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인도네시아 뚜레쥬르의 현지화
최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복합 쇼핑몰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 뚜레쥬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매장으로 들어가 빵 몇 개를 고르고 계산대에서 현금을 건네자 직원이 무언가를 말했다. 바로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묻자 직원은 천천히 ‘캐시리스(cashless)'라고 설명했다.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점을 접한 적이 있었지만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베이커리에서 현금을 아예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의외였다. 전자결제에 익숙하지 않거나 현금밖에 없는 고객에게 제품을 팔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적절한 현지화 전략인지 궁금했다. 뚜레쥬르가 현대적이고 코즈모폴리턴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려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현금 없는 거래 방식은 과도하게 앞서나가는 선택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2026년 상반기 자료를 보면 약 6600만명이 4500만여 개 가맹점에서 큐리스를 이용했다. 상당한 규모지만 전체 인구와 비교하면 아직 25%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다만 그 이용자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어서 자카르타 주민의 이용률은 60%에 이르렀다. 대도시 쇼핑몰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중산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뚜레쥬르 같은 사업체라면 캐시리스 방식이 영업에 큰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금 없는 거래 방식은 잠재 고객의 확대 가능성을 제한하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뚜레쥬르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시기는 ‘K-Food’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이전인 2011년이었다. 당시에도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중심으로 한류 소비층이 존재했지만 오늘날처럼 한국 음식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은 아니었다. 따라서 뚜레쥬르의 목표는 고급 베이커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뚜레쥬르는 카페형 매장을 고집하면서 기존 베이커리 업체와 차별화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이런 전략에 맞추어 그 매장 역시 자카르타의 고급 복합 쇼핑몰에 자리 잡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제품 가격을 비교적 높게 책정했음에도 소비자 반응은 호의적이었으며 쇼핑몰을 중심으로 매장 수가 꾸준히 늘어났다. 시장 진입 후 5년 만에 지점은 30여 개로 증가했으며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을 넘어 지방 주요 도시 쇼핑몰에도 진출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국내 언론에 등장한 뚜레쥬르 관련 기사는 이러한 낙관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다.
성공적인 해외시장 진출 사례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뚜레쥬르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복합 쇼핑몰 입점과 카페형 베이커리라는 전략은 고급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가 높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부담으로 인해 201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실적 악화가 뚜렷해졌다. 2017년 16억원이던 영업손실은 2018년 30억원, 2019년 29억원으로 이어졌고 2020년에는 69억원까지 확대되었다. CJ푸드빌 본사가 인도네시아 법인에 제공한 채무보증액 역시 2017년 203억원에서 2019년 286억원으로 증가했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CJ푸드빌의 해외사업은 ‘돈 먹는 하마’로 취급받기까지 했다.
이처럼 어려움이 지속되던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겹쳤다. 카페형 베이커리 형식으로 매장을 운영해 온 만큼 뚜레쥬르는 팬데믹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19년 287억원이던 매출은 2020년 148억원으로 감소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팬데믹 후 일상 회복이 시작되던 2022년 반전이 일어났다. 매출액이 2020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을 뿐 아니라 당기순이익 15억원을 기록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진출 이후 처음으로 달성한 흑자였다. 2023년과 2024년에도 매출은 꾸준히 증가했고 흑자 기조 역시 이어졌다. 2025년에는 소폭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 몇 년간의 매출 증가세와 수익성 개선 흐름을 감안하면 사업 기반이 안정화되었다고 평가할 여지는 충분하다.
관련 자료가 많지 않기에 실적 반전의 원인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투자를 이어간 모기업의 꾸준한 지원은 주요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소비자 사이에서 뚜레쥬르가 주요 베이커리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그 입지를 굳힌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지속된 현지화 노력이 있었을 텐데,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할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20년 할랄 인증제도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뚜레쥬르 역시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한 지점에서 황당해 보이는 듯한 공지문을 게시했다. 케이크 위에 크리스마스 관련 문구를 추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방침에 항의하는 고객의 모습이 스마트폰 영상으로 촬영되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고 해당 영상이 빠르게 확산하며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계속되자 일간지 역시 이를 보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네시아 이슬람 지도자협의회 관계자까지 나서 뚜레쥬르 조치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비판이 거세지자 뚜레쥬르 측은 해당 공지가 매장 직원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하면서 공식 사과했다. 이것만으로 사태가 수습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 보였다. 뚜레쥬르의 주요 고객층 가운데 하나가 현지 화교이고 이들 대다수가 비무슬림임을 고려하면 종교 차별 논란으로 번져 대규모 보이콧 움직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공식 사과 이후 논란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고 대중의 관심 역시 점차 잦아들었다.
이 사례는 현지화 전략의 실패로 비칠 수 있다. 무슬림 고객만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비무슬림 고객의 권리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당시 뚜레쥬르가 할랄 인증 심사를 앞두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종교 문제를 둘러싼 지나친 조심스러움이 이러한 방침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사례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오랫동안 종교적 표현의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기독교도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는 것을 금지한다는 결정이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슬람의 공식 입장으로 남아 있을 정도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크리스마스 문구를 케이크에 적어주는 행위 역시 종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뚜레쥬르 지점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현지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매장 운영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로 평가될 수 있다. 현지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면 크리스마스 문구를 케이크에 적어도 되는지를 고민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뚜레쥬르 사례는 해외시장에서 사업을 안착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소비재 시장은 현지 기업에 의해 주도되었고 소비자 취향과 소비 방식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되었다. 따라서 이런 시장에서 외국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와 세심한 현지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뚜레쥬르가 진출 10여 년 만에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장기적 투자와 현지화 전략의 결실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앞서 언급한 현금 없는 거래 역시 뚜레쥬르 나름의 시장 분석에 기반을 두고 도입된 방침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데, 소셜미디어에서 제기된 반응은 이러한 의구심을 강화한다. 다수 소비자는 무현금 거래 방식이 디지털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며 결제 과정이 현금보다 번거롭다고 불평한다. 이런 이유로 캐시리스 상점 자체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 자료를 살펴보다 흥미로운 설명을 발견했다. 캐시리스를 도입한 이유로 이른바 ‘삥땅’, 즉 계산 과정에서 직원이 현금 일부를 가로채는 관행을 언급한 것이다. 현금 보관이나 운반 과정에 드는 시간과 노동력 역시 거론되었다. 이러한 설명 모두 일리가 있지만 이는 철저하게 운영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 것이다. 반면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현지화는 소비자 중심적 시각을 강조한다. 만일 현금 손실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캐시리스 거래 방식이 도입되었다면 단기적으로 기업의 이윤은 증가할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소비자의 편익은 희생될 수 있다.
현금 없는 거래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이를 온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인지 캐시리스 매장에서 느낀 의문 역시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다만 지난 15년 동안 뚜레쥬르가 지속해 온 현지화 노력을 고려한다면 이 전략 역시 기업이 아닌 소비자의 니즈와 편익에 기반을 둔 선택이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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