯한 수사기관을 참여연대와 함께 고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되지 않으면 그냥 유서 써 놓고 한강물에 빠져 죽겠다고 합니다. 대학후배인 저는 이리저리 발품을 팔면서 돕지만 속상합니다. 이 역시 ‘맥락’을 제거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맥락이 제거되면 좋아 춤을 추는 사람 - 전두환
 
‘5.18민주화운동 재조명’ 포럼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극우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망언을 쏟아냈고, “폭동”, “소요사태”라는 폄훼의 단어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이를 ‘학술행사’라고 이진숙 의원은 우기고 있습니다.
 
이들의 토론 자료집에는 "소규모 시위가 광주와 호남 일원의 예비군 무기고의 총기와 탄약을 탈취하는 대규모 폭동으로까지 번져 나간 데에는 계엄군과 경찰 사령관들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가 큰 요인을 이뤘다(이영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명명백백하게 맥락을 제거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본 주장입니다. 서울에 있던 전두환이 현장 지휘 계통에 없었고, 당시 정웅 31사단장이나 안병하 전남경찰국장 등 현장 지휘관들이 초기 진압에 무능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해 무기고를 털리게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최종 집권자가 된 자신들의 학살 책임과 발포 명령 책임을 은폐하고, 사태의 책임을 '현장 지휘관의 역량 부족'과 '시민들의 폭력성'으로 돌리려는 형사적·역사적 책임 회피 전략이죠. 누가 좋아할까요? 결국 죽은 전두환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좋아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맥락이 제거되면 결과만 보기 때문에 중간 과정은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생긴 피해자가 프란체스카 홍이고, 홍장원이고 조성현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내부 공익제보자 김현석은 여차하면 한강물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맥락을 제거하면, 현상이 발생한 배경과 구조를 보지 못해 원인과 결과를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맥락을 제거하면, 구조적 불평등이나 제도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맥락을 제거하면, 기득권에 유리한 현실을 당연하게 만들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맥락을 제거하면, 자칫 타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키웁니다.
 
그리고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1회 선거아카데미 교수
- 現 정치평론가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인터넷언론인연대 정회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저서
 
- 유권자를 사로잡는 현장정치 오마이선거 오마이전략 (매일컴 刊, 2014)
- 금융사기의 천국 대한민국 (공저·깨넷 刊, 2022)
- 진화하는 하나님, 새로운 기독교 (깨넷 刊,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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