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분이 5분으로…광덕터널, 화천 사내면 살릴 관문인가 '빨대'인가

  • 광덕터널은 뚫리는데 머물 이유는 있는가…사내면의 5년

  • 광덕리 수목원·사창리 화목원에 95억원 산림사업 추진

  • 군부대 의존 상권 탈피·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 관건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삼일계곡 상류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 광덕터널 개통을 앞두고 화악산과 삼일계곡 곡운구곡 등 자연·역사문화 자원을 체류형 관광과 주민소득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박종석 기자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삼일계곡 상류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 광덕터널 개통을 앞두고 화악산과 삼일계곡, 곡운구곡 등 자연·역사문화 자원을 체류형 관광과 주민소득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박종석 기자]

 
2031년 광덕터널이 뚫리면 경기 포천과 강원 화천군 사내면을 오가는 시간은 26분에서 5분으로 줄어든다. 길은 가까워진다. 하지만 관광객이 사내면에 머물 이유까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광덕터널은 수도권 관광객을 화천으로 끌어들이는 관문이 될 수도 있고, 지역 소비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터널 개통까지 남은 5년 동안 사내면이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사내면 주민들이 광덕터널을 단순한 교통사업이 아닌 지역의 생존 문제로 바라보는 이유다.
 
사내면 경제는 오랫동안 군부대와 군 장병 소비에 상당 부분 의존해 왔다. 민·군 상생은 계속돼야 하지만 병력과 면회객 감소 등 군부대 여건 변화에 따라 지역 상권이 흔들리는 구조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내면 주민들은 “군부대와의 상생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군부대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사내면이 살아남으려면 관광객이 찾아와 머물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내면이 가진 대안은 새로운 인공 관광시설만이 아니다. 약 350년 전부터 이곳에 쌓인 역사와 수억 년의 자연이 이미 관광의 재료가 되고 있다.
 
김수증은 왜 화악산 북쪽을 선택했나
 
화악산 북쪽 자락에는 삼일계곡과 곡운구곡, 화음동정사지가 이어진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곡운 김수증(1624~1701)은 1668년 평강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이곳의 산수를 알게 됐다. 1670년에는 곡운정사를 짓고 계곡을 따라 아홉 절경을 골라 곡운구곡을 경영했다.
 
1689년 기사환국 이후 벼슬에서 물러난 그는 화음동에 정사를 조성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삼일정과 송풍정, 부지암, 유지당 등을 자연 속에 배치해 자신이 추구한 성리학적 이상향을 구현했다.
 
화음동정사지는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당시 건물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삼일정과 송풍정이 복원됐고 바위에 새긴 글자와 옛 흔적도 남아 있다.
 
김수증은 1682년 무렵 화가 조세걸에게 곡운구곡의 실제 풍경을 그리도록 했다. 약 8㎞의 계곡을 담은 ‘곡운구곡도’는 조선 후기의 자연경관과 선비가 추구한 이상향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곡운구곡에는 선캄브리아기 변성암의 습곡과 단층 등 오랜 지질활동의 흔적도 남아 있다. 한 계곡에서 수억 년의 지질역사와 조선 선비의 문화사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관광지와 구별되는 자산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관광객에게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름다운 계곡과 옛 정자만 보고 돌아가면 짧은 방문에 그친다. 김수증이 왜 이곳을 이상향으로 택했는지, 곡운구곡도가 무엇을 기록했는지 설명할 해설과 탐방 프로그램이 있어야 체류형 관광콘텐츠가 된다.
 
강원 화천군 사내면 화악산 북쪽 자락의 울창한 숲 아래로 삼일계곡의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광덕터널 개통을 앞두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체류형 관광과 주민소득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박종석 기자
강원 화천군 사내면 화악산 북쪽 자락의 울창한 숲 아래로 삼일계곡의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광덕터널 개통을 앞두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체류형 관광과 주민소득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박종석 기자]

 
점으로 흩어진 자원, 아직 관광산업은 아니다
 
화악산에서 내려온 물은 삼일계곡을 따라 흐르며 소와 여울, 폭포와 거대한 바위지형을 만들었다. 계곡 상류에는 독특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촛대바위가 자리한다.
 
화천군은 촛대바위에 대한 별도의 학술조사도 실시했다. 조사 범위에는 촛대바위뿐 아니라 화악산과 삼일계곡, 화음동정사지 일대의 지질·경관·인문학적 특성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들 자원이 아직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악산과 삼일계곡, 촛대바위, 화음동정사지, 곡운구곡이 각각 존재하지만 이를 연결하는 탐방동선과 통합 안내체계, 전문 해설, 체험 프로그램은 충분하지 않다. 역사문화 자원이 있어도 관광객이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잠시 사진을 찍고 떠나는 장소에 머물 수밖에 없다.
 
관광자원이 많다는 사실과 관광산업이 형성됐다는 것은 다르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관광객의 체류시간과 주민소득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95억원 산림사업, 시설보다 연결이 먼저
 
화천군은 광덕터널 개통에 대비해 사내면에서 수목원과 자생식물원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화천군에 따르면 광덕리 ‘한반도 중심 수목원’은 2028년부터 2032년까지 광덕리 일대 약 25㏊에 조성될 예정이다. 총사업비는 60억원으로 전시·관람시설과 교육·체험시설 등이 들어선다.
 
군은 이르면 올해 안에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수목원 조성에 필요한 인허가 절차에 착수할 방침이다. 사창리 자생식물원인 ‘화목원’도 2028년부터 2032년까지 조성된다. 총사업비 35억원을 들여 자생식물 전시구역과 보전·증식시설, 관찰·학습공간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두 사업에 투입될 예정인 사업비는 모두 95억원이다. 관건은 시설 두 곳을 별도의 사업으로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관광자원과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수목원과 화목원이 화악산·삼일계곡·곡운구곡·화음동정사지와 분리되면 또 다른 방문시설이 늘어나는 데 머물 수 있다.
 
반면 수목원에서 화악산 산림생태를 배우고 삼일계곡과 촛대바위에서 지질을 관찰한 뒤 김수증과 곡운구곡의 역사를 따라 걷는 동선을 만들면 사내면 전체가 하나의 산림·역사문화 관광권이 될 수 있다.
 
김세훈 화천군수는 “화천군은 관광과 휴양, 치유 분야를 연계한 산림산업을 미래 핵심 발전동력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이 실제 주민소득으로 이어지려면 숙박과 음식, 농·임산물 판매, 마을 체험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 관광객 수보다 지역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를 소비하는지를 성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의 마을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 광덕터널 개통과 수목원·화목원 조성사업을 앞두고 사내면이 군부대 의존 상권에서 체류형 관광거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박종석 기자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의 마을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 광덕터널 개통과 수목원·화목원 조성사업을 앞두고 사내면이 군부대 의존 상권에서 체류형 관광거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박종석 기자]

 
터널보다 먼저 완성해야 할 관광동선
 
광덕터널은 2027년 상반기 착공해 2031년 개통하는 것이 목표다. 수목원과 화목원은 2028년부터 2032년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광덕터널 개통 시점과 주요 관광시설의 조성 기간이 겹친다.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광덕터널이 먼저 개통하고 수목원과 화목원은 이후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대형 시설이 완공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원부터 연결해야 한다.
 
김수증과 곡운구곡을 주제로 한 인문학 탐방, 삼일계곡 생태관광, 촛대바위 지질해설, 화음동정사지 문화해설 등은 비교적 적은 시설 투자로도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옛길과 지명, 전설, 주민 생활사를 조사해 관광 이야기로 정리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주차장과 화장실, 안전한 탐방로, 통합 안내판 등 기본적인 관광 기반도 갖춰야 한다.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는 이용 기준과 계곡 관리방안 역시 필요하다.
 
광덕터널이 뚫리면 사내면은 수도권에서 가까워진다. 하지만 ‘가까운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광객이 머물지는 않는다.
 
김수증이 약 350년 전 발견한 이상향, 수억 년의 지질 흔적을 품은 곡운구곡, 화악산의 숲과 삼일계곡의 물길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주민이 운영하는 음식과 숙박, 체험을 연결해야 비로소 관광이 지역의 소득이 된다.
 
사내면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관광시설만이 아니다. 광덕터널을 지나온 관광객에게 ‘왜 여기서 내려야 하는가’, ‘왜 하루를 머물러야 하는가’에 답할 수 있는 지역 전체의 관광전략이다. 2031년 광덕터널 개통을 앞둔 사내면의 시간은 이미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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