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의 2분기 실적이 일제히 어닝서프라이즈로 마무리되며 월가의 AI 투자 우려가 잦아드는 듯했지만, 금융업계는 오히려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부채'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한 자금 조달과 경쟁사 간 신용 보증, 반도체 기업의 순환 투자가 뒤섞이며 AI 버블론에 다시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5일 IT업계에 따르면 오라클과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SPV 구조로 조달하면서 관련 부채를 자체 재무제표 밖으로 옮기고 있다.
오라클은 크루소·블루아울·밴티지 등과 함께 SPV를 구성해 데이터센터를 짓고, 완공 후 이를 장기 임차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오라클이 이런 SPV를 통해 660억 달러를 조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쟁사 간 신용을 서로 빌려주는 새로운 방식도 등장했다. 구글은 지난 1일 앤트로픽의 텍사스 1.6기가와트(GW)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자사 신용으로 150억 달러 규모 대출을 보증했다. 자기 자본이나 부채가 아니라 '남의 신용'으로 경쟁사의 설비투자 확대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엔비디아도 비슷한 패턴이다. 엔비디아는 오픈AI가 오하이오주에 추진하는 10GW 데이터센터 사업에 최대 2500억 달러를 보증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지분 투자한 빅테크·AI 스타트업에 GPU를 팔고, 그 매출로 다시 이들 기업에 투자하는 순환 구조가 반복되면서 AI 반도체 수요와 가격에 낀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구조는 미국 빅테크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네이버는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엔비디아·브룩필드와 함께 추진하는 'AI 팩토리' 1단계(200MW) 사업 구조를 공개했다. 브룩필드가 최대 90억 달러를 조달해 SPV를 구성하고, 이 SPV가 GPU와 데이터센터 설비를 직접 매입·보유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지분 100%의 운영 자회사를 통해 SPV로부터 컴퓨팅 자원을 공급받아 사용료를 지불하고, 이를 외부에 재판매해 수익을 낸다. 대규모 설비를 직접 사들이는 대신 임차 형태로 이용하면서 초기 투자·차입 부담을 재무제표 밖으로 돌리는, 오라클·메타식 SPV 구조와 사실상 같은 틀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복잡한 자금 조달 구조가 AI 버블론과 맞물리며 반도체 시장 전반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국내 증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미국발 AI 신용 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부채가 재무제표 밖에 쌓일수록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디로 전이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며 “과거 닷컴버블 때도 유사한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졌으며, 결과적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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