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혼돈에 빠졌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7000선을 웃돌며 고공행진을 펼치던 코스피 지수가 어제(28일) 하루 만에 -10.84% 폭락하며 6000선으로 주저앉더니 오늘(29일)도 폭락세를 이어갔습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60.42포인트(-5.98%) 내린 5663.24에, 코스닥 지수는 43.17포인트(-6.12%) 내린 662.68에 각각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중 한때 코스피는 5262.77선, 코스닥은 630.99선까지 무너지며 바닥을 알 수 없는 공포감을 조성했습니다.
급기야 낮 12시 19분 코스닥 시장이 멈춰 섰고 불과 13분 뒤인 12시 32분에는 코스피마저 매매가 정지됐습니다.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이틀 연속 양 시장 동반 서킷브레이커'라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벌어진 순간입니다.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이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화면의 빨간색·파란색 숫자들이 굳어버리고 계좌가 먹통이 된 단 20분. 도대체 증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서킷브레이커: 과부하 걸린 증시의 '두꺼비집'을 내려라!
영어로는 '트레이딩 커브(Trading Curb)'라고도 불리는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는 원래 전기 회로에서 과부하가 걸렸을 때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기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두꺼비집(차단기)'을 말합니다.이 제도는 1987년 10월, 미국 뉴욕증시가 하루 만에 22.6%나 폭락했던 공포의 블랙 먼데이 사태 이후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는 1998년 12월에 도입됐는데, 우리나라 증시 잔혹사에서 서킷브레이커 비상벨이 울렸던 날들은 하나같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었습니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미국 신용등급 하락 충격, 그리고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가 대표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역시 먼 훗날 증시 역사책 한 페이지에 기록될 만큼 사상 초유의 사건인 셈입니다.
서킷브레이커가 터지면 내 주식은 어떻게 될까?
한국거래소 기준 서킷브레이커는 지수 하락 폭에 따라 총 3단계로 나뉘어 발동됩니다.첫째, 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8% 이상 폭락해 1분간 지속되면 '1단계'가 터집니다. 오늘 발동된 단계가 바로 이겁니다. 1단계가 터지면 모든 주식 거래가 20분간 완전히 얼어붙습니다. 거래가 재개된 후 10분 동안도 개별 주문이 바로 체결되지 않고 10분간 호가를 모아 한꺼번에 체결시키는 단일가 매매로 진행됩니다. 이때는 사고 싶어도, 팔고 싶어도 주문이 묶이게 됩니다.
만약 휴식 후에도 낙폭이 확대돼 지수가 -15% 이상 떨어지면 '2단계'가 발동돼 또다시 20분간 완전 중단됩니다. 그리고 지수가 -20%까지 무너지면 '3단계'가 발동되는데, 이때는 그날 주식 시장이 그 자리에서 조기 마감됩니다. 단, 서킷브레이커는 단계별 하루 1회만 작동하며 장 마감 직전인 오후 2시 30분 이후에는 터지지 않습니다.
사이드카는 '노란 불', 서킷브레이커는 '빨간 불'
오늘 오전에도 서킷브레이커에 앞서 사이드카가 먼저 터지며 시장에 사이렌을 울렸습니다. 두 용어가 헷갈리신다면 도로 위 교통신호로 이해하면 쉽습니다.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이 5% 이상 급등락할 때 작동하는 노란 불(경계경보)입니다. 주식 시장 전체를 멈추는 게 아니라 기관이나 외국인이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대량 주문을 넣는 프로그램 매매만 5분간 잠깐 대기시키는 장치입니다. 선물 시장의 이상 과열이 현물 주식 시장으로 옮겨붙지 않도록 유예 시간을 주는 것이죠.
반면 서킷브레이커는 현물 지수 자체가 폭락할 때 개인, 기관,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전 시장의 거래를 싹 멈춰 세우는 빨간 불(공습경보)이자 비상 브레이크입니다. 오늘 시장은 아침에 노란 불(사이드카)이 들어오더니, 점심 무렵 결국 빨간 불(서킷브레이커)까지 켜진 극단의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거래소는 왜 강제로 브레이크를 걸까?
계좌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 매매마저 묶여버리니 답답함을 토로하는 투자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거래소가 강제로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는 진짜 이유는 심리적 쿨링다운 때문입니다.불이 난 건물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비상구로 몰리면 옴짝달싹 못 하고 피해가 커지는 것처럼, 집단 패닉에 빠진 시장에서는 기업의 진짜 가치와 상관없이 '일단 팔고 보자'는 광기가 시장을 지배합니다.
이때 20분이라는 강제 휴식 시간을 줌으로써 투자자들이 공포에 휩싸여 주식을 무작정 던지기 전에 이성을 되찾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숨고르기 시간을 벌어주는 것입니다. 홧김에 던지는 연쇄 투매를 막고 터무니없는 가격 왜곡과 증시 시스템 붕괴를 막아주는 최소한의 방화벽인 셈입니다.
공포 속에서 필요한 것은 '생각의 정지 버튼'
사상 첫 '이틀 연속 동반 서킷브레이커'라는 타이틀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장중 5200선까지 떨어졌던 지수가 장 후반 동시호가를 거치면서 5663.24로 낙폭을 일부 줄이며 마감하긴 했지만 여전히 시장 전반에는 짙은 먹구름이 깔려 있습니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서킷브레이커가 터졌다는 것은 시장이 그만큼 극단적인 공포 상태의 고점에 다다랐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계가 강제로 멈춰 선 그 20분은,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 투자자들에게도 뇌동매매를 멈추라는 생각의 정지 버튼이어야 합니다.
시장의 일시적인 수급 파동과 집단 공포에 휩쓸려 홧김에 주식을 던지기보다는 시장 전체의 자금 흐름과 내가 가진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차분하게 점검해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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